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현경의 '시코쿠 순례'] (2) '내가 시코쿠로 떠난 이유 "지금의 나는 어디쯤 와 있나"
길을 걷다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면 얼른 일어나 다시 갈 길을 가는 게 상식이다. 나도 한창 때는 발에 차이는 돌부리쯤이야 싶었고 발딱 일어나는 것이 너무 당연하고 또 쉬웠다. 하지만 어느 순간, 나이 탓인지 도저히 일어설 수가 없었다.
두 번에 걸친 수술 후에는 스트레스를 감당할 체력도 고갈됐고 정신력도 바닥이었다. 건강을 회복하는 게 우선이다 싶어 방법을 찾던 중 오래전부터 가고 싶었던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과 시코쿠의 88 사찰 순례길을 떠올렸다. 일본 드라마를 보며 독학하다 교토 어학원까지 찾아가 배운 얄팍한 일본어 실력이 의지가 되기도 했고, 거리상 가깝다는 이유로 시코쿠 순례를 가기로 결정했다.
순례 제1일의 목표는 1번 료젠지(靈山寺)에서 6번 안라쿠지(安樂寺)였다. 16㎞ 거리에 사찰이 가깝게 모여 있어 하루에 끝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순례 시작 전날, 가가와현 다카마쓰(高松) 공항에 내려 버스를 타고 다카마쓰역까지 온 다음, 다시 JR선을 타고 도쿠시마역에 도착한 시간이 오후 5시가 넘었다. 숙소는 역에서 가까운 민박 쓰바루야도(昴宿) 요시노를 예약해뒀다. 예약할 때 도쿠시마역에서 아주 가깝다고 안내받았는데 도무지 방향을 잡을 수가 없었다. 이리저리 헤매는 사이 날이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급한 김에 아무나 붙잡고 민박 주소가 적힌 메모를 보여주며 묻기 시작했다. 대부분 안타까운 표정으로 고개를 젓고 ‘스미마셍’을 남기고 가버렸다. 회사원처럼 보이는 삼십 대 중반 남자가 메모를 유심히 보더니 자신의 전화로 민박집에 전화를 걸어 정확한 위치를 묻고 같이 가자고 했다. 괜찮다고, 어딘지 가르쳐만 달라고 했는데도 미소를 보이며 앞장을 섰다. 연신 “고맙다” 했더니 그 남자는 상냥하게 “간밧데!”를 외쳐주고는 돌아섰다.
숙소는 허름했지만 음식은 훌륭했다. 식사 후 주인에게 순례를 왔으며 첫날인 내일은 6번까지 가는 게 목표라고 설명하고 1번 사찰까지 가는 길을 물었다. 주인은 1번 사찰까지 가는 방법을 상세하게 알려줬다. 또 내일 숙소는 안라쿠지에서 운영하는 슈쿠보(宿坊)를 이용하면 좋다고 귀띔해줬다. 안라쿠지는 새벽 예불을 볼 수 있기 때문에 늘 불자들로 만원이라면서 방이 있는지 전화를 걸어 확인하더니 예약까지 해줬다. 길 안내를 해준 남자와 주인의 친절 덕에 시코쿠에 도착해 “고맙습니다”만 수십 번 외친 것 같다.
다음 날 JR선 반도역에서 내려 1번 료젠지로 향했다. 사찰 앞에 순례 용품을 파는 가게가 있다. 순례자의 표식인 흰옷 하쿠이와 지팡이인 콘고즈에와 삿갓, 납경을 받을 납경장을 구입했다. 시코쿠 88 사찰의 지도와 숙소 정보가 나와 있는 안내책자도 한 권 샀다. 하쿠이는 수의를 의미한다. 순례를 하다 길에서 죽으면 그 흰옷을 입은 채로 묻어주기 때문이라고 한다. 지팡이와 삿갓에 동행이인(同行二人)이라고 쓰여 있는데 코보대사와 함께 걷는다는 의미다. 또 지팡이는 묘비로 쓰인다고 한다. 지팡이는 코보대사를 의미하기 때문에 ‘오다이시상(대사님)’이라고도 부른다. 어느 사찰이든 오다이시상을 모셔 두는 자리가 따로 있다. 숙소에 들어도 땅에 닿는 부분의 흙을 씻어 마련된 장소에 오다이시상을 모셔 두는 것이 예의다.
지팡이는 ‘오다이시상(대사님)’이라 부르며 깨끗하게 관리
5번 지조지(地藏寺)는 시코쿠에서 유일하게 전쟁을 갈무리하는 승군지장보살(勝軍地藏菩薩)을 본존불로 모시고 있고 오백나한상이 유명해 순례객을 오래 머물게 하는 사찰이라고 한다. 납경을 받는데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꽃이 피기 전의 봄 날씨는 새침하고 쌀쌀한데 비까지 쏟아지니 추웠다. 5번에서 6번 안라쿠지까지는 1.2㎞였지만 십 리처럼 멀게 느껴졌고 우의를 둘러쓴 아들과 나는 그야말로 물기둥 그 자체였다.
흠뻑 젖어 안라쿠지에 겨우 도착한 아들과 나는 먼저 숙소로 달려가 1인실을 하나씩 얻었다. 방은 작았지만 그야말로 안락했고 깨끗했다. 샤워까지 하고 나자 젖었던 몸이 녹으면서 노곤해졌다.
아침에 눈을 뜨니 여전히 비가 내리고 있었다. 빗속을 뚫고 2일째 일정을 강행할 생각을 하니 마음이 무거웠다. 그 비를 맞으며 7번 주라쿠지(十樂寺), 8번 쿠마다니지(熊谷寺), 9번 호린지(法輪寺), 10번 키리하타지(切幡寺)까지 어떻게 돌았는지 지금도 모르겠다. 그래도 납경은 꼬박꼬박 받았다.
11번 후지이데라(藤井寺)의 ‘등’은 ‘등나무 등’이다. 코보대사가 수행 중 등나무를 심었다는 데서 사찰 이름이 생겼다고 한다. 보라색의 등나무 꽃이 피면 아름다운 절경이 된다는데 당시는 아직 보라색 기운도 느낄 수 없는 때였다. 지치고 허기져 가까운 민박에 찾아갔더니 만원. 신발이며 속옷까지 젖은 상태로 숙소를 찾아 헤매다 보니 슬며시 이 여정이 버겁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순례고 뭐고 다 관두고 어디든 가서 몸을 녹이고 싶은 생각밖에 없었다.
12번으로 가기 위해서는 도쿠시마로 가서 버스를 타야 하기 때문에 미리 도쿠시마로 가는 게 낫겠다 싶어 택시를 불렀다. 우리 몰골을 보고 승차 거부라도 하면 어쩌나 조바심을 냈는데 택시 기사는 조금도 싫은 기색 없이 타라고 했다. 아들과 나는 몸을 택시에 구겨 넣었다. 우의에서 흐른 물이 시트를 적셨다. 시트를 걱정하자 기사는 또 미소를 보이며 “다이조부, 간밧데” 한다. 이때까지만 해도 나는 시코쿠 사람들의 이 친절의 의미를 잘 몰랐다. 내게 도움이 돼 고마웠지만 한편으로는 무작정 받아들이기에는 조금 부담스럽기도 했다. 하지만 그 작은 친절 덕분에 하루만 더 견뎌볼 마음이 들었던 것 같다.
그렇게 빗속의 행군을 마치고 도쿠시마역 근처 첫날 갔던 쓰바루야도 요시노를 다시 찾아갔다. 우리를 알아본 주인이 반갑게 맞아줬다. 마치 집에 돌아온 기분이 들었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092호 (2021.01.13~2021.01.19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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