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용한 박사의 '당신이 모르는 三國志' 13 연주의 반란
이때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들려온다. 연주의 모든 군현이 반란을 일으켜 조조를 배신했다는 소식이다. 배신의 주동자는 조조가 가족의 후원자로 선택했고, 1차 서주 침공전에서 귀환한 후 함께 눈물까지 흘렸던 친구 장막(진류태수)과 장초 형제였다. 놀란 조조에게 추가적인 정보가 들어온다. 장막을 설득한 인물이 진궁이라는 사실이다. 진궁은 장막의 부족한 군사력을 보완하기 위해 여포를 복양으로 불러왔다. 진궁은 과거 포신이 조조를 불러왔던 방법을 그대로 적용했다. 이로써 서쪽의 장막, 북쪽의 여포가 조조를 협공하는 형세가 이뤄졌다. 동쪽에는 도겸이 있고, 남쪽에는 원술이 있다. 조조는 완전히 포위됐다.사방 적으로 둘러싸인 조조
▶조조 일생 최대 위기에 몰리다
▷조조에게 남은 성, 즉 진궁의 반란에 동조
하지 않은 군현은 자신의 친위군이 주둔하는 견성과 견성 동쪽에 위치한 동군(하후돈의 주둔지), 동아현과 범현뿐이었다.
서주 공략을 중단하고 견성으로 귀환한 조조의 머리에는 두 가지 생각이 맴돌았다. “진궁이라는 작자는 누구일까, 동아현과 범현은 왜 배신하지 않은 것일까.” 정사에서 진궁은 조조의 장수였으며 조조의 종사중랑 허범, 왕해와 공모
해 모반을 꾀했다고 나온다. 명확하게 알려진 바는 없지만, 진궁은 조조의 친군 세력이 아니라 연주의 명사로서 조조가 연주를 통치하면서 관직을 부여받은 이가 아닌가 짐작된다. 소설 삼국지에서 조조는 동탁 암살에 실패하고 도주하다 진궁을 만난다. 이때 조조를 체포한 중무현 현령이 진궁이다. 진궁은 조조에게 감복해 그를 탈옥시켜 함께 도망친다. 도중에 조조는 아버지 친구 여백사 집에 묵게 되는데 여백사 가족이 자신을 체포하려는 것으로 오해하고 일가를 몰살한다.
이때 진궁은 조조의 잔혹한 성격을 보고 조조를 버리고 떠난다. 조조가 호뢰관에서 체포돼 압송되다 중무현에서 석방된 일화는 사실이다. 다만 중무현 현령은 진궁이 아니었다. 그를 석방한 사람은 정장(亭長) 이었다.
진짜 조조를 배신한 사람은 옛 친구 장막이었다. 다만 장막 본인은 그 행동을 배신이라고 보지는 않을 것 같다. 조조는 장막이 킹메이커로 남길 원했지만, 장막은 의외로 야심가였다. 킹메이커를 자처하는 사람은 야심이 없거나 왕좌에 앉기에는 자신의 자질이 부족하다고 여기는 사람이 아니다.
능력도 있는데 세력이나 여건이 되지않는다고 생각하거나 용기가 부족한 사람이다.
부족한 여건과 용기를 커버해주는 요인이 급격한 정세 변동이다. 라이벌의 정치적 입지가 위태로워지면 메이커에서 파괴자로 변신할 용기가 생긴다. 장막의 이런 심리를 진궁이 파악했던 것 같다.
“지금 조조는 연주에 없고, 여포는 천하의 장사라 맞상대할 장군이 없습니다. 그와 힘을 합쳐 연주를 장악하면 이를 기반으로 천하를 장악할 수도 있습니다.” 진궁이 장막을 설득하는 대사를 살펴보면 결국 이쪽 킹메이커에서 저쪽 킹메이커로 갈아타는 것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장막은 ‘조조와 장막’보다는 ‘장막과 여포’가 더 아름다운 구조라고 생각한 것 같다.
역사가는 진궁이 반란을 일으킨 이유보다 진궁의 반란 또는 연주 주민에 대한 설득이 먹힐 수 있던 배경에 주목해야 한다. 연주 정도 규모면 유럽에서는 나라 하나에 해당할 정도로 넓다. 지역 내 갈등이 없을 수 없다. 서주 전쟁은 너무 잔혹했고 연주 토호에게는 조조의 능력보다 잔혹성이 부각됐을 수도 있다. 연주 토호나 지역 유지들이 ‘천하의 주인’보다 ‘지역의 패자’를 원했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조조가 자기 주둔지로 선택한 견성을 보면 조조 역시 이런 우려를 어느 정도 예상했던 것으로 보인다. 견성은 북쪽에서 서쪽으로 흐르는 강을 끼고 있어 방어하기 유리한 곳이다. 조조가 연주의 중심부가 아닌 비교적 요새인 견성을 근거지로 정한 것은 혹시나 모를 연주 내부 반란을 막기 위함으로 해석할 수 있다.
▶위험했던 진궁의 반란
▷순욱의 기지로 위기에서 탈출
진궁의 반란은 조조 입장에서 생각보다 훨씬 위험했다. 진궁은 준비를 잘했다. 견성의 장교와 관리들도 수십 명 포섭했다. 장막이 진궁에 동조한 이유도 진궁의 설득이 아니라 이런 준비 작업 때문일 가능성이 있다.
다만 진궁의 약점은 군사력이었다. 킹메이커인 장막은 군대를 빼서 견성을 탈취할 인물이 되지 못했다. 여포는 전장에서는 맹수지만, 테이블 앞에서는 우유부단하고 소심했다. 장막과 여포를 끌어들였지만 견성 함락은 진궁 스스로 해내야 했다. 장막을 내세워 계략을 썼다. 견성에 사자를 보내 여포가 조조를 돕기 위해 왔으니 군사와 식량을 제공하라는 통지를 보냈다.
이때 견성의 책임자는 겨우 32살 젊은이인 순욱. 장막이나 진궁 입장에서 보면 순욱은 명문 출신 새파란 애송이로 보였을 수 있다.
순욱을 만만하게 본 것이 첫 번째 실수였다. 순욱은 즉시 동군에 있던 하후돈을 급하게 불렀다. 하후돈은 입성하자마자 반란 내통 세력 수십 명을 붙잡아 처형했다.
장막과 여포가 어설픈 계략을 펼치는 동안 정작 군대를 이끌고 견성을 습격한 사람은 예주자사 곽공이었다. 병력이 없는 진궁은 오지랖 넓게 곽공도 끌어들였다. 하후돈 등 모든 조조의 부하들은 장막, 여포, 곽공이 동맹을 형성했다고 생각했지만 순욱은 곽공의 단독 행동임을 간파했다. 순욱은 세 명이 암묵적으로 서로 경쟁하고 있다고 판단했다.
순욱이 이런 판단을 내린 이유는 곽공이 견성까지 왔지만 공격하지 않고 순욱에게 회담을 요청했기 때문이다. 순욱은 곽공을 만나 이 약점을 파고들었다. 회담 내용은 남아 있지 않지만 순욱은 이같이 말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당신(곽공)이 우리를 공격하면 우리는 결사 저항할 것이다. 당신의 병력이면 우리를 이길 수는 있다. 그러나 당신도 희생이 크고, 이 성은 장막이나 여포가 차지할 것이다.”
곽공은 순욱의 말에 결국 견성을 포기하고 떠났고 삼국지 무대에서 사라졌다.
곽공과 정반대로 기회를 잡은 사람이 있었다. 동아현에 주둔한 정욱이다. 문무겸비 지략가에 용기와 실천력까지 있던 그는 동아현을 황건적 손에서 구해내 이미 그 지역 영웅이었다. 그는 천하를 주름잡는 사람을 원하고 있었고 조조를 만나자마자 휘하로 들어왔다.
견성 음모가 실패하자 진궁은 방어력이 약한 범현과 동아현을 정복해 견성을 완전히 고립시키려고 했다. 그러면 조조는 서주에서 견성으로 돌아오기 어려워진다. 순욱은 동아현의 영웅인 정욱을 파견해 두 현을 설득했다. 진궁은 두뇌가 뛰어났지만 용기와 실천력이 부족했다. 진궁, 장막, 여포, 곽공 모두 합쳐도 조력자에 불과할 뿐, 주도자의 자질이 없었다. 이것이 조조와 순욱, 정욱 조합과 차이였다. 그렇게 그들이 얼버무리는 사이 조조는 무사히 견성으로 귀환했다
[임용한 한국역사고전연구소장]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092호 (2021.01.13~2021.01.19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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