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스룰] '현실'에 바탕한 명분과 실리의 균형

2021. 1. 18. 1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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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로서 명분과 실리의 균형을 유지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세상은 마음처럼, 의지처럼, 철학으로만 움직이지 않는, 어디로 나갈지 모르는 예측불가의 살아 움직이는 생물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리더는 명분과 실리의 균형을 유지하고 찾아야 한다. 물론 그것에 함몰되어 기계적인 균형감을 유지하겠다는 일종의 강박에 사로잡히는 것도 리더의 본분은 아니다. 그럼 답은 무엇일까.

▶체면 vs 이익 추구

지난해 12월4일 국내 최대 기업인 삼성전자의 정기 임원 인사가 발표되었다. 이번 인사에서 부사장 31명, 전무 55명, 상무 111명, 펠로 1명, 마스터 16명 등 모두 214명이 ‘삼성의 핵심 임원’으로 승진하거나 ‘삼성의 별’을 달았다. 특히 연구 개발 최고 전문가로 인정받는 펠로와 마스터에서 17명의 승진자가 나온 것과, 코로나19 영향에도 불구하고 승진 인사가 많이 이루어진 것도 특징이다. 삼성전자는 어려운 여건에서도 3분기 매출에서 67조 원을 기록해 ‘성과에는 보상이 따른다’는 경영 방침을 확인시켜 주었다.

이번에 승진한 임원들은 축하 인사도 끝내기 전에 바로 숙제를 맞았다. 그것은 2021년의 전략을 마련하는 것. 삼성전자는 지난해 12월15일부터 3일간 글로벌 전략 회의를 열었다. 이 회의는 통상 1년에 두 번 열리는 회의로 삼성의 미래 전략을 수립하는 매우 중요한 연례행사다. 이번 회의에서는 삼성의 사내 온라인 화상 시스템으로 연결해 삼성전자의 주요 임원, 해외 법인장이 모두 참여하여 삼성전자 모든 부문의 현안을 점검하고 2021년 매출 증대와 연구 개발, 새로운 IT 트렌드 경향을 분석하고 대응 방안을 모색했다.

이처럼 삼성뿐 아니라 모든 기업 역시 내년, 미래를 준비한다. 당장의 현금 제조기도 중요하지만 이른바 ‘미래 먹거리’ 개발과 투자에도 소홀함이 없는 것은 기업의 연속성 때문이다. 장터의 장사치처럼 사람 있는 곳을 찾아 떠돌며 좌판을 벌이는 것이 아닌, 굳건하게 뿌리 내리고 100년 이상을 지탱할 수 있는 기업을 만드는 것은 비단 그 기업만의 과제는 아니다. 물론 이런 명분에 쫓겨 기업에 대한 과도한 보호와 각종 혜택으로 ‘강력한 재벌’의 존재감이 나라 혹은 국민 모두에게 유익한가 하는 의문도 있다. 수백조 원의 매출을 올리는 기업은 국가와 국민에게 필요충분조건은 아니지만 ‘필요한 존재’임에는 이견이 없다. 이처럼 ‘흔들리지 않는 뿌리 깊은 나무’ 같은 기업을 만들기 위한 노력은 회사 규모와 상관없이 이루어진다. 직원 10여 명의 소규모 회사든 직원 수만 명의 대기업이든 마찬가지다. 물론 그 규모와 조직의 역량에 맞춰 전략을 수립하는 결정권자는 리더다. 그런 면에서 리더는 다양한 수단을 갖고 있어야 한다. 어떻게 돈을 벌고 어디에 돈을 쓰는지의 대외적 명분, 회사의 사회적 공헌인 체면도 중요하다. 가장 현실적인 수단으로서 회사 규모를 키우고 돈을 버는 실용과 실리의 균형감을 유지하는 것 역시 리더가 갖추어야 할 능력 중 하나다.

‘체면이 밥 먹여주냐’는 말도 있다. 하지만 개인의 삶을 영위하기 위해 체면을 버리고 오로지 양지나 이익만 좇는 것이 일개 자연인 한 명의 행동이라면 이는 비난 대상이 될 수 있다. 또 그 나쁜 영향력은 주변에 국한되겠지만, 만약 리더의 DNA와 행동이 ‘이익 추구’만으로 가득 채워져 있다면 이는 리더뿐 아니라 조직의 지속력, 건전성에 빨간불이 켜지는 일이다. 개인이든 기업이든 오로지 돈을 벌기 위해 명분, 체면, 양심은 ‘개나 줘 버려’라며 무시한다면 그것은 공정과 상식에 의해 움직이는 시장이 아닌 투전판일 뿐이다. 물론 이 두 가지, 물과 기름처럼 좀처럼 섞이지 않을 것 같은 명분과 실리의 균형을 유지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세상은 마음처럼, 의지처럼, 철학으로만 움직이지 않는, 어디로 나갈지 모르는 예측 불가의 살아 움직이는 생물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리더는 균형감을 유지하고 찾아야 한다. 물론 그에 함몰되어 기계적인 균형감을 유지하겠다는 일종의 강박에 사로잡히는 것도 리더의 본분은 아니다. 그럼 답은 무엇일까. 머리 가르마처럼 명분과 실리를 8:2로 하는 것이 좋을까, 아니면 반대 비율이 좋을까. 이 결정에는 전제 조건이 있다. 조직의 규모, 조직원의 수준, 조직의 방향, 조직의 가치와 미래 비전 등등이다. 뻔한 이야기지만 명쾌한 답을 찾기 어렵다면 우리는 역사에서 그 근사치를 찾아야 한다. 수천 년 전 인물의 리더십을 지금의 복잡다단한 현실에 그대로 적용하기는 어렵겠지만 본질은 유효하다.

▶때로는 가면의 리더십도 필요하다

오늘 소환할 인물은 『삼국지』의 주인공 ‘조조’다. 조조는 누구나 알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조조는 인자한 유비를 괴롭히고 한 황실을 찬탈한 역적이며, 의심 많고 잔혹한 성품의 소유자다. 물론 수많은 군웅 가운데서도 두각을 나타내어 삼국 시대의 리딩 국가였던 위나라를 창업한 영웅담도 있지만 조조는 장점보다 단점이, 충신보다는 역신에 가까운 인물로 역사에서 전해졌다.

이는 조조의 전부가 아니다. 조조는 누구와 비견해도 절대 모자람 없는 리더였다. 그는 군사, 학문, 정치 등에 탁월한 능력을 보유했고, 시문과 그림 등의 예술에도 일가견이 있었다. 또 범 같은 장수와 영리한 책사들을 일사불란하게 지휘한 통솔력에서도 발군의 솜씨를 보였다.

기라성 같은 군웅들을 수하로 부렸고 합종연횡을 통해 시대를 이끄는 리더십에서도 조조는 당대 최고였다. 그는 인재를 영입하는 데 신분, 부, 명예, 귀천을 따지지 않았다. 오로지 충성과 능력이라는 두 가지 잣대로만 사람을 받아들였다. 심지어 부인마저도 능력을 보고 선택했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아마도 기생 출신이지만 머리가 명석하고 재주 있는 변 씨를 비로 맞아들인 데서 나온 말이겠다. 이렇게 발탁한 인재들이 이합집산하며 파벌을 형성하기도 했지만 조조는 이들을 ‘조조의 대업’이라는 커다란 프레임 안에 가두는 능력 또한 뛰어났고 시대적 선구안, 상황 판단력과 임기응변에서도 결코 부족함이 없었다. 해서 그는 삼국 시대 중국의 70%를 지배한 실질적 중국의 리더가 되었다.

물론 잔혹함, 의심, 감성적이고 충동적인 성품 등등은 조조에게 ‘영웅’ ‘충신’ 등의 수식어를 붙이는 데에 주저함이 있다. 해서 한편에서는 조조를 ‘초세지걸超世之傑’, 즉 시대를 초월한 영웅이라고 부르기도 했지만 ‘간웅奸雄’이라는 정반대의 평가가 상존했다. 조조는 중국 역사에서 가장 왜곡된 평가를 받은 인물이다. 『삼국지연의』에서 조조는 재주는 있지만 표독스럽고 변덕스러운 지도자로 그려졌다. 하지만 사가들에 의해 조조는 새롭게 조명받고 있다. 조조의 리더십에서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것은 명분과 실리의 균형감, 그 가운데서 실용을 강조한 현실 감각이다.

위, 촉, 오 삼국 시대를 통일한 것은 바로 조조의 후계 그룹이었다. 후세의 많은 학자, 정치가들은 조조야말로 파격적인 인재 등용, 솔선수범의 탁월한 리더십 그리고 성공의 열매를 부하에게 돌릴 줄 아는 실용적인 인물로 평가한다.

조조는 ‘진심을 숨기고 가면을 쓰는 리더십’의 소유자로 알려져 있지만 분명한 것은 조조 휘하의 수많은 장군과 책사들이 진심으로 그를 따르고 심지어 그를 위해 목숨을 던졌다는 점이다. 조조의 힘이 두려워 겉으로 충성하고 마음으로는 배반하는 신하들이 아니라 그를 위해 목숨을 던진 가신은 한둘이 아니었다. 조조는 부하의 마음을 얻고 나라를 세우고 통치했다. 그는 전쟁을 영웅적 리더십으로 지휘한 인물이다. 흔한 말이지만, 직장은 전쟁터, 혹은 정글 같은 곳이다. 평지도 있지만 한번 빠지면 헤어날 수 없는 늪이 있고, 또한 겉은 아름답지만 속에 독이 가득한 화초도 있으며, 방향을 잃을 정도로 어지러운 지형도 존재한다. 이런 곳에서 목표로 삼은 방향으로 전진해야 하는 리더에게 어쩌면 조조의 실용적인 처세술이 더 필요하다.

조조의 성은 하후 씨다. 그의 아버지인 조숭이 환관 조등의 양자로 가면서 성이 바뀐 것이다. 일부에서는 조조의 선조가 한나라 유방의 개국 공신 조참의 후예라는 설도 있지만 위나라에서 조조가 뼈대 있는 출신이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만들었다는 설이 지배적이다. 이 환관 출신이라는 점은 조조를 평생 따라다니는 스트레스였지만 반대로 환관 집안의 부와 권력은 조조에게는 큰 자산이었다.

한나라 말기, 조조는 20세에 벼슬길에 올랐지만 홍건적의 난이 일어나자 나라와 조정은 일시에 허물어졌고 각지에서 군웅은 물론이고 도적떼들이 들끓었다. 조조 역시 집안의 장정과 가솔들을 주축으로 4000여 명의 군대를 조직했다. 조조는 원소 등 각 제후들과 제휴해 원소 밑에서는 장군직을 맡아 동탁 제거에 앞장섰다.

조조는 야망이 큰 인물이었다. 그는 당시 이름뿐인 황제 헌제를 자신의 본거지 허창으로 모시면서 전국적인 인물로 자리매김한다. 그리고 202년 47세에 원소를 꺾고 하북 등 북부 지역을 포함한 전국의 약 7할을 지배하는 최고 실력자가 된다. 조조는 208년 승상의 지위에 올랐고 213년 위공으로 승진한 후 216년 당시 유 씨 외에는 왕이 될 수 없다는 법을 어기고 위왕으로 즉위해 세력을 떨쳤다. 그는 220년, 아들 조비에게 후계를 물려주었지만 삼국 통일의 대업은 완성하지 못한 채 숨을 거둔다.

▶학벌, 출신보다 능력을 믿어라

조조의 인재 등용 조건은 능력이었다. 조조의 인재 등용 카드에서 제일 많은 점수를 차지한 것은 집안도 학식도 명예도 아닌 능력과 재주였다. 그는 됨됨이보다 능력만 보고 사람을 쓰는 과감한 모습을 보였다. 해서 조조의 수하에는 불효를 하거나 죄를 진 범죄자도 있었다. 이를 두고 학자들은 조조를 비난했지만 출신에 구애 받지 않고 능력주의로 관리를 등용했다는 점에서 조조의 인사 원칙은 파격이었다. 해서 조조 휘하에는 많은 인재가 모여들었고 조조는 이들을 적재적소에 배치해 조직을 능동적으로 그리고 긴장감 있게 유지시켰다. 그 점이 애초 조 씨와 하후 씨 등 집안 인척으로 꾸려진 조조의 군대가 세를 모을 수 있었던 요인이다.

물론 조조도 인간이므로 편협과 보복 심리를 당연히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조조는 통 큰 지도자였다. 그는 지배와 통치 그리고 복속을 위해 배려와 배포도 적절히 이용했다. 이는 많은 군웅 중에서 차별화를 꾀한 조조의 전략적 승리였다. 그는 다른 군웅이 갖지 못한 리더십, 일테면 적을 받아들이는 배포, 배신을 덮어 주는 결단을 내려 적군에게도 ‘조조는 인재를 아끼는 통 큰 리더’라는 인식을 심어주는 데 성공한다.

그 좋은 예가 있다. 조조가 원소와 대결할 때다. 원소의 군세에 고전하던 조조는 참모들의 건의를 받아들여 5000명의 별동대를 이끌고 원소를 기습해 대승을 거두었다. 이때 원소가 보관한 각종 문서들도 조조에게 들어왔다. 특히 원소의 참모였던 진림은 조조에게는 ‘꼭 죽여야 하는 인물’이었다. 그는 천하의 영웅들이 손을 잡고 역적 조조를 죽이자는 격문을 쓴 인물이다. 이 격문 건만으로도 진림은 살아남기 힘든 처지였는데 격문 내용에는 ‘조조는 비천한 환관의 자식’이라는 글이 있었다. 누구보다 자신이 환관 집안 출신이라는 말을 싫어한 조조로서는 진림은 두 번 죽여도 시원찮은 상대였다. 조조의 부하들 역시 진림이 살아남기 어렵다는 것을 알았다. 잡혀 온 진림에게 조조가 물었다. “나만 공격하는 것도 모자라 내 조상까지 욕을 보이다니. 어찌 그렇게 모질게 글을 쓸 수가 있느냐?”

진림은 “내가 하는 일은 화살과 같아서 시위를 떠난 이상 과녁을 향할 수밖에 없습니다”라고 말했다. 참모들은 진림을 죽이라 건의했지만 조조는 진림에게 “그 재주를 나를 위해 쓰라”면서 살려주었다. 진림이 조조의 배포에 감동해 머리를 숙였다. 이는 당시 지식인들에게는 파격적인 사건이었다. 그 뒤 많은 학자들이 조조 편에 가담하게 되었다.

또 조조의 통 큰 리더십을 보여 준 사건은 원소가 남긴 각종 편지와 문서들이다. 그 문서는 원소의 사적인 것도 있었지만 대개는 조조와의 전쟁을 대비해 원소가 벌인 정보전의 증거물도 상당히 많았다. 당연히 조조 지배권 안의 인물들도 있었다. 몸은 조조 측에 있었지만 판세가 어느 한쪽으로 기울지 않고 팽팽하자 이른바 조조와 원소에 양다리를 걸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이런 비밀스런 내용이 담긴 문서가 조조에게 들어간 것이다. 지금 같으면 내 스마트폰이 누군가의 손에 넘어 간 격이다. 그 안에는 메신저로 통한 부장, 과장, 동료들 험담부터 누군가의 눈에 들기 위해 보낸 낯간지러운 아부 문자까지 모두 있는 셈이다. 그러자 수많은 관리들은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때 조조는 파격적인 지시를 내린다. 원소에게서 입수한 모든 문서, 편지를 죄다 불태워 버리라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조조는 “원소가 세가 컸을 때는 나 역시 그를 감당하기 힘들었다. 그러니 다른 사람들은 얼마나 힘든 처지였겠는가. 다 태워 버려라”라고 명했다. 조조도 사람이다. 그 역시 누가 배신했는지 알고 싶은 욕망과 호기심을 누르기 어려웠을 것이다. 자신을 배신한 부하들을 알아내고 처단하고 싶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또 슬쩍 편지를 보고 이름만 알고 덮을 수도 있었겠지만 역시 조조는 한 수 위였다. 아예 편지를 불태우면서 조조의 칼이 언제 들어올지 몰라 불안감에 떨던 수많은 관리에게 자신의 배포를 과시하고 동시에 충성심을 유도한 것이다. 그리고 비록 적이었지만 원소의 무덤에서 울면서 제사를 지냈다. 이를 보고 원소의 부하들마저도 조조에게 고개를 숙이고 항복했다. 그야말로 ‘리더의 배포’란 어떤 것인가를 보여 준 일화다.

유비가 조조에게 몸을 의탁하고 있을 때다. 참모 순욱이 조조에게 훗날을 위해 유비를 제거하라고 건의했다. 조조는 “나에게 몸을 맡겼는데 그를 죽이면 앞으로 어떤 사람이 나에게 몸을 의탁하고 내 말을 따르겠는가”라며 순욱의 말을 거부했다. 또 관우가 조조에게 신세를 질 때도 조조는 관우의 마음을 돌리려 애썼다. 하지만 관우는 조조에게 투항할 마음이 전혀 없었다. 오히려 ‘유비가 있는 거처를 알게 되면 떠나겠다’고 공언했다. 결국 관우는 안양과 문추를 죽이고 떠났다. 조조의 부하들은 격노했다. 관우를 쫓아가 죽이자고 했고 실제로 장수들을 추격대로 보냈지만 관우에게 모두 죽임을 당하고 말았다. 이 모든 것을 보고받고 조조는 “이것도 내 정성과 진심이 모자랐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성공의 열매 대신 실패의 책임을 갖다

조조의 리더십에서 빼놓을 수 없는 점은 성공의 열매는 부하에게 나누어 주고, 실패의 책임은 자신이 졌다는 점이다. 조조는 전쟁에서 승리한 공을 모두 장수들에게 돌렸다. 조조는 전투에서 승리하면 장군부터 말고삐를 쥔 병사까지 상을 주거나 공을 치하했다. 충성심은 자신의 노력과 열성을 알아주는 상대에게 더 커지는 법. 조조는 이 점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승리의 기쁨을 나누거나, 전공을 치하하는 데 어느 누구도 소홀하게 대하지 않아 만약에 있을 군대의 서운함을 미연에 차단했다. 조조 군대의 사기가 하늘에 닿았음은 당연한 일이다. 그에 못지않게 조조는 전투에서 진 장수를 질책하기보다는 자신의 책임을 먼저 인정해 부하들의 감동을 불러일으키는 데 탁월한 재주가 있었다.

조조는 “결과를 놓고 실수를 책망하는 것은 올바른 행동이 아니다. 나의 잘못을 먼저 인정하는 것이 지도자의 올바른 자세다”라고 전하며 군대를 지휘했다. 그는 작은 공도 그대로 넘기는 법 없이 꼼꼼히 챙겼고 장수들의 실수는 너그럽게 인정했다. 물론 이러한 온정주의만으로 조직은 유지되지 않는 법. 조조 역시 이를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상을 주는 것에도 통이 컸지만 반대로 명령을 어기거나 의무를 소홀히 하면 추호의 용서 없이 처벌했다.

조조가 상대방의 영지를 점령하고 1호 명령으로 “백성의 곡식을 한 톨도 밟지 말라”고 엄명을 내렸다. 조조의 추상 같은 명령이 하달되고 얼마 후 조조가 탄 말이 놀라 날뛰면서 백성들이 쌓아놓은 곡식을 발로 차 엉망으로 만들었다. 말에서 내린 조조는 투구를 벗고 칼을 빼어 들었다. 조조의 갑작스런 행동에 놀란 부하들이 조조의 칼 든 손을 잡았다. 그러자 조조는 “물러서라. 군법은 지엄하다. 내 비록 머리칼을 자르지만 이는 내 목을 대신한다”는 말과 함께 머리카락을 잘라 버렸다. 명령의 무게가 얼마나 중한지를 몸소 보여 준 것이다. 이후 조조의 군대는 엄정한 군기를 유지해 백성들의 환영을 받았다.

조조의 리더십은 변화무쌍하다. 이는 임기응변에 강하다는 말이면서 조조 리더십의 바탕이 현실에 있다는 점을 증명한다. 원정길에서의 일화다. 조조의 원정군은 군량이 조금씩 떨어졌다. 한 장수가 군량 담는 되를 작은 것으로 써 일시적으로 병사들을 속여 이 위기를 모면하자고 제안했다. 조조는 그 제안을 받아들였다. 얼마 후 병사들이 이 사실을 알았고 불만이 고조되기 시작했다. 자칫 반란까지 일어날 지경이었다. 조조는 임기응변으로 이 위기를 모면했다. 그는 장수들과 병사들을 모았다. 그리고 “군량미를 담당하는 자가 작은 되를 사용해 나와 병사들을 속였다. 내 그 죄를 용서하지 않겠다”고 외치고 꾀를 낸 장수를 처형했다. 병사들의 불만은 수그러들었다. 조조의 임기응변과 잔꾀에 억울한 장수만 죽은 셈이다.

또 조조가 원소의 잔당들을 추적할 때 일이다. 원소의 잔당은 그리 위협적인 존재도 아니고 그들을 없애는 일이 급한 것도 아니었지만 조조는 군사를 휘몰아 잔당을 추적했다. 승리에 도취해 냉정한 판단력을 잃은 것이다. 참모들이 다른 현안이 급하다고 말렸지만 조조는 말을 듣지 않았다. 결국 힘든 고생 끝에 승전했지만 조조 군이 입은 피해도 컸다. 원정을 마친 조조는 “나에게 원정을 말린 장수와 책사들의 명단을 보고하라”고 명령했다. 주변에서는 원정에서 고전한 조조가 부하들에게 화풀이를 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조조는 그 예상을 뒤집었다. 조조는 모든 부하들 앞에서 그들을 칭찬했다. “내가 그대들에게 상을 내리겠다. 너희들은 그때와 마찬가지로 앞으로도 내가 그릇된 판단을 하면 서슴지 말고 나에게 반대 의견을 말하라”. 부하들은 다시 한번 조조의 리더십에 탄복했다.

조조 리더십의 근간은 ‘현실에 바탕을 둔 실용과 실리’다. 조조는 누구보다 실질적인 효과와 이득에 밝은 사람이었다. 그는 용인술에서도 이 점을 충분히 활용했다. 조조 군의 주력은 두 세력이었다. 하나는 조조의 인척으로 조인, 조홍, 하후연, 하후돈 등이고 또 하나는 외부 영입 세력이었다. 장료, 서황, 허저 등의 무신과 순욱, 순유, 정욱, 곽가, 사마의 등이 그 주축 멤버였다. 조조는 그 어느 쪽에도 힘을 더하지 않고 팽팽한 균형감을 유지했다. 충성 경쟁을 통해 리더십을 세우고 목표로 향했다. 조조는 자신에게 패한 적장들도 용서하고 그들에게 공을 세울 기회를 준 뒤에 그 공을 인정하면서 진정한 충성심을 얻었다.

직장 생활에서 리더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는 단순히 리더 개인의 것이 아니다. 부서와 구성원 모두에게 그 영향이 미치고, 최악의 경우 피해를 구성원들이 분담해야 하는 경우도 발생하기 때문이다. 리더는 목표를 설정하고 그 목표에 다가가기 위한 동기를 부여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 리더는 부서원의 마음을 얻어 내야 한다. 그 방법은 많다. 나를 낮추고 상대를 높이는 겸손의 리더십, 이익을 위해 정도와 패도를 가리지 않는 올인 리더십 등 다양하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명분과 실리, 냉정한 이성과 뜨거운 감성, 현실과 미래 비전 등을 골고루 쓰면서 부서를 하나로 만들고 최대 이익을 추구하는 ‘실용의 전략’이다.

[글 박기종(커리어 코칭 칼럼니스트) 사진 언스플래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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