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달 징벌적 손해배상 추진, 여당 방침에 재계 긴장
기준 불분명하고 이중 책임 소지
함께 거론된 집단소송법도 논란
여당이 다음 달로 예정된 임시국회에서 징벌적손해배상제도(상법 개정안)와 집단소송법안 추진 방침을 밝히면서 경영계가 다시 긴장하고 있다. 지난 연말 ‘기업규제 3법’(상법·공정거래법·금융그룹감독법)과 이번 달 초 중대재해처벌법에 이어 ‘세 번째 쓰나미’가 몰아치고 있다는 것이다.
여권이 준비 중인 징벌적손해배상제도는 ‘상인이 고의 또는 중과실로 타인에게 손해를 가한 때 손해의 5배를 넘지 않는 범위에서 배상할 책임을 진다’는 게 핵심이다. 기업이 소비자 피해 우려에 대해 주의를 더 하라는 취지의 법안이다.
경영계는 하지만 우선 법안의 문구 중 ‘중과실’의 정의가 모호하다고 반박하고 있다. 중대재해처벌법에 대해 ‘안전 확보 의무를 다했을 때 책임을 면한다’는 규정과 마찬가지로 판단의 기준이 구체적이지도 않고 예측하기도 어렵다는 것이다. 한석훈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한국에선 중과실뿐 아니라 ‘고의’라는 판단도 상당히 넓게 해석해 법적 책임을 인정하는 관행이 자리잡혀 있다”며 “과실에 따른 공권력의 처벌을 기업인이 받는 상황에서 민사 책임까지 부여하는 건 지나친 법안”이라고 말했다.
피해자가 기업 활동에 대한 손해를 주장했을 때 입증 책임 일부를 기업에 부여한 것도 경영계의 또 다른 불만이다. 보통의 손해배상 소송에서는 피해를 주장하는 측(원고)이 그 사실 여부를 입증해야 하는데, 징벌적손해배상제 도입안엔 ‘상인이 해당 손해가 아님을 입증하면 책임이 배제될 수 있다’고 명시됐다.
김주영 서울대 공익법률센터장도 “징벌적 손해배상은 그 책임 범위가 너무 포괄적이어서 반대하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김 센터장은 지난해 12월 이 법안 공청회 당시 법무부가 정부 측 의견에 동의하는 학계 대표로 참석했다. 김 센터장은 “정부는 잘못한 기업인을 처벌해야 한다는 대중적 기대감을 충족시키는 효과를 기대하지만 실효성은 없을 것으로 본다”며 “책임이라는 판단에 대한 법원의 재량권이 너무 크다는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경영계가 함께 반대하는 관련 법안은 집단소송법이다. 현재는 기업 활동에 대한 피해를 주장하는 사람이 소송에서 이겼을 때, 같은 피해를 주장하는 사람도 법원의 판단을 따로 받아야 한다. 집단소송법엔 이런 절차를 완화하는 내용이 담겼다. 집단소송법은 소송을 청구하는 비용인 인지대도 상한선을 뒀다. 손해배상 소송을 낼 땐 배상을 요구하는 금액의 0.35~0.5%의 인지대를 법원에 낸다. 청구하는 금액이 올라갈수록 인지대도 비싸지는 구도다.
정부는 이 같은 규정이 집단소송을 망설이게 한다고 보고 인지대 최고 금액을 5000만원으로 제한했다. 이를 두고 대한상공회의소와 한국경영자총협회 등 경영계는 “법조 브로커, 소송 남발을 본업으로 하는 변호사, 거액의 합의금을 노리는 외국 로펌까지 가세한 무리한 기획소송이 남발될 것”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또 집단소송이 법원에 접수되면 피고(기업 측)가 변호인을 선임하기 전이라도 소송 절차가 진행될 수 있다는 내용도 법안에 포함됐다. 한 로펌(법무법인) 관계자는 “소송 전 합의를 시도할 수 있는 장치를 막고 기업을 압박하겠다는 의도”라고 말했다.
최선욱 기자 isotop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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