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17살 차이 룸메가 코 골지만, 좋은 주장이 되기 위해 참는 오범석

김정용 기자 2021. 1. 18. 1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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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풋볼리스트=서귀포] 김정용 기자= 37세 포항스틸러스 주장 오범석은 20세 후배가 옆에서 코를 골 때 '라떼' 생각이 들곤 한다. 그러나 편한 선배로 남아야 하기 때문에, 후배의 "형과 계속 방을 쓰고 싶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고 한다.


오범석은 지난해 무려 13년 만에 포항으로 돌아왔다. 유스 출신인 오범석은 2007년 포항을 떠나 해외진출을 추진하면서 구단과 마찰을 겪기도 했다. 그러나 일본, 러시아, 중국, 한국에서도 라이벌인 울산현대 등을 거친 뒤 지난해 여름 강원을 떠나 포항으로 복귀했다. 구단 관계자들은 오범석이 돌아오자마자 팀의 단합에 큰 도움을 줬다고 입을 모았다. 그리고 이번 시즌은 주장으로 선임됐다. 싸우고 집 나갔던 아들을 다시 받아 완장까지 채워준 이유를 제주도 서귀포시에서 전지훈련 중인 오범석에게 들어봤다.


- 돌아오자마자, 마치 포항에서만 17년 내내 뛴 선수처럼 잘 적응했다고 들었어요.


저도 오랜만에 와서 사실 어색했어요. 특히 첫날은 모르는 선수가 대부분이었으니까 속으로는 거리가 있었죠. 하지만 우리나라 문화에선 선배를 어려워하잖아요. 먼저 다가가는 선배가 되고 싶었어요. 제가 지나온 날들이 생각나서 챙겨주고 싶었고요. 그래서 노력했죠. 밥도 사고 커피도 사고.


- 13년 전에는 얼굴 붉히고 나갔지만 돌아오면 따뜻한 팀인가요?


저같은 경우는 나갈 때 조금 그런 일이 있었죠. 어쨌든 감독님이 선수 생활을 같이 했고 저를 좋게 봐 주신 부분과, 저를 필요로 하셨던 부분이 맞아떨어진 것 같아요. 지금은 후배들을 잘 챙기고 승리를 이끌면서 팀에 기여하려고 하고요. 지금은 옛날 일보다는 현재의 경기력과 인성, 모습이 더 중요한 것 같아요. 좋은 모습 보여드리려고 노력합니다.


- 가능성을 보여줘서 신광훈, 신진호의 복귀에도 영향을 미쳤다는 시각이 있어요.


제가 작년에 성공했다고 하긴 힘든데요. 복귀 후 K리그 9경기밖에 못 뛰었어요. 제가 생각했던 경기수를 못 채웠어요. 개인적인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고요. 광훈이, 진호도 30대 중반이 됐으니 처음 시작한 포항에서 마무리를 하고 싶어 돌아온 거겠죠.


- 출장 경기는 적었지만 최영준 파트너, 시즌 중 공백이 생긴 측면수비 등 팀에 필요한 역할을 요소마다 했던 걸로 기억하는데요.


감독님이 포인트를 잘 짚으세요. 중요한 경기 나가기 전에 '오늘 콘셉트는 이렇게 할 거야'라고 간단하게 말씀하시는데 그 지시대로 하면 경기가 잘 되더라고요. 저는 경험이 있다보니 그 지시를 잘 이행하는 편이었고요. 상대 감독님에게 대응하는 우리 감독님의 전술이 좋았던 거죠.


- 올해 목표는 뭔가요?


주장이 됐으니까 팀 성적부터 생각해야죠. 작년에 3위 했으니까 올해는 그것보다 좋은 성적 거두고 싶어요.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서로 경쟁하는 팀을 만들고 싶고요.


- 룸메이트가 17살 어린 고영준인데요.


옛날 같으면 후배는 누워있지 못하죠. 그렇다고 방을 비우는 것도 금지였어요. 통화를 하는 것도 힘들었고요. 그런 건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절 편하게 생각하는 것 같아 다행이예요. 예를 들어 진호가 훈련 도중에 합류했는데, 2인 1실을 쓰는 와중에 제가 방을 혼자 쓸 수 있는 상황이 됐어요. 제가 영준이에게 먼저 물어봤어요. 새로 오는 진호랑 같은 방 쓸래? 영준이가 싫다는 거에요.


- 신진호 선수가 이 인터뷰 봐도 되나요?


끝까지 들어보세요. 영준이에게 이유를 물어봤더니 진호 형은 무섭다는 거에요. 원래 진호 첫인상이 그렇긴 하잖아요. 친해지면 물론 다르지만. 난 안 무섭냐고 물어봤더니 '형은 편해요'라더라고요.


저는 작년에도 원정 경기 때는 영준이와 방을 썼어요. 제가 잠이 예민해서 코 고는 사람 싫어하는데 안 골더라고요. 작년의 기억이 좋아서 여기서도 함께 방을 쓰는데, 전지훈련이 피곤한지 요즘엔 좀 골아요. 몇 번이나 '일이 벌어질' 뻔했는데 제가 참았죠. 뭔가 날아갈 뻔한 적이 몇 번인지.


- 김기동 감독이 선수들을 편하게 해 주니까, 주장도 그렇게 하는 게 아닐까요?


그렇죠. 일단 소통이 되는 분이에요. 선수의 의견을 듣고 받아주려 하시는 게 좋죠. 감독님은 고등학교 졸업하고 프로 생활을 시작해서 마흔까지 하셨잖아요. 정말 어린 선수부터 제 나이까지의 심리를 너무 잘 알고 계세요. 그래서 선수들은 감독님이 말씀하실 때 깜짝 놀랄 때가 있죠. 예를 들면 작년에 제가 이적 직후에 의욕은 넘치는데 부상을 당해서 굉장히 조급했어요. 그때 감독님이 불러서 그러시더라고요. '조급하지? 그런데 다 낫기 전까지는 안 쓴다. 조금 나아도 안 쓴다. 완벽하게 낫고 와라. 기다려 줄 테니까.' 그 순간 안정이 됐어요.


- 개인적인 목표도 있을 것 같은데요.


앞으로 21경기만 더 뛰면 400경기가 돼요. 할 수 있다면 400경기 채우고 싶어요. 그리고 옐로카드를 3장 더 받으면 100장이 돼요. 그건 할 수 있다면 달성 안 하고 싶죠. 그러나 뭐 경기하다 보면 달성해버릴 수도 있겠죠. 오래 뛰다 보니 그런 기록도 갖게 되더라고요.


400경기 돌파한 사람이 제 위에 서른 몇 명(실제로는 17명) 있는 것 같던데요. 경고는 저보다 맣으신 분이 김한윤 선수뿐이었던 것 같아요. 현역 중에는 제가 경고왕 겸 반칙왕이고, 은퇴하신 분 중 반칙 순위는 김한윤 코치님과 김상식 선수, 아니, 형, 아니 감독님 중 누가 일등인지 정확히 모르겠네요. 그런데 저는 다이렉트 퇴장은 또 없어요. 가끔 퇴장당한 것도 경고누적 뿐이었죠.


* K리그 역대 최다 경고 순위는 김한윤의 143회, 오범석의 97회, 양상민의 95회, 강민수의 94회 순이다. 반칙 순위는 김상식의 970회, 김한윤의 905회, 오범석의 853회 순이다. 최다출장 순위에서 오범석은 379경기로 역대 25위다. 400경기를 돌파한 선수는 현재 17명이다. 올해 400경기 달성 가능성이 높은 선수는 염기훈, 최철순 등이 있다.


- 반칙은 하되 징계는 안 받는 요령이 있으시군요?


솔직히 파울이 많은 편인데, 후배들도 경기 해 보니까 알더라고요. '심판들이 범석이 형은 옐로를 안 준다'고 수군거려요. 저는 파울도 기술이라고 하죠. 그 기술은 전수해주기 힘들어요. 직접 해 봐야 알죠.


- 주전 멤버의 전력 변동이 너무 커서 불안하지 않나요?


솔직히 작년 외국인 선수들 너무 좋았잖아요. 그 친구들이 다 나가고 새로운 선수들이 들어오는데, 그만큼 할 수 있을까 제일 걱정이죠. 똑같이 못 해준다고 해도 우리가 부진할 것 같진 않아요. 왜냐면 공격을 제외한 수비형 미드필더와 수비진은 한국 선수들이 많이 유지되기도 했고 지금 멤버도 강하거든요? 네? 최영준, 김광석, 하창래(김천상무 최종 합격할 경우)의 공백이요? 신진호가 들어왔고 권완규, 전민광 중심의 센터백이 나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작년에도 밖에서 보는 예상순위는 8위 정도였는데 3위 했잖아요. 안에서 보기엔 달라요.


- 은퇴 후를 생각할 나이가 됐어요. 지도자 자격증은 땄나요?


앞으로 뭘 할지 정하지 못한 상태인데도 일단 B급까지 땄어요. 전 현재에 집중하는 편이에요. 가끔 추상적인 생각은 해 봐요. 어떤 지도자가 되고 싶은지, 어떤 유튜버가 되고 싶은지. 그 중에서 정해진 길은 없어요.

오범석(포항스틸러스). 풋볼리스트

- KBS의 e스포츠 프로그램에 출연하셨는데 분량이 영….


그건 말입니다. 그 게임에서 실제 저를 반영한 캐릭터가 나와서 수비수거든요. '피버 모드'가 발동하면 공격수들은 슛이 세지는데 저는 슈퍼태클이 가능해요. 그래서 수비만 했어요. 방송 분량은 적었지만 우승에 대한 기여도는 괜찮았습니다.


좋아하는 게임은 위닝일레븐입니다. 중학생 때부터 했어요. 은완코 카누의 나이지리아 대표팀이 아주 강했던 버전이죠. 그런데 세대가 바뀌었어요. 다들 피파 하더라고요. 송민규, 고영준 같은 어린 친구들이 잘 하고요. 저도 가끔 함께 해 보는데 영 안 되더라고요. 가끔 집에서 위닝 마스터리그나 합니다.


사진= 풋볼리스트, 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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