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 포커스] "앞으로 전쟁터 될 수 있다"..연봉 조정, 판도라 상자 열렸다

배중현 2021. 1. 19.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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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KBO에 연봉 조정을 신청한 KT 주권. IS포토

판도라의 상자가 열렸다.

KBO리그에서 연봉 조정 제도는 사실상 사문화된 규정이었다. KBO리그 규약 제75조에 명시된 선수 권리지만, 대부분 이를 포기했다. 2012년 이대형(당시 LG) 이후 지난해까지 8년 동안 단 한 명도 권리를 행사하지 않았다.

연봉 갈등이 아예 없었던 건 아니다. 연봉 조정 신청 마감일(매년 1월 10일 오후 6시)까지 계약을 완료하지 않은 사례가 매년 수없이 반복됐다. 하지만 선수들은 조정 신청을 피했다. 구단과의 갈등이 수면 위로 드러나는 걸 경계했다. '승산 없는 싸움'이라는 인식도 있었다. 역대 조정위원회가 열린 스무 번의 사례 중 선수 요구액이 수용된 건 2002년 류지현(당시 LG)이 유일했다. 승률 5%.

그런 면에서 주권(26·KT)의 '선택'은 의미가 크다. 지난해 홀드왕에 오른 주권은 최근 KBO에 연봉 조정을 신청했다. 구단은 1억5000만원에서 7000만원 인상된 2억2000만원을 제시했다. 선수가 요구한 금액은 2억5000만원. 예년 같았으면 울며 겨자 먹기로 구단 제시액에서 합의가 이뤄졌겠지만, 이번은 아니었다. 투수로는 2010년 조정훈(당시 롯데) 이후 11년 만에 연봉 조정 권리를 행사했다.

KBO 공인대리인 A 씨는 "결과가 어떻게 되든지 신청을 했다는 것 자체가 큰 의미다. 사실 우리도 연봉 조정 신청 여부를 두고 고민한 선수가 하나 있었다. 지금 와서 생각하면 신청할 걸 그랬다는 아쉬움이 있다"며 "올 시즌 이후에는 연봉 조정을 해달라는 선수가 (리그 전체에) 3~4명 정도 나올 것 같다. 전쟁터가 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또 다른 공인대리인도 "선수 중 연봉 조정에 대해 문의하는 경우가 늘었다"고 귀띔했다.

주권의 연봉 조정 신청이 일종의 '방아쇠' 역할을 했다. 지금까지 선수들이 연봉 조정을 피했던 이유 중 하나가 '내가 먼저 총대 멜 필요가 없다'는 논리였다. 연봉 조정 신청 여부를 놓고 서로 눈치만 보던 상황에서 주권이 과감하게 권리를 행사한 셈이다. 연봉 조정 신청 마감일 전까지 협상을 마무리하지 못한 C 구단 한 외야수는 "주권의 조정 신청을 두고 선수들끼리도 많은 얘길 한다"고 했다.

연봉 조정에 대한 우호적인 분위기도 한몫한다. 이전에는 "무모한 도전"이라는 평가가 많았다. 2010시즌 타격 7관왕에 오른 이대호(롯데)가 연봉 조정에서 패한 뒤 '어떤 선수가 조정을 신청해도 이길 수 없다'는 분위기가 팽배했다. 하지만 주권의 신청이 알려진 뒤 "요구액이 합리적이라면 선수가 이길 때도 됐다", "제도를 적극적으로 이용할 필요가 있다"는 얘기가 야구계 안팎에서 흘러나오고 있다. 제도를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졌다.

2018년 도입된 대리인 제도도 영향력이 있다. 이전에는 선수가 구단과 직접 협상 테이블을 차려야 하는 부담이 따랐다. 중재위원회에선 선수 본인이 요구액의 근거를 직접 산출·제시해야 했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공인대리인들이 업무를 대신한다. 주권만 하더라도 KBO 공인대리인 강우준 변호사가 연봉 조정 과정을 진두지휘하고 있다. 선수로선 부담이 덜하다.

주권의 조정 과정을 지켜보는 다수의 선수가 대리인을 앞세워 연봉 조정을 신청할 여지가 앞으로는 충분하다. B 구단 단장은 "지금 같은 분위기라면 내년부터 연봉 조정 신청이 더 나올 것"이라고 전망했다.

배중현 기자 bae.junghyun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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