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단이 뭐길래.. 고덕면 마을은 왜 붕괴 위기인가

이재환 2021. 1. 18. 10:27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예당2산업단지 건설 놓고 주민 갈등.. "형제끼리도 엇갈려, 마을 원상복구될지 걱정"

[이재환 기자]

 지곡리 인근에 있는 예당1산업단지 모습이다. 일요일인데도 s금속 굴뚝에서는 하얀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 이재환
  
50가구 70여 명의 주민이 사는 작은 시골 마을이 요즘 산업단지 건설 문제로 뒤숭숭한 상황이다. 마을 주민들은 산업단지 건설 문제를 놓고 찬반으로 나뉘어 서로 반목하고 있다. 심지어 형제와 사촌 사이에서도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오랫동안 유지해온 마을공동체도 붕괴 위기에 놓였다.

최근 충남 예산군 고덕면 지곡리와 오추리 일대에 예당2산업단지 건설이 추진되면서 마을 주민들 사이에 이상기류가 흐르기 시작했다. 산업단지 건설을 찬성하는 주민들은 "기존 공장에서 나오는 매연이 심각하다. 이 기회에 땅을 팔고 이주를 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반면, 산업단지 건설을 반대하는 주민들은 "조상 대대로 내려온 삶의 터전을 버릴 수가 없고, 산업단지가 건설되면 이웃마을(상장리)에 피해를 줄 수 밖에 없다"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실제로 고덕면에는 이미 예당산업단지와 고덕 신소재산업단지 등 4개의 공단이 있다. 특이한 점은 산업단지 건설을 찬성하는 주민과 반대 주민들 모두 기존 공단의 '안전성'에 대해 불신감을 드러내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 17일 충남 예산군 고덕면 지곡리를 찾았다. A공장이 마을 입구를 가로 막듯이 거대한 풍채를 뽐내며 서 있었다. 마을 이장을 통해 마을의 분위기를 전해들을 수가 있었다. 최장율 지곡리 이장은 "나는 이장이라서 중립을 지킬 수밖에 없다"면서도 산업단지 찬성 주민들에 대한 '아쉬운 마음'을 숨기지 않았다.
 
 지곡리에서 본 A인더스트리 공장
ⓒ 이재환
 
최 이장은 "산업단지 건설 문제로 사촌과 심지어 친형제 사이에서도 찬반으로 의견이 나뉘어 있는 경우가 있다. 의가 상해 있는 상태이다"라며 "마을 주민들은 찬반 의견으로 나뉘어 서로 인사도 안한다. 산업단지는 결국 '건설' 혹은 '없던 일', 둘 중 하나로 결론이 날 것이다. 하지만 어떤 식으로 결론이 나든 마을이 원상복구가 될 수 있을지 걱정이다"라고 호소했다.

이어 "찬성 주민들이 기존의 공장으로 인한 피해 때문에 이사를 가고 싶어 하는 마음은 충분히 이해할 수가 있다"며 "하지만 토지가 수용이 되지 않고 마을에 남아 살아야하는 사람들도 생각해야 하는 것 아닌가. 아쉬운 마음이 크다"고 말했다.

김낙용(지곡리 주민)씨도 "마을 앞 공장에서 이따금 플라스틱 타는 냄새가 나곤 한다. 냄새가 인체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는 알 수가 없다"면서도 "찬성 주민들은 공장에서 나오는 냄새 때문에 이주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렇다면 마을 주민들끼리 싸울 일이 아니라 공장 측에 문제 제기를 하는 것이 우선이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산업단지 이야기가 나오기 전까지도 화목했던 마을"
마을 주민 성은영씨 인터뷰

 
 지난 14일 충남도청 앞 집회에서 삭발을 하고 있는 성은영 씨
ⓒ 이재환
 
지곡리 주민 성은영(75)씨는 지난 14일 충남도청 앞에서 "산업단지 건설에 결사반대 한다"며 삭발을 감행했다. 성씨는 이날 "산업단지 건설을 막지 못하면 죽어서 조상을 뵐 면목이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그 날 이후, 성씨가 한 말이 뇌리를 떠나지 않고 맴돌았다. 지곡리를 찾아간 이유도 그의 이야기를 좀 더 들어 보기 위해서였다. 젊은 시절 마을의 지도자이기도 했던 성씨는 '주민들이 서로 반목하고, 마을공동체가 붕괴되고 있는 현재의 상황'에 대해 무척 아쉬워했다. 아래는 그와 나눈 대화를 정리한 내용이다.

- 지곡리는 어떤 마을인가. 
"우리 동네는 6.25 동란 때도 단 한사람도 피난을 간 사람이 없다. 그만큼 안전했기 때문이다. 지난 1979년도 내가 이장을 맡으면서 마을의 단합에 신경을 썼다. 우리 마을이 산업단지로 바뀌면 그 피해는 이웃 마을인 상장리 주민들이 입게 된다. 그건 옳지 않다. 게다가 마을을 공단으로 조성하겠다고 주민들 보고 떠나라고 하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소리다."

- 지난 14일 충남도청 앞 집회에서 삭발하셨는데, 삭발까지 감행한 이유가 무엇인가.
"마을에 선산을 만든 지도 얼마 되지 않았다. 산업단지를 못 막으면 죽어서도 조상을 뵐 면목이 없다. 고향을 떠나지 않고 싶다는 마음도 그만큼 간절하다. 나라도 나서서 산업단지 건설을 막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삭발을 했다. 그만큼 절실하다는 것을 보여 주고 싶었다."

- 산업단지 건설 계획이 나온 이후, 마을 주민들끼리 찬반으로 나뉘어 있다고 들었다. 현재 어떤 상황인가.
"서로 심하게 틀어진 상태이다. 찬성하는 주민들이 우리(산업단지 건설 반대주민)를 보면 외면을 한다. 서로 인사도 안 한다. 마을이 양분돼 있다. 너무나도 안타깝다."

- 산업단지 건설 소식 이전에 마을 주민들은 사이가 좋았나.
"지곡리는 윗조실, 아랫조실, 새뜸, 용머리 네 개의 작은 마을로 구성돼 있다. 산업단지 추가 건설 이야기가 나오기 전까지 지곡리의 네 개의 마을 주민들은 화합이 잘 되었다. 마을에 경조사가 생기면 주민 모두가 나서서 도왔다. 그만큼 화목한 마을이었다. 산업단지 조성이야기 나온 뒤로 모든 것이 바뀌었다. 찬반 주민들은 마을에서 뿐 아니라 면소재지에서 우연히 마주쳐도 서로 아는 체도 하지 않는다."

- 걱정이 많으실 것 같다. 어쨌든 산업단지 건설 승인심사가 3월에 있을 예정이다. 하고 싶은 말이 혹시 있나.
"고덕면에는 이미 신소재산업단지, 예당1산업단지, 고덕농공단지, 예덕농공단지 등 4개의 산업단지가 있다. 하지만 현재 있는 산업단지도 입주가 완료 되지 않고 절반은 비어있는 것으로 안다. 이런 상황에서 굳이 산업단지를 또다시 조성하려고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모르겠다. 산업발전이라는 명목으로 투기를 하겠다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 조상 대대로 내려온 땅을 지키며 살다가 여생을 마치고 싶다. 제발 우리 반대 주민들의 말에 귀를 기울여 주길 바란다."
 
 바로 정면 앞쪽으로 예당2산업단지가 들어설 예정이다. 저 멀리 보이는 산이 가야산이다.
ⓒ 이재환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