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클릭] 걸 '발레리나'를 꿈꾸는 소년, 아니 '소녀'

2021. 1. 18. 17:54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드라마/ 루카스 돈트 감독/ 105분/ 15세 관람가/ 1월 7일 개봉
사춘기를 생각하면 하얀 천 위에 빨간 물감을 한 방울 떨어뜨리는 장면이 연상된다. 빨간 점이 천에 스미고 번져가듯, 사춘기는 선명하게 아프다. 성숙하지 못해 실패하고 넘어지기 일쑤인 데다, 순수하기 때문에 더욱 깊게 상처 입고 좌절한다. 우리는 모두 그런 시기를 겪고 성장해왔다.

영화 ‘걸’은 바로 그 사춘기를 그려낸 작품이다. 16세 아직 어린 소녀의 삶과 도전, 그리고 변화를 조명하며 그녀의 내적 세계를 깊이 들여다본다. 이 작품은 벨기에 젊은 감독 루카스 돈트의 장편 데뷔작. 2018년 제71회 칸 국제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초청작으로 황금카메라상, 주목할 만한 시선 남우주연상(빅터 폴스터), 국제비평가협회상, 퀴어종려상 4관왕을 차지했다. 감독은 물론이고 주연배우 빅터 폴스터 역시 큰 주목을 받았다.

주인공 라라(빅터 폴스터 분)는 발레리나를 꿈꾸는 조용한 소녀다. 그러나 그는 안타깝게도 남자의 육체로 태어났다. 정신도 마음도 여자인 라라는 성전환 수술을 준비하고 호르몬 치료도 받고 있는 중이다. 재능을 인정받아 최고 무용학교에 진학한 라라는 꿈을 향해 달리기 시작한다.

이런 종류의 영화가 항상 그렇듯 라라는 큰 벽에 부딪친다. 하나는 성별의 벽, 다른 하나는 주위의 시선이다. 여성 ‘발레리나’로 훈련을 받는 라라는 다른 여자아이들에 비해 불리한 조건을 지녔다. 재능을 인정받아 입학이 허락됐지만 수업을 따라가기 벅차다. 라라는 피투성이가 된 발을 테이프로 감싸며 토슈즈를 신는다.

라라의 성장통은 너무도 아프다. 또래 여자아이들에게 성추행에 가까운 괴롭힘을 당하는가 하면, 좋아하는 남자아이와의 관계에서 자신이 지닌 한계를 여실히 깨닫는다. 조급해진 라라는 호르몬 투여량을 늘려달라고 하지만 병원에서는 허락하지 않는다. 호르몬 치료를 시작했지만 좀처럼 변하지 않는 자신의 몸. 라라는 내면과의 싸움에서 점점 밀려나 절벽 끝에 서게 된다.

트랜스젠더가 등장하는 영화 혹은 성전환 수술 등의 이슈를 다루는 영화는 보통 정체성을 찾는 데 집중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영화 ‘걸’의 라라는 정체성을 고민하지 않는다. 그는 이미 여성이 될 준비를 끝낸 상태다. 그럼에도 그를 담고 있는 육체는 계속해서 고통스러운 시험을 내린다. 영화는 트랜스젠더가 겪는 고통과 절망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려 한다. 라라의 곁에는 그를 이해하고 응원하는 가족이 있다. 하지만 거울 앞에서 나신이 된 채 자신과 마주하는 라라의 고독과 아픔까지 함께 짊어질 수는 없다.

영화의 막바지, 라라의 다소 충격적인 선택에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극도로 몸이 약해져 성전환 수술이 어려울 수 있다는 진단을 받은 라라의 선택은 충동적인 사춘기 그리고 미성년임을 감안하더라도 다소 극단적인 면이 있다. 트랜스젠더의 어둠을 드러내려다 오히려 라라의 캐릭터를 무너뜨린 감독의 선택은 사뭇 아쉽다.

[라이너 유튜버 유튜브 채널 ‘라이너의 컬쳐쇼크’ 운영]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093호 (2021.01.20~2021.01.26일자) 기사입니다]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매경이코노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