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만지는 남자와 흙 빚는 여자가 사는 법

2021. 1. 17.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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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에서 가장 아름다운 플라워 부케와 세라믹을 탄생시킨 아티스트 듀오, 루이-제로 카스토와 마틸드 마르탱.
루이-제로 카스토와 마틸드 마르탱. ‘흰 소의 해’를 주제로 〈엘르〉 코리아를 위해 작업한 부케와 세라믹 앞에 섰다.
카스토 플뢰리스트의 벽면을 채운 마틸드의 세라믹들.
루이-제로의 미니멀하고 회화적인 부케와 마틸드가 옹기를 빚듯 완성한 화병은 서로에게 완벽한 파트너다.
우아하고 풍성한 부케를 묶고 있는 루이-제로.

아름다운 플라워 부케에는 공간을 변화시키는 힘이 있다. 루이-제로 카스토(Louis-Ge′raud Castor)와 마틸드 마르탱(Mathilde Martin)은 최근 파리에서 가장 아름다운 부케를 만드는 플로리스트와 그 부케를 담아내는 세라믹을 빚는 아티스트로 자리 잡았다. 그들의 공간인 ‘카스토 플뢰리스트(Castor Fleuriste)’는 마레 지구의 한적한 길목, 건물 안 중정 깊숙이 숨어 있다. 플라워 숍에 마땅히 필요한 쇼윈도나 지나가는 행인의 눈길 따위에 초연한 태도다. 이 비밀스럽고 아담한 공간을 가득 채우는 것은 정제된 컬러의 꽃과 드라이플라워. 회벽에 걸린 커다란 캔버스 앞, 길다란 사각 기둥 같은 토템 위에는 마틸드가 만든 세라믹 화병이 놓여 있다. 화병에는 루이-제로의 손끝에서 탄생한 플라워 부케가 담겨 있음은 물론이다. 두 사람의 신성한 예식이 현실로 구현된 듯한 모습이랄까. 에르메스와 프라다, 르메르와 더 브로큰 암을 비롯해 셀 수 없이 많은 패션 브랜드의 부티크와 숍의 사랑을 듬뿍 받는 예술적인 부케들은 바로 이 은밀한 장소에서 태어난다. 함께 작업하기 시작한 지 3년밖에 되지 않았다는 것도 믿기 어려울 만큼 자신들의 템포로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나아가고 있는 루이-제로와 마틸드를 만났다.

인스타그램을 통해 만났다던데 비하인드 스토리가 궁금하다루이-제로 카스토(이하 루이-제로) 2017년 처음 플라워 숍을 내면서 인스타그램을 시작했다. 꼭 유명해져야겠다고 생각한 건 아니지만, 그래도 건물 안 중정에 자리한 숍의 위치적 특성상 SNS를 통해 내 작업을 알릴 필요가 있었다. 그러다 우연히 마틸드의 세라믹 작업을 발견했고, 그녀가 만든 세라믹 화병 고유의 아름다움이 내가 만든 플라워와 잘 어울릴 것 같다는 직감이 들어 바로 연락했다.

마틸드 마르탱(이하 마틸드) 당시 인스타그램 팔로어 30명 남짓한, 갓 도자기 작업을 시작한 때였다(웃음). 그래서 루이-제로의 연락을 받고 누군가 내 작업을 좋아한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굉장히 기뻤다. 연락받은 즉시 스쿠터를 타고 그를 만나러 이곳 ‘카스토 플뢰리스트’에 왔고, 그의 부케를 보는 순간 내 작업과 너무 잘 어울린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서로의 작업에 첫눈에 반한 그날부터 지금까지 둘은 함께 작업해 오고 있다.

두 사람 모두 오랫동안 공부하고 지속해 온 일을 접고 새로운 커리어를 시작한다는 게 결코 쉬운 결정은 아니었을 텐데루이-제로 아트 딜러로 일할 때도 주중 저녁이나 주말에 집을 장식할 꽃을 사는 것은 가장 중요한 일과 중 하나였다. 다만 마음에 쏙 드는 꽃과 부케를 찾는 일이 항상 어려웠고, 언젠가부터 나만의 플라워 숍을 열고 싶다고 마음먹었던 것 같다. 브렉시트로 주 고객이었던 영국과의 거래가 예전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힘들어졌다는 것도 커리어를 바꾼 결정적 계기가 됐다.

마틸드 기자가 되려고 미술사를 공부했는데 공부가 끝날 즈음 무엇이든 재료의 물성을 손으로 경험하고 싶다는 마음이 강했다. 자연스럽게 요리를 배웠고, 런던으로 건너가 미식과 밀접한 와인 소믈리에로 활동했다. 사실 세라믹 작업은 어릴 때부터 취미였다. 작업에 몰두할 시간이 많이 나지 않았고, 항상 마음 한 켠에 아쉬움이 자리했던 것 같다. 음식 분야에서 일하는 동안 식재료와 와인 맛의 바탕이 되는 흙의 중요성에 대해 아주 깊이 인지하게 됐고, 흙을 이용해 직접 손으로 무언가를 만들고 싶다는 마음으로 파리에 돌아와 제대로 도자기 작업을 시작했다.

각자의 작업 방식에 고유한 특징이 있다면마틸드 프랑스에서는 꽤 드문 편인데, 내가 세라믹을 만드는 방식이 한국의 옹기를 만드는 방식과 굉장히 흡사하다는 걸 알았다. 물레를 돌리지 않고 흙을 쌓고 두드려 흙집을 짓듯이 완성한다. 물론 김치와 장을 담는 한국의 옹기는 내가 만드는 화병에 비해 엄청나게 크다! 그래서 팔 전체가 아닌, 손가락의 힘으로 만들어낸다는 점은 다르다고 볼 수 있겠다(웃음).

루이-제로 최대한 파리 근교에서 계절에 맞춰 재배되는 꽃을 쓰려고 노력한다. 개인적으로 화려한 색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알록달록하기보다 최대한 비슷한 컬러의 꽃으로 부케를 만들곤 한다. 채워 넣기보다 꽃 한 송이 한 송이를 공간에 예술 작품을 들여놓은 것처럼 다룬다. 마치 흰 종이 위에 줄을 하나씩 긋는 느낌으로 작업한달까. 이렇게 작업한 부케가 공간에서 존재감을 드러내더라. 스트레스를 쉽게 받는 성격인데 꽃을 보고 꽃다발을 만드는 과정에서 평안함을 찾곤 한다. 꽃으로 작업하는 일은 내게 일종의 치유 과정인 셈이다.

각자 작업실이 따로 있는 두 사람이 서로에게 영감을 주고 협업하는 방식이 궁금하다루이-제로 마틸드가 제작하는 세라믹 화병은 그 자체로 아름답기 때문에 굳이 말로 설명할 필요가 없다. 특히 채움과 비움이 완벽하게 균형을 이룬 작업물이라고 생각한다. 서로의 작업을 깊이 이해하고 교감하고 있기 때문에 특별히 내가 무언가를 요청하지 않아도 항상 내가 원하는 결과물과 만나게 된다. 아주 가끔 특정한 넓이나 깊이를 가진 화병을 요청할 때가 있긴 하지만 말이다. 마틸드가 작업한 화병에서 영감을 얻은 부케를 만들어 얹은 후 함께 그 이름을 결정한다. 〈엘르〉 코리아를 위해 마틸드가 새로 만든 검은 화병 역시 오늘 아침에 가져온 것인데, 아직 이름을 정하지 못했다.

마틸드 루이-제로에게서 특정한 디자인을 요구받은 적이 전혀 없다. 작업할 때 내 이면에 간직된 삶 전반에서 영감을 얻는 편인데, 특히 화병을 빚을 땐 어떤 부케가 담길지 상상하기도 한다. 루이-제로는 제철 꽃으로 작업하는데, 그의 스타일을 염두에 두고 작업하다 보면 화병과 형태가 오묘하게 달라지는 것을 느낀다. 실제로 그와 협업하면서 꽃 그리고 내가 자연을 대하는 태도도 훨씬 깊어졌다. 공간에서 꽃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도 새삼 깨달았고 말이다. 무엇보다 이렇게 예술적으로 깊이 교감하면서 서로의 작업을 빛나게 해주는 예술가와 함께 일할 수 있다는 사실이 엄청나게 큰 원동력이 된다.

3년은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이다. 앞으로 함께하고 싶은 프로젝트나 계획이 있다면마틸드 결코 대량생산을 추구하는 것은 아니지만 식기처럼 좀 더 대중적인 제품을 많이 제작하고 싶다. 지금 주로 작업하는 화병처럼 예술 작품을 선호하는 고객과는 또 다른 고객층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흙이 가진 물성과 음식의 결합을 다양하게 탐구할 수 있는 점도 매력적이고.

루이-제로 파리나 근교에서 그 계절에 재배되는 꽃만 사용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말처럼 쉽지 않은 일이다. 특히 날씨가 추워지면 구할 수 있는 꽃이 한정적일 수밖에 없다. 꽃 시장을 통해 생산자들과 거래하기도 하지만, 앞으로는 생산자와 직접 협업해 꽃을 공급받는 시스템을 적극적으로 구축하고 싶다. 나처럼 적극적인 플로리스트가 많아질수록 생산자와 재배업자들도 더욱 능동적으로 계절에 맞는 꽃을 키울 테니까.

파리나 근교에서 자라는 제철 꽃으로 만든 루이-제로의 부케.
자신의 아틀리에에서 세라믹 작업 중인 마틸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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