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밥 못 묵겠다" 배달원이 겪은 변호사 부부 갑질 [사연뉴스]

김지은 2021. 1. 18. 1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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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A씨 제공


순댓국집을 운영하는 A씨는 지난 17일 황당한 일을 겪었습니다. A씨의 가족은 18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장사를 하면서 참 많은 일을 겪었지만 충격에서 벗어나기 쉽지 않다”고 말했는데요. 과연 어떤 사연일까요.

A씨는 지난 17일 배달앱을 통해 국밥 두 그릇과 소주 2병을 주문받고 직접 배달에 나섰습니다. 띵동띵동. 벨을 누르자 집안에서 여자아이의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엄마가 문 앞에 두시고 가시래요.”

A씨는 난감했습니다. 배달 과정에서 주류를 전달할 때는 미성년자 여부를 반드시 확인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사장님과 배달원 모두 처벌받을 수 있습니다. A씨는 단호하게 말했습니다. “술이 있어서 놓고 갈 수 없어요. 직접 받아주셔야 해요.”

그러자 아이 엄마의 짜증 섞인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냥 놓고 가라고 해. 못 나간다고.” 현관문을 두고 A씨와 아이 엄마의 실랑이가 이어졌습니다.

“안돼요. 술이 있어서 그냥 못 놓고 가요.”
“아니, 그냥 놓고 가세요. 저희 단골이고 변호사집인데 괜찮아요.”
“네? 단골이요? 변호사댁이라 뭐가 괜찮은지 모르겠지만 벌금 내고 처벌받는 거는 저희라서 안 됩니다.”
“저기요. 다 같이 사는 아파트인데 좀 조용히 좀 하시고요. 아기 씻기고 있어서 못 나간다고요.”


A씨는 핸드폰으로 전화를 할 테니 확인만 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하지만 아이 엄마의 답변은 단호했습니다. “사장님이랑 전화한다고 그냥 가시라 해. 코로나도 위험하고 밖에 못 나간다고요. 그냥 놓고 가세요.”

문 앞에 한참을 서 있던 A씨는 결국 초강수를 뒀습니다. “그럼 술은 가져가겠습니다.” 그리고는 지하주차장으로 내려갔죠. 그때 전화벨이 울렸습니다. 아이 엄마는 본인이 문밖에 나왔는데 왜 갔느냐며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는 다 가져가라고, 안 먹겠다고 화를 냈다고 합니다.

A씨는 단호하게 말했습니다. “그렇게는 못 하고요. 문자 보냈으니 계좌번호 주시면 소줏값 8000원 환불하겠습니다.” 이후 두 사람은 문자메시지를 주고받았는데요. 아이 엄마는 온갖 폭언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미X 새X. 너네 가게 찾아갈 거니까 그런 줄 알아” “변호사 집이고 너 CCTV 다 찍혔어. 문 열자마자 내려간 거” “이거 문 앞에 계속 놓아둘 거다. 손 안 댔고” “더러우니까 가져가. 개밥 못 묵겠다” “돈 떼어먹으니 장사 잘하겠다. 이거야. 양아치야.”


30분 뒤 이번엔 아이 아빠에게서 문자가 도착했습니다. A씨는 “좀 대화가 되려나 싶어 대화를 시도하니 똑같았다”며 메시지를 공개했습니다. 이날 아이 아빠는 “문 열자마자 애 엄마 애 안고 물 뚝뚝 떨어지면서 나갔는데 그냥 가시는 것 봤습니다. 배달 거부입니다”라고 문자를 보냈습니다.

그러면서 “서비스 잔돈푼 벌면서 인성 챙기고 사세요” “해장국 장사 왜 하는지 뻔히 보이네요” “막나가는 무식한 사람은 매로 다스리라 했는데 집안 교육을 어떻게 받고 살았기에 사회생활이 삐딱한지” “평생 배달 열심히 하시길 바랍니다. 분수에 그것도 과분한 직종 같은데. 무식이 도가 넘네요” 등의 글을 남겼습니다.

순간 A씨는 분노가 치밀었다고 합니다. A씨는 “변호사가 법을 어기게 해도 되는 건가요”라며 “자영업이 시작은 아무나 할 수 있도록 쉽게 만들어 놓고 조그만 분쟁이 일어나면 아무 이야기도 안 들어줍니다. 도대체 변호사라는 직업이 얼마나 대단하길래 이렇게 안하무인일 수 있는지 세상 두렵네요”라고 속상한 마음을 전했습니다.


A씨 가족은 이날 통화에서 자영업자의 고충을 전했습니다. 그는 “물론 미성년자 주류 단속을 해야 하는 것은 맞다”면서도 “하지만 업주로서 어려움이 많다”고 토로했습니다.

“일부는 배달의민족(배민)으로 주문했으면 성인 인증 되는데 왜 또 확인하느냐고 말해요. 하지만 법이 그렇게 돼 있어요. 배민으로 인증을 했더라도 실제로 받는 사람이 그 사람인지 확인하게 돼 있어요. 또 배달을 하다 보면 어떤 사람들은 문도 안 열어줘요. 5~10분 기다리는 경우도 다반사예요. 그러면 계속 딜레이되고 다음 기다리는 손님들에게 피해를 줍니다.”

업주에 대한 엄격한 처벌도 지적했는데요. 현행법상 미성년자에게 주류를 판매한 음식점주는 1차 위반 시 영업정지 2개월을 받게 됩니다. 2차 위반 시 3개월, 3차 위반 시 영업소 폐쇄 처분을 받습니다. 청소년보호법에 따라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도 내야 합니다.

“손님이 어려 보이지 않으면 검사하기 쉽지 않아요. 중간에 손님이 와서 은근슬쩍 합석하는 경우도 있고요. 이런 경우에도 업주는 벌금이나 영업정지를 당해요. 당연히 업주 입장에서는 철저하게 검사할 수밖에 없죠. ”

A씨는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저도 사회복지 전공했고요. 비영리기구 운영 관련 석사 과정도 수료했습니다. 몇몇 기관에서 일해보면서 남들 돈만 가지고 좋은 일 하기 쉽지 않더라고요. 나도 돈 좀 벌어서 내 힘으로 좋은 일 해보자는 생각에 자영업에 뛰어들었습니다. 최근에는 독거 노인 식사 제공도 매월 50여분씩 하고 있습니다. 나름 지킬 거 지키고 최선을 다해 양심적으로 장사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인데 왜 내가 이런 대접을 받아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사연뉴스]는 국민일보 기자들이 온·오프라인에서 접하는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독자 여러분과 공유하는 코너입니다. 살아 있는 이야기는 한 자리에 머물지 않습니다. 더 풍성하게 살이 붙고 전혀 다른 이야기로 반전하기도 합니다. 그런 사연의 흐름도 추적해 [사연뉴스 그후]에서 알려드리겠습니다. [사연뉴스]는 여러분의 사연을 기다립니다.

김지은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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