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의존도 95%..코로나19로 드러난 면세점 민낯
공항 면세점 매출 급감, 중국 따이궁 발길 시내면세점 선방
따이궁 의존도 치솟으면서 과당경쟁, 수익성 악화
[아시아경제 임혜선 기자] 지난해 국내 면세시장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장기화 여파로 직격탄을 맞았다. 해외 여행객은 물론이고 해외 출장길에 오른 비지니스맨도 급감하면서 국내 면세시장 규모는 약 16조원으로 2019년 대비 35% 이상 감소했다.
공항 면세점 매출이 90% 이상 급감했지만 중국 보따리상(따이궁) 발길이 이어진 시내 면세점이 선방했다. 하지만 따이궁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지면서 과당 경쟁에 따른 수익성 악화가 이어졌다. '속빈 강정' 면세시장의 구조적 문제점을 살펴본다.
따이궁 의존도 90% 육박…자칫하다간 무너진다
지난해 1월부터 11월까지 국내 면세점 매출은 14조3210억원으로 전년 같은 기간 대비 42% 줄었다. 12월 매출을 더하면 16조원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된다. 외국인 고객 수는 전년보다 85% 급감했으나 매출 규모는 상대적으로 감소 폭이 작았다. 국내 면세점 외국인 월간 매출액은 올해 4월 9664억원으로 바닥을 찍은 뒤 매월 늘었다. 11월에는 1조3483억원을 기록했다. 코로나19 확산 전인 올해 1월(1조7017억원) 매출 수준으로 회복세다. 코로나19 발생 직전 평균 98만원이었던 외국인 객단가는 9월 이후부터 2000만원을 넘겼다.
국가별 매출 구성비를 보면 중국이 93~95%를 차지했다. 한국 3%, 일본 1% 수준이다. 최근 4년간 면세 시장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매출 비중은 매년 높아졌다. 롯데면세점의 경우, 중국 매출 비중은 2017년 66%, 2018년 75%, 2019년 82%, 2020년 93% 등이다. 일본 비중은 3%에서 1%로 줄었다. 2017년 중국이 사드(THAAD, 고고도마사일방어체계) 배치 보복으로 한한령(한류 제한령)을 내리면서 면세점업계는 위기를 맞았다. 중국 매출 대부분을 차지했던 단체관광객(유커)이 발길을 끊었기 때문이다. 유커의 빈자리를 따이궁이 메웠다. 중국에서 온라인 거래시장이 발달하면서 웨이상(모바일 판매상)이 늘었고, 이들의 주문을 받은 따이궁이 한국 면세점을 찾기 시작했다. 한국 면세업체들은 '따이궁' 덕을 보면서 매년 사상 최대 매출을 경신했다. 그러면서 업체들의 따이궁 의존도는 더욱 높아졌다. 2019년 따이궁 매출 비중은 전체의 80% 수준이었다. 지난해는 90%대로 치솟았다. 면세업계 관계자는 "내·외국인의 발길이 끊긴 상태에서 따이궁이 유일한 생명줄이었다"면서 "지난해 면세업체 매출은 따이궁 매출이나 다름없다"고 설명했다.
따이궁 편중된 매출로 국내 면세시장에서 화장품 매출이 차지하는 비중도 덩달아 치솟고 있다. 2015년 50% 내외였던 화장품 비중은 2019년 68%로 높아졌다. KB증권 분석 자료를 보면 지난해 면세점 내 화장품 매출액은 전년보다 10% 감소할 것으로 봤다. 전체 면세점에서 차지하는 매출 비중은 94%에 달했다. 비(非) 화장품 매출이 89% 급감한 것으로 추정했다. 화장품의 한국면세점 가격이 현지보다 40% 이상 저렴하다.
'따이궁 모시기'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업체들의 수익성은 악화됐다. 지난해 업체들의 영업이익률은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2014년 9.9%였던 롯데면세점의 영업이익률은 지난해(1~11월) -5.1%를 기록했다. 신라면세점과 신세계면세점도 상황은 비슷하다. 누적적자가 각각 1107억원, 898억원을 기록했다. 매출의 절반 가까이 따이궁 유치 비용으로 사용하고 있다. 면세점은 중국 여행사에 따이궁을 모객해준 대가로 송객수수료(구매물품 매출 기준)를 지불한다. 따이궁에게는 직접 제품 할인율을 적용해준다. 송객수수료와 제품 할인율을 더한 전체 수수료율은 지난해 초 35~38% 수준에서 9월 이후 43~46%까지 치솟았다. 면세점이 물건을 팔고도 이익은 줄어들 수밖에 없는 구조다.
따이궁에 편중된 매출 구조는 우리 면세산업의 취약성을 보여주는 단면이다. 면세업체 관계자는 "중국 정부가 면세 육성 정책을 펼치면서 따이궁을 집중적으로 단속하고 있다"면서 "현재 기형화된 면세시장에서 따이궁 방한이 갑자기 줄면 면세업체들의 이익은 지하로 떨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 면세시장의 성장…체질개선 시급 제도적 개선도 필요
한국이 주춤한 사이 중국이 치고 올라섰다. 중국 정부의 면세육성 정책 수혜로 중국 대표적인 휴양섬 하이난성의 면세시장이 급속도로 성장해서다. 2019년 136억 위안이었던 하이난성 면세산업의 매출액 규모는 지난해 약 320억 위안을 달성할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해 면세품 구매자 수가 전년 대비 384만명 감소한 340만명을 기록했음에도 불구 매출액은 2배 이상 성장했다.
중국 정부는 지난해 하이난에서 출발하는 국내외 관광객들의 면세 한도를 1만위안(171만원)에서 3만위안(514만원)으로 늘렸고, 이곳을 방문한 내국인이 180일간 온라인으로 면세품을 구입할 수 있도록 했다. 중국 정부는 7월1일부터 하이난 해외 면세 쇼핑 한도를 1인당 연간 10만위안(1700만원)으로 3배 이상 확대했다. 면세상품 품목은 38개에서 45개로 늘렸다. 8000위안(136만원) 이던 개별 상품 면세 한도액도 없앴다.
한국 등으로 외화가 반출되는 걸 막기 위해 따이궁 단속을 강화했다. 실제로 올해 초 중국 정부는 한국산 면세품 거래되는 선전시 화창베이 상업구역에 위치한 밍퉁 시장을 집중적으로 단속한 것으로 알려졌다. 밍퉁 시장에 대한 대대적인 단속은 중국 정부가 올해 면세정책을 진흥하기 위한 전략인 것으로 분석된다.
2019년까지만 해도 세계 면세점 순위는 듀프리, 롯데면세점, 신라면세점 순이었지만 중국이 치고 올라오면서 지난해 순위가 바뀌었다. 지난 9월 면세전문지 무디데이빗리포트에 따르면 중국면세품그룹 CDFG는 올 상반기 기준 매출 28억5500만달러(약 3조3000억원)를 기록해 스위스와 한국을 제치고 중국 기업으로는 처음으로 1위에 올랐다. 하이난에서만 CDFG 매출의 절반이 나오면서다.
이훈 한양대학교 교수는 "관광유통산업은 경험과 노하우, 업력과 국내외 네트워크 등이 필요한 사업이기 때문에 한 번 무너지면 복구하는데 많은 시간과 비용이 필요하다"면서 "면세산업 생태계(인력 및 구조)가 유지되도록 정부가 적극적으로 지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내 면세업체 수장들에게 '중국'은 어려운 숙제다. 올해 이익개선과 함께 체질 개선은 최대 과제다. 유신열 신세계면세점 대표는 임직원들에게 "업의 본질에 대해 다시 정립하는 기회로 삼고 운영효율을 높이는 데 집중해야 한다"면서 "역량과 전문성을 높여야 한다"고 당부했다. 신세계면세점은 한국오면 방문해야하는 최대 관광지로 만들겠다는 목표를 갖고 있다.
롯데면세점은 국제 경쟁력 강화를 위해 해외로 눈을 돌렸다. 이갑 롯데면세점 대표는 최근 "5년 후를 내다봐야 한다"면서 "해외 시장을 발굴해 포트플리오를 다양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롯데면세점은 올해 일본 간사이공항 면세점 추가 오픈을 시작으로 베트남 다낭시내점, 베트남 하노이시내점, 호주 시드니시내점 등에 매장을 연다. 면세점들은 비대면 시장에도 대응하기 위해 국내외 간편결제서비스를 도입하고 라이브방송 등 판매 채널도 다각화한다.
임혜선 기자 lhsr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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