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문대 합격자 수 OO명".. 당신이 잘 모르는 진실 [전대원의 교육이야기]
[전대원 기자]
▲ 2014년 12월 전남 목포의 한 고등학교에 걸린 '특정학교 합격 현수막'. 현수막에는 "서울대 5명!! 일반고 전남최다 합격!"이라는 내용이 담겨 있다. |
ⓒ 소중한 |
얼마 전에 서울대 합격자가 발표되었다. 공교육에 있다가 인터넷 강사로 명망을 얻어 사교육으로 자리를 옮긴 어느 대형 사교육업체 대표는 친히 유튜브에 출연하여서 서울대 합격자 순위를 발표하기도 하였다. 사람들이 가장 관심 있어 하고 홍보 효과가 극대화되는 정보를 모아서 대표가 직접 말하는 형식을 취한 것이다.
수능은 전 국민 올림픽이 된 지 오래라 서울대 합격자 수를 적어 놓은 현수막을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실은 지방대 의대가 서울대 공대보다 들어가기 어려워진 지 꽤 오래되었음에도, 여전히 서울대 합격자 수는 입시의 바로미터이다.
대형 사교육업체와 대형 언론사의 유착은 정보를 통해서 이뤄진다. 가끔 사교육 업체에서는 이렇게 전국 단위의 정보를 제공해주는데 교사들은 뭐하고 있냐는 질문을 받을 때가 있다.
아닌 게 아니라 실제로 이런 걸로 특화하여 전국적 지명도를 날리는 선생님들도 계시다. 교사들 사이에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그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전국에 있는 선생님으로부터 입시 자료를 수집하여 그것을 바탕으로 입시 정보집을 내는 것이다. 필자도 고3 담임을 하면서 이런 선생님들이 하는 입시 설명회에 많이 갔었다. 매년 고3 담임이 되면 방학 때마다 하는 연례 행사였다.
이런 정보는 결국 자본과 특화, 그리고 개인적 열정이 어우러져서 나타난 산물이다. 대형 사교육업체들은 자체적인 모의고사를 많이 치르는데, 이게 모두 정보를 추출하려는 작업들이다. 수업 시간에 사회문화를 가르치면서 학생들에게 자료수집과정과 연구 절차를 가르치게 되는데, 입시 연구도 결국 이런 일반적인 절차를 거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입시 정보라는 게 특별한 통찰력을 필요로 하는 것은 아니지만 대중적 파급력은 매우 크다. 이 시점에서 공교육은 뭐하고라는 질문에 답할 때가 되었다.
개고생
실은 교육 조직을 이용하면 교사들이 열정페이를 지불하거나 사교육 기관이 자본을 들일 필요가 없다. 교육부가 일정 서식을 정해서 전국에 있는 고등학교에 대학 입학 현황 보고 공문만 하나 내려보내면 끝이다. 그러면 순식간에 전국에 있는 학교 단위 통계가 집계될 것이다. 수능 문제의 정답률 1등급 분포, 상위권 대학의 예상 합격선 정도는 수능 시험을 주관하는 한국교육과정평가원에 있는 기초 데이터만 확보해도 된다.
▲ 한국교육과정평가원 |
ⓒ 한국교육과정평가원 |
이 국가 공식 데이터를 욕심내는 사람들이 있다. 대형 사교육업체, 그리고 지역사회의 이해가 닿아 있는 일부 국회의원, 그리고 순수한 열정 차원에서 학문적 접근을 시도하려는 사람이다. 아마도 전국 단위에 가장 신뢰할만한 성적 데이터는 세계 여러 나라를 뒤져도 수능 데이터를 갖고 있는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을 능가할만한 곳이 없을 것이다. 그곳의 정보를 다들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
여기서 하나 짚고 넘어갈 것이 있다. 과연 고3 담임교사는 이런 전국 데이터를 수집하고 열정을 쏟아 붓는 것이 맞을까? 세간의 사람들은 교사가 책을 쓴다든지, EBS에 출연해 강의를 한다든지 하면 훌륭하고 멋진 선생이라고 하는 경향이 있는데, 아주 커다란 오해이다. 방송에 나오는 쇼닥터가 명의가 아니듯, 책 쓰고 인터넷 강의에 얼굴 비친다고 모두 훌륭한 교사인 것은 아니다. 훌륭한 교사란 교실에서 학생을 만나는 교사이지 방송 출연하는 교사가 아니다. 교사가 방송 출연하는 걸 나쁘다고 보는 건 아니다. 이런 겉보기식 평가는 금물이라는 것이다.
입시도 이런 겉보기식 평가가 만연한 곳이다. 솔직히 말해 내 자식이 서울대 갈 실력에서 한참 먼데, 고등학교 선택에서 서울대 합격생 배출이 무슨 의미인지 모르겠다. 한정된 학교 자원이 서울대 배출을 위하여 특정 학생에게 몰린다면, 그게 전교 수위권을 달리는 학생에게는 유리할지 모르지만, 성적이 그 정도 되지 않는 학생에게는 오히려 큰 손해가 된다.
문제는 이런 정보마저 왜곡이 심하다는 것이다.
코미디
입시 정보와 관련해서 아주 코미디 같은 사건이 하나 있었다. 자사고 폐지에 앞장서던 교육감이 특정 고교가 의대 입시에 편중되었다면서 공개적으로 그 학교 의대 합격자 수치를 밝힌 것이다.
"360명 졸업생 중에 275명이 의대에 갔다."
교육감은 학교 교육의 파행을 말한 것인데, 팩트가 틀렸다는 비판이 흘러 나왔다. 아무래도 과장된 숫자임이 분명했다. 여기서 밝혀진 이면의 팩트 하나. 바로 교육감도 자신의 행정 지휘 감독 아래에 있는 고등학교의 입시 결과를 잘 모른다는 것.
해당 학교에서는 즉각 반박에 나섰다. 실제로는 210명 정도이고 재학생보다는 재수, 삼수생이 더 많다는 것. 그리고 그나마도 이중, 삼중 중복 합격생이 많다면서 과장된 수치이며, 순수 의대만이 아니고 한의대와 치대 등도 포함한 숫자로 진실은 훨씬 더 적다는 것이었다.
필자는 혼자서 배꼽잡고 그 기사를 볼 수밖에 없었다. 언제는 그 과장된 수치로 사람들이 오해를 하게 홍보하더니, 그 숫자가 여론 시장에서 불리할 것 같으니깐 팩트가 적나라하게 드러난 것이다. 그 학교가 의대 진학 희망자들에게 꽤 인기가 있다는 건 사교육 업계에서 이미 들은 바 있었다. 그 누구도 그 학교의 실제 진학 실적을 도통 알 수가 없었는데, 예기치 않은 정치적 공방으로 인하여 진실의 일단이 드러나 버렸던 것이다.
그럼 도대체 교육감이 언급한 의대 입학생 숫자는 어디서 나온 것일까? 어디긴 어디겠나. 바로 학교에서 자기네 입시 실적 자랑하면서 붙인 홍보물에서 나온 것이다. 홍보할 때는 최대한 늘리고, 불리할 때는 최소한으로 줄이는 법칙이 여기라고 다를 리 없다. 마치 동창회에서 자랑할 때 연봉과 세금 내는 거 투덜거릴 때 남는 거 없다고 하면서 산정하는 금액이 다른 거랑 똑같은 이치이다.
교육감의 팩트 체크는 바로 그 고등학교에 나온 자료에 근거한 것이었고, 그걸 또 팩트 체크라는 이름으로 그 학교 관계자가 반박하였으니, 보고 있는 교사 입장에서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과연 우리 근처에 있는 평범한 고등학교라고 다를까?
이해하기 쉬운 형태로 명문 대학 합격자 수를 홍보하지만, 20년 간 고등학교에서 근무한 나도 숫자만 보면 고개를 갸우뚱할 때가 많다. 내부자가 되지 않는 이상 숫자 이면에서 알려주고 있는 교육 실태를 파악하기란 결코 쉽지가 않다.
우리가 갖고 있는 모든 숫자들은 진실의 일면만을 보여준다. 가끔 오히려 모르는 것이 더 큰 진실을 보는 것에 유리할 때도 많다. 이런 오해를 줄이기 위하여 늘 설명하고 이해시키려 하지만, 우리는 욕망이란 너무 큰 진실 가리개를 하나씩 쓰고 있다. 입시가 그런 걸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이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군복 입기 부끄러워"...5.18 때 전두환에 맞선 장군들
- [단독] 12.12 직후 전두환, 해외공보관 불러 "외신 순화" 거론... 영상 최초공개
- [참관기] 미얀마·세월호... 5.18 기념식 기억에 남는 두 장면
- "윤석열, 대통령에게 '조국만 도려내겠다' 보고"
- 쎄시봉 송창식은 왜 하필 전성기 때 자취를 감췄나
- 원주 별장 동영상, 그래서 최종 결론이 뭔가요?
- 5·18 때 총 맞은 소나무부터 800살 먹은 은행나무까지
- "땅값 4배 상승" 김일권 시장 특혜 의혹에 양산시 '시끌시끌'
- 엄기두 해수부 차관·백승근 국토부 대도시권광역교통위원장 내정
- 계엄사가 고문한 '정마리안나'를 아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