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바로 밑에 GTX 지나가는데 아무런 보상 없다고?
“우리 집 밑으로 GTX가 지나가더라도 보상을 받을 수가 없다면?”
지하 40m 이하(대심도) 개발에 대해서는 토지 소유자에게 보상하지 않는다는 것을 골자로 한 소위 ‘대심도 특별법’이 논란이다.
토지 소유권은 지하 어디까지 인정될 수 있을까.
지하 공간은 깊이에 따라 천심도와 중심도, 대심도로 구분된다. 천심도는 지표로부터 5m 이내, 중심도는 5~40m, 대심도는 지표면에서 40m 이하 깊이에 있는 지하 공간이다.
토목 기술 발전과 함께 대심도 지하 공간을 활용한 도로와 철도가 조금씩 생겨나고 있다.
현재는 지상 토지 소유주에게 해당 사업 계획을 알려야 하고 보상금을 지급해 사전 협의를 거친 후 구분지상권을 등기한다. 사전 협의가 안 되면 토지수용위원회 행정처분(재결)을 거쳐 보상금을 지급하는 절차를 따른다. 깊이나 토지 면적에 따라 토지 가격의 0.2~1% 수준의 보상금을 지급한다. 대심도 특별법이 통과되면 이 같은 절차가 필요 없어진다.
정부와 국회는 ‘교통시설의 대심도 지하건설·관리에 관한 특별 법안’을 지난해 11월 국토교통위원회 전체회의에 상정했다. 12월 초 공청회를 거쳐 법안을 통과시킬 예정이었다. 하지만 찬반 논란이 거세지면서 당초 예정됐던 공청회는 무기한 연기됐다.
쟁점1무보상 원칙
▶헌법·민법 대원칙 어긋나
대심도 특별법을 추진하는 배경은 국민 편익이 높은 도로와 철도 사업을 신속하게 추진하기 위함이다.
국책 사업은 공공성을 기반으로 한다. 지금까지는 기존 토지 소유주와 협상을 거친 후 사업을 진행해야 했기에 사업 자체가 지연되거나 종종 무산되는 경우가 많았다.
GTX-A노선은 2019년 6월 공사 착공하려 했으나 주민 민원과 지방자치단체 반발로 한때 공사가 중단됐다. 지난해 6월이 돼서야 사업이 재개됐다.
대심도 특별법에서 가장 논란이 되는 조항은 제8조다. 제8조에서는 교통시설을 짓는 대심도 지하에서는 구분지상권을 설정하지 않고 ‘별도 보상 없이’ 토지를 사용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구분지상권이란 토지의 지상·지하 공간을 사용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문제는 ‘무보상 원칙’이 헌법 이념이나 민법 토지 소유권 개념에 부합하는지다. 헌법 제23조 3항에서는 “공공 필요에 의한 재산권의 수용·사용 또는 제한, 그에 대한 보상은 법률로써 하되, 정당한 보상을 지급해야 한다”고 규정한다. 개인 재산권 사용 시 정당한 보상을 한다는 것이 핵심이다. 민법 제212조에서도 “토지 소유권은 정당한 이익이 있는 범위 내에서 토지 상하에 미친다”고 명시돼 있다.
현재 공공 사업을 시행하는 과정에서 토지 보상을 진행할 경우 ‘토지보상법(토지 등의 수용·사용에 관한 법률)’을 적용받는다. 토지보상법은 ‘선보상 후공사’가 원칙이다. 먼저 보상을 한 후 해당 토지를 사용(혹은 수용)할 수 있다. 대심도 특별법은 특정 범위 내 공익 사업은 아예 ‘무보상’을 전제로 한다. 재산권 침해와 위헌 논란이 제기되는 이유다.
쟁점2안전성 논란도
▶지하 40m 이하는 영향 없을까
안전성 문제 역시 의견이 입장별로 다르다.
정부는 지하 40m 이하인 경우 기존 지표면에 있는 건물에 큰 영향이 없다고 강조한다.
정부 주장 근거는 이렇다.
우선 땅속으로 들어갈수록, 즉 대심도일수록 암반이 단단하다. 때문에 시공 중 안전성이 더 뛰어나고 지진에 대한 저항력도 갖췄다는 것이 정부 측 논리다.
특히 한국의 토목 기술은 세계적인 수준이다. 지질에 맞게 적절한 보강 대책만 세우면 충분히 안전하게 공사를 진행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반면 토지 소유자 입장은 다르다. GTX를 예로 들면 이해가 쉽다. 아직 GTX는 한 번도 운행되지 않았다. 공사 과정에서 큰 문제가 없더라도 완공 후 운행 과정에서 진동 등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정부는 안전하다고 하지만 사람에 따라 철도로 인한 소음과 진동 등을 느끼고 피해를 보는 사례도 나올 수 있다.
이 때문일까. 청담동 GTX-A 비상대책위원회 측은 “공사를 할 때도 문제이지만 시속 180㎞로 매일 150차례 이상 운행하다 보면 지반에 문제가 생기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말한다. 대치동 은마아파트 주민들 역시 “GTX는 가능한 한 직선으로 운행하고 대규모 주거단지는 피한다는 대원칙이 있는데 현재 계획은 이를 모두 어겼다”며 반발한다.
▶대심도 논란 해법은
▷해외 사례 참고·의견 수렴 필수
대심도 특별법 논란은 결국 ‘공익’과 보호받아야 할 ‘사익’ 중 어떤 것을 중요시하느냐에 대한 선택의 문제로 귀결된다.
현재 수도권은 밀집도가 높아지고 있으며 교통 수요는 늘어나고 있다.
공간은 한정돼 있는 상황에서 수요를 충족하려면 대심도 활용은 필수다. 부의 강남 편중이나 부동산 양극화, 도심 교통 문제 해결을 위해서라도 대심도 특별법은 일견 수긍이 간다.
반면 ‘무보상’으로 대변되는 특별법이 원안 그대로 국회를 통과하면 재산권 침해 이슈가 불거질 수밖에 없다. 지역 주민이 아무리 반발해도 정부가 사업을 강행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마련되기 때문. GTX 역이 들어서지 않고 노선만 지나는 주민은 법적 다툼조차 할 수 없게 된다.
전문가들은 현재 추진 중인 ‘무보상’ 원칙은 위헌 논란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신중히 접근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최철호 청주대 법학대학원 교수는 “대심도 이하 공간 사용에 대해 일률적으로 ‘무보상’ 원칙을 특별법으로 규정짓는 것은 헌법 제23조 3항에 위배될 가능성이 있다”며 “일본 등 다양한 해외 사례를 참조하고 좀 더 많은 의견을 수렴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일본 대심도 특별법은 어떻게?
日 특별법은 ‘先공사, 後보상’ 원칙
일본은 일찍부터 지하 공간 활용을 위한 특별법을 마련했다. 1995년 대심도 지하 사용법 제정을 위한 전문가 집단이 만들어졌다. 이들이 만든 정책보고서를 토대로 2000년 ‘대심도 지하 공공적 사용에 관한 특별조치법’을 제정했다. 이 법은 2001년 4월 1일부터 시행되고 있다.
지하 40m 이하는 공용 공간으로 토지 소유권자 동의 없이 사용할 수 있으며 구분지상권을 설정하지 못하게 한다는 것이 골자다. 사유재산과 공공 이익 조화를 위해 마련한 법안이다. 물론 일본 내에서도 대심도 특별법은 일본 헌법에 위반될 수 있다는 논란이 제기된다.
일본 대심도 특별법은 현재 한국 법안과 다소 차이가 있다. 현재 한국에서 추진하는 대심도 특별법은 ‘무보상’을 원칙으로 한다. 일본은 입법 취지가 ‘선공사, 후보상’이다. 토지 소유자 동의 없이 공사에 착수할 수는 있지만 나중에 손해가 발생했음이 인정되면 사업자가 보상을 진행한다. 다만 발생한 손해에 대해서는 토지 소유자가 직접 입증해야 한다.
[강승태 기자 kangst@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093호 (2021.01.20~2021.01.26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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