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기에 통신] 이승우 '방출 위기'는 불화 때문이 아니다
[풋볼리스트=앤트워프(벨기에)] 임진규 통신원= 이승우가 사실상 방출 통보를 받았다. 현지 일각의 보도처럼 이승우의 태도나 불화 때문에 이적설이 불거졌다고 보긴 힘들다. 결국 그라운드에서 보인 모습을 볼 때 신트트라위던에서 더 이상 미래가 없다는 것이 현지 매체 분위기다.
벨기에 리그는 유럽 5대 리그보다 인내심이 적다. 외국인 쿼터제가 없어서 입성하기엔 제약이 없지만 그만큼 다국적 선수들의 경쟁이 벌어진다. 모든 선수들은 빅리그 진출이라는 공통된 꿈을 가지고 입성한다.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둔 빅 리그 선수들보다 팀 내 경쟁 분위기가 심할 수밖에 없다. 매 경기 모든 것을 쏟아부어야 한다. 좋은 경기력이 이어져도 2경기 이상 부진하면 벤치 신세로 전락할 수 있다. 7년째 리그를 보면서 그런 선수들을 많이 봐왔다.
신트트라위던은 이번 시즌 이승우에게 충분한 기회를 부여했다. 시즌 초반 경기력이 좋았을 때는 팀 내 최고 평점도 받았고 주간 베스트 11에 선정되기도 했다. 현지에서도 호평이 이어졌다. 하지만 경기력에 기복도 있었고 팀 성적도 매우 부진했다. 이승우는 케빈 머스캣 감독 체제에서는 중용 받던 선수라 팀의 부진에서도 책임을 피할 수 없다. 이번 시즌 리그 8위 (플레이오프 2 진출)가 목표라는 포부와는 달리 강등권 싸움을 하고 있는 처지이기 때문이다. 현실적으로는 이번 시즌 1부 리그에 생존하는 게 지금 목표다. 예상과 다르게 시즌이 흘러가자 잔여 시즌을 어린 선수들의 잠재력에 의존하기에 부담스러워졌다. 구단으로서도 일부 선수들은 정리하고 확실한 카드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이번 겨울 이적 시장 영입 자원을 봐도 구상을 읽을 수 있다. 공격 자원 일롬베 음보요, 크리스티안 브륄스 두 선수는 벨기에 리그에서 잔뼈가 굵은 선수들이다. 나이도 30대로 경험도 풍부하다.
콩고 출신의 일롬베 음보요는 벨기에 1부 클럽 KV코르트렉트에서 이적해왔다. 전성기 때는 헹크, 헨트 등 리그 내 상위권 클럽에서 활약했다. 벨기에 무대에서는 꾸준하게 제 몫을 해주는 평판이 좋은 공격수이다. 한 시즌에 두 자릿수 득점을 해줄 수 있는 확실한 카드로 공격력을 보강할 수 있는 알짜배기 영입이다. 벨기에 출신의 크리스티안 브륄스는 양쪽 측면을 모두 소화할 수 있고 득점력도 갖추고 있다.
브륄스의 영입은 이승우의 대체 자원인 셈이다. 다츠야 이토, 나카무라도 즉시 전력감은 아니기 때문이다. 브륄스는 다수의 벨기에 클럽과 전성기 시절에는 리그1 스타드 렌에서 활약했다. 30대에 접어들며 벨기에 2부 리그 웨스털로에서 선수 생활을 이어갔고 지난 시즌 13골을 기록하며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줬다. 다수의 1부 리그 하위권 팀들이 눈독을 들였지만 그의 선택은 신트트라위던로 향했다.
이승우가 전력 외로 분류된 것은 최근 팀의 성적과도 연관이 있다. 페터르 마스 감독 부임 뒤 신트트라위던은 최근 4경기에서 3연승 포함 3승 1패를 거두며 강등권도 탈출했다. 모두 이승우가 출전하지 않은 경기이다. 패배 상대는 리그 1위 강호 클럽브뤼헤였고 경기 내용도 나쁘지 않았다. 기존처럼 강팀 상대로 끌려가면 무너지는 신트트라위던의 모습이 아니었다. 벨기에 축구계에서 명장으로 손꼽히는 페터르 마스 감독은 이번에도 지도력을 인정받고 있다.
또 신트트라위던 축구는 많은 공격형 윙어가 필요 없다. 약체이기 때문에 수비에 무게를 두어야 한다. 케빈 머스캣 전 감독은 벨기에 축구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졌고 맞불을 놓는 공격 지향적인 축구를 구사했다. 그 결과 성적표는 참혹했다. 반면 벨기에 축구에 이해도가 높은 페터르 마스 감독은 달랐다. 신트트라위던에 맞는 옷을 입히며 수비와 허리를 두텁게 했다. 주로 3-5-2 변형 전술을 사용하면서 양쪽 측면은 수비력이 뒷받침되는 선수들을 중용했다. 이승우는 줄곧 수비력이 약하다고 평가받아왔기에 팀 전술상 맞지 않는 옷이다. 양쪽 측면에 위치하는 막시밀리아노 카우프리즈, 리베라토 카카제는 안정된 수비력과 날카로운 공격 가담으로 최근 상승세에 일등 공신이다. 공격형 미드필더 자리에는 판쿤도 콜리디오와 백업으로는 올렉산드르 필립포프가 있다. 이승우가 설자리는 사실상 없는 셈이다.
종합적으로 보면 이승우가 방출 수순을 밟고 있는 것은 현지 일부 구단의 보도처럼 구설수와 감독과의 불화 때문이 아니다. 이승우가 마스 감독의 지시를 따르지 않았다는 보도가 있었지만, 이 보도 역시 그라운드 밖에서 보인 태도가 아니라 전술적인 문제에 대한 지적이었다. 결정적인 이유는 벨기에 무대에서 경쟁력을 증명하지 못한 것이다. 리그를 옮길 거라는 전망이 나오는 만큼, 자신에게 맞는 리그와 팀을 찾아 도전을 이어가야 한다.
사진= 게티이미지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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