2030년 세계 1위 겨냥했던 삼성 시스템반도체, 후속투자 불투명
파운드리 세계 1위 TSMC는 30조원 투자 발표했는데 삼성은 불확실성 커져
하만 인수 이후 멈췄던 대형 M&A도 차질 불가피
[아시아경제 이창환 기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구속으로 연매출 400조원이 넘는 한국 대표 기업 삼성은 앞으로 총수 없이 그룹을 꾸려야 한다. 총수 공백 기간 계열사별로 어떻게 비상경영체제를 이어 나가느냐에 삼성의 경영 성과가 좌우될 수 있다. 대규모 투자 결정 지연과 해외 경쟁사의 추격 허용, 브랜드 이미지 하락 등 삼성의 대내외 리스크가 한층 커질 것이라는 평가다.
지배구조 개편·대규모 투자 중단
19일 재계에 따르면 삼성은 이 부회장 구속으로 인사와 지배구조 개편, 대규모 투자 등 주요 의사 결정이 중단될 위기에 처했다. 무엇보다 이 부회장의 회장 승진이 기약 없이 미뤄지게 됐다.
삼성은 오는 3월 열리는 삼성전자 정기 주주총회를 전후로 고(故) 이건희 회장의 별세로 공석이 된 삼성전자 회장 자리에 이 부회장을 추대할 계획을 세웠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부회장이 책임경영 차원에서 이번 주주총회에서 등기임원에 복귀할 가능성도 제기됐었다. 그러나 법원이 이 부회장에게 징역 2년6개월의 실형을 선고하면서 이 같은 계획은 없던 일이 됐다.
대규모 투자 결정도 차질이 예상된다. 당장 삼성전자는 오는 28일 열리는 기업설명회(IR)에서 올해 대규모 투자를 발표할 가능성이 제기되는 상황이었다. 반도체 파운드리(위탁생산) 경쟁사인 TSMC가 최근 역대 최대인 30조원가량의 연간 투자계획을 발표하면서 삼성전자도 대규모 파운드리 투자를 발표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이 부회장은 파운드리를 비롯한 시스템반도체를 미래 핵심 먹거리로 삼고 세계 1위를 달성하기 위해 대규모 투자를 진행해왔다. 그는 2017년 2월 구속돼 수감생활을 하다 2018년 초 집행유예로 풀려나면서 본격적으로 대규모 투자를 진행했다.
2018년 8월에는 인공지능(AI)과 5G, 바이오, 반도체 중심 전장(전자장비) 부품 등 4대 성장사업에 180조원 투자계획을 발표했고 2019년 4월에는 2030년까지 시스템 반도체 1위 달성을 목표로 133조원의 투자계획을 내놓았다.
이처럼 대규모의 투자계획을 발표하려면 총수의 결단이 필요한데 이 부회장이 구속되면서 추후 투자계획 발표도 차질을 빚을 것이라는 예상이 따른다. 대형 인수합병(M&A)도 마찬가지다. 삼성은 2017년 글로벌 전장업체인 하만 인수 이후 대규모 M&A를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
경상 대한상공회의소 본부장은 "산업의 패러다임이 급변하는 현재 삼성전자는 중요한 의사 결정을 해야 하는 상황인데 이 부회장의 공백으로 신사업 성장에 차질이 우려된다"고 말했다.
글로벌 브랜드 가치 하락 불가피
이 회장 별세 이후 진행되고 있는 상속 문제도 차질이 예상된다. 최소 10조원이 넘을 상속세를 마련하기 위해 이 부회장 일가는 다양한 자금 조달 방안을 검토해왔다. 최근에는 이 회장이 보유한 미술품과 부동산 등에 대한 외부 감정평가도 진행하고 있는데 상속세 마련을 위해 일부 주식 매각이나 계열사 배당 확대와 같은 중요한 의사 결정이 필요한 상황이다. 그러나 이 부회장이 구속되면서 의사 결정에 차질이 예상된다.
글로벌 브랜드 가치 하락도 불가피하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컨설팅기업 인터브랜드가 발표한 ‘2020년 글로벌 100대 브랜드’ 평가에서 전 세계 5번째, 국내 기업 1위를 기록하는 등 매년 브랜드 가치가 상승해왔다. 하지만 총수가 구속되면서 올해는 브랜드 가치 상승보다는 하락을 우려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해외 투기자본에 공격의 빌미를 제공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사모펀드 엘리엇은 우리 사법부의 판결을 기반으로 삼성과 우리 정부 등에 손해배상 등을 요구해왔다. 이번 판결이 국제 재판에도 불리한 영향을 끼칠 가능성이 높아졌다.
삼성이 우리나라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감안했을 때 한국 경제 전체에도 마이너스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전국경제인연합회의 한 관계자는 "삼성이 한국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 글로벌 기업으로서의 위상 등을 고려할 때 이번 판결로 인한 삼성의 경영활동 위축은 개별 기업을 넘어 한국 경제 전체에도 악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우려된다"며 "장기간의 리더십 부재는 신사업 진출과 빠른 의사 결정을 지연시켜 글로벌 경쟁에서 뒤처지게 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창환 기자 goldfis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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