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낙연의 위기..사면론·이익공유제, 안 풀리는 승부수

박철응 2021. 1. 15. 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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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김태년 원내대표가 15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하고 있다./윤동주 기자 doso7@

[아시아경제 박철응 기자] 지난해 초 서울 종로 지역구 총선 출마를 앞둔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 캠프는 'NY'라는 이니셜을 사용했다. 당시만 해도 여야를 막론하고 가장 강력한 대권 주자였으니, 그를 정치권으로 이끈 김대중 전 대통령(DJ)처럼 이니셜로 불리는 유력 정치인으로 자리잡기를 원했을 수 있다. 하지만 NY 이니셜이 뜨지 않았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 대표는 올해 들어 뜨기는커녕 오히려 침잠하는 모양새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독보적 1위를 기록하다가 이재명 경기도지사와 2강, 윤석열 검찰총장까지 더해져 3강, 최근에는 이 지사와 윤 총장의 2강 구도에 끼지 못하는 3위로 떨어지는 결과가 나오고 있다.

새해와 함께 터져나온 전직 대통령 사면론은 그야말로 폭탄 발언이었다. "국민 통합을 위한 큰 열쇠"라고 했으나, 얼마 못 가서 일단 주머니 속에 다시 열쇠를 집어넣은 격이다. 14일 대법원의 박근혜 전 대통령 확정 판결 직후 이 대표는 기자들과 만나 "저는 적절한 시기에 사면을 건의드리겠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리고 그에 대해서 당은 국민의 공감과 당사자의 반성이 중요하다고 정리했고, 그 정리를 존중한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국무총리 시절 안정적 국정 운영과 함께 야당의 공세에 특유의 화법으로 받아치는 모습이 지지의 근간이 됐다. 하지만 여당 대표가 된 이후에는 안정감과 함께 결단과 행동이 요구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그의 신중한 태도는 '엄중 낙연'이라는 수식어를 가져왔다.

단어 하나도 신중하게 골라서 발언하는 이 대표가 사면이라는 메가톤급 이슈를 터뜨렸다는 점에서 더욱 놀라웠다. 해가 바뀌는 것과 함께 이 대표가 직접 이슈를 주도해가는 승부수를 던진 것이란 관측이 나왔다. 문제는 최소한의 숙성이 되지 않은, 설 익은 상태에서 나왔다는 점이다. 여론과의 괴리가 컸다. 한국갤럽이 지난 5~7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사면 반대가 54%로 찬성(37%)보다 훨씬 많았고, 민주당 지지층은 75%가 반대했다.

무엇보다 민주당 내에서의 의견 조율 없이 이 대표가 독단적으로 발화했다는 점에서 리더십에도 일정부분 타격을 받았다. '선발표, 후논의'가 돼 버린 셈이다. 민주당 관계자는 "사면처럼 중대하고 당의 지지율과도 연결되는 사안을 논의 절차 없이 얘기한 점은 아쉬웠다"면서 "이후에 당의 방침을 정하고 따르기로 했으나 그 과정에서 이 대표의 리더십에는 흠집이 간 셈"이라고 말했다.

애초에 사면론을 꺼내들 때부터 "적절한 시기"라는 표현을 써왔기 때문에 선명성은 떨어진다. 일단 화두는 꺼내들되 퇴로를 열어두는 방식으로 평가될 수 있다.

지난 11일 이 대표는 코로나이익공유제 카드를 내놓으면서 또 한 번 세상을 흔들었다. 전날 화장품 가맹점과 대기업 협력 모델의 현장을 직접 찾았고, 15일 오후에는 '포스트코로나 불평등 해소' TF 1차 회의를 주재한다.

"코로나는 고통이지만 호황을 누리는 곳도 있다"며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는 명분이다. 하지만 이 역시 반사적으로 '사회주의' 논쟁으로 이어질 수 있음이 불보듯 했다. 이 대표는 이 역시 민간의 자발적 참여를 원칙으로 한다고 했다. 논란을 최소화하려는 장치를 깔아놓은 것이지만, 당내에서부터 실제 효과로 이어지기 어렵다는 지적들이 나오고 있다.

민주당 5선 중진 이상민 의원이 대표적이다. 이 의원은 14일에도 페이스북을 통해 "자발적 참여는 실효성의 담보가 안된다"며 "부유세 또는 사회적 연대세 방식이 더 낫다"고 했다. TF에 포함된 이용우 의원도 "사회연대기금 조성으로 이름을 바꿔야 한다. 이익공유제에서 자발성을 강조하지만 실제 그리 될 지 의문이다. 논란만 증폭된다"고 했다.

민주당 관계자는 "가장 어려움을 겪는 소상공인, 자영업자들을 위한 영업보상 등을 추진하고 있는 상황에서 자발성에 근거한 이익공유가 얼마나 큰 혜택으로 돌아갈 지에 대한 의구심이 있는 게 사실이다. 앞으로 TF 활동에서 다양한 의견들이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이 대표 입장에서는 사면이든 코로나이익공유제이든 단정하지 않고 논의의 여지를 열어놓는 방식을 취했다고 할 수 있겠으나, 비판적으로 보면 정면 승부를 피하는 태도로 비쳐질 수 있다. 이재명 지사가 포퓰리스트라는 일각의 지적에도 불구하고 일관적으로 보편적 재난지원금과 기본소득을 주장하는 것과 대비되는 측면이 있다.

이 대표는 14일 당정 협의에서 백신 뿐 아니라 치료제도 무상으로 제공돼야 한다는 점을 확인하면서 "11월 집단면역 일정이지만, 더 당길 수는 없을까, 자유롭게 단풍놀이라도 할 수 있을까 하는 국민들의 소박한 여망"을 언급했다. 월성 원전 부지 지하수에서 방사능 삼중수소가 검출된 데 대해서도 "누군가의 은폐가 있었는지, 세간의 의심대로 원전마피아 결탁이 있었는지 등을 명백히 밝혀야 한다"고 강하게 말했다. 여당 대표로서의 존재감과 선명성을 강조하려는 발언들로 보인다.

이 대표가 덜 개혁적이라는 이미지가 강해질수록 이른바 '친노'와 '친문' 진영에서는 제3의 후보를 부상시키려 할 동력이 커질 수밖에 없다. 사면 관련 청와대의 입장에 따라 이 대표가 앞서 비판을 무릅썼다는 평가를 받을 수도 있겠으나, 청와대가 대법원 판결 직후 전향적 결단을 내릴 가능성이 높아보이지는 않는다. 박 전 대통령은 "재판부에 대한 믿음이 더는 의미가 없다"며 재판에 불참하면서 무죄를 주장해 왔다.

박철응 기자 her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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