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든 시대] 더 까다로워진 '보호무역주의'..美·中 줄다리기 외교는 끝났다

유준상 2021. 1. 19. 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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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면은 다자주의, 본질은 미국중심주의
완전한 중국 탈동조화 아니라는 예상도
한국 정부, 신통상규범 놓고 美와 협력
박근혜 전 대통령이 재임 시절 서울 종로구 금융감독원 연수원 내 집무실에서 커트 캠벨 당시 미국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담당 차관보의 인사말을 듣고 있다. 바이든은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인도태평양조정관 자리에 커트 캠벨을 임명했다. ⓒ뉴시스

미국 바이든 행정부의 출범이 임박하면서 글로벌 통상 질서가 재편될 것으로 보인다. 국제기구에 활발히 참여하고 다자주의적 무역을 회복하겠다는 원칙을 내세운 만큼 관계국들의 대응 역시 활발해질 전망이다.


19일 외신 등에 따르면 바이든의 통상 전략은 다자주의를 강화이며, ▲세계무역기구(WTO) 기능 회복 ▲세계보건기구(WHO) 미국 재가입 ▲다자통상체제 지지 ▲아세안(ASEAN) 협력 등을 지향하고 있다. 지난 4년간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를 내세우던 트럼프 행정부와 대조적인 대목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70여 년간 미국을 중심으로 재편돼온 국제무역 질서를 고려하지 않고 극단적인 보호무역주의를 내세워왔다. 아군·적군을 가리지 않고 국가별 1대1로 압박에 나섰다. 특히 중국에 대한 공세는 대선 공약을 통해 예측 가능했지만 EU, 캐나다, 멕시코 등 전통 우방국에 대한 강경한 무역조치는 예측을 벗어난 것이었다.


바이든은 미국의 고립을 자처한 이같은 트럼프의 보호무역주의를 탈피하고 동맹국과의 무역 관계를 중시하는 다자주의적 통상 전략을 복원하겠다는 점에서 차이를 보인다. 취임 직후 이를 이행하겠다는 바이든의 선언은 글로벌 가치사슬의 정점에 놓인 '미국의 지위'를 다시 복원하겠다고 천명한 것이다.

고립주의⟶다자주의 바뀌지만…'아메리카 퍼스트' 그대로

그럼에도 바이든의 다자주의는 교역국과 자유무역(free trade)을 바탕으로 한 경제적 연대를 추구하는 기존 다자주의와는 성격이 다르다. 탈(脫)트럼프 기조를 내세우면서도 사실상 자국 노동자·산업 이익에 방점이 찍힌 통상 정책을 원칙으로 삼고 있어서다. 이는 아이러니하게 트럼프식 미국 우선주의와 닮아 있다.


바이든의 통상공약을 살펴보면 '미국 내 제조(Made in America)', '미국산 구매(Buy American)' 등이 돋보인다. 이는 미국 제조업 부흥, 일자리 창출을 통해 코로나19로 악화된 국내 경제를 회복하고 국내 기반 경쟁력을 강화하는 자국 중심 정책으로 요약된다.


이 때문에 무역의 범위는 트럼프 정부보다 확장되지만 보호무역주의는 오히려 더 까다로워졌다는 시각이 많다. 외국 기업에 반덤핑관세, 상계관세 등을 강화할 것이라는 예측도 나온다. 통상 전문가들은 이러한 점을 이유로 미국과 교역에 나서는 국가들이 트럼프 정부보다 나아진 무역 성과를 기대하기는 힘들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바이든이 추구하는 다자주의 무역이 '중국에 대한 효과적인 압력 행사'라는 점에서 트럼프의 정책과 맞닿아 있는 것은 주목할 만하다. 미·중 무역 갈등은 관세전쟁에서 시작돼 반도체, 5G 등 첨단기술 패권 경쟁으로 번져왔다. 특히 미국은 자국의 첨단기술 경쟁력이 중국으로 유출되는 것을 경계하기 위해 대(對) 중국 수출·투자 규제를 감행하는 등 탈동조화(decoupling)까지 선언한 바 있다.


이같이 중국을 견제해야 하는 미국 입장에서 중국 주변국들과 공동전선을 결성하는 것만큼 효과적인 압박 카드는 없을 것이라고 통상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복잡해진 통상 셈법…美·中 사이 커진 외교 압박

미국이 다자주의 통상 전략으로 방향을 틀면서 한국 정부 역시 셈법이 복잡해졌다. 단순히 미국과 교역의 문이 조금 더 열리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글로벌 질서 변화의 흐름을 민감하게 감지해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 정부는 대미 외교 민감도를 끌어올리겠다는 방침을 세운 것으로 전해졌다. 산업부 한 고위 관계자는 "WTO, OECD 등 국제기구에서 논의하는 신통상규범에 관해 미국과의 협력을 강화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고 있다"며 "새로운 규범이나 의견이 나올 시 미국의 입장을 적시에 파악하고 G20, APEC 등 국제회의에서 경우에 따라 미국과 공동발언을 하는 방안도 포함된다"고 귀띔했다.


가장 큰 난제는 미국 신정부가 아세안 협력을 강화함에 따라 한국 정부가 더 이상 미·중 사이에서 모호하고 수동적인 처세에 머물 수 없게 된 점이다. 외신 보도에 따르면, 바이든은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인도태평양조정관을 신설하고 이 자리에 커트 캠벨 전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를 임명했다. 커트 캠벨은 오바마 행정부에서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를 역임한 '아시아통'으로, 바이든 행정부가 중국 견제에 무게를 두고 있다는 것을 시사하고 있다.


더욱이 중국의 외교보복이 현실화하고 있는 상황은 한국 정부에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최근 호주가 코로나19 발원지 조사와 관련해 중국을 압박하는 미국을 옹호하면서, 중국이 호주산 소고기 수입을 중단하고 자국민의 호주 여행을 제한한 것이 대표적이다. 한국 역시 사드(THAAD) 배치 논란으로 경제 보복을 당한 경험이 있다.


다만 통상 전문가들 사이에선 대(對)중국 탈동조화(decoupling)를 직접 언급한 트럼프 행정부와 달리 바이든 행정부에서는 완강한 반중 정책을 펴지는 않을 것이란 시각이 강하다. 바이든 행정부의 국가안보보좌관으로 내정된 제이크 설리번, 국무부장관으로 지명된 토니 블링컨 등의 외부활동 이력을 감안하면 조금이나마 중국과 협력할 여지는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데일리안 유준상 기자 (lostem_bass@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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