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 않고 돈 모았더니 가난해졌다" 이 시대 벼락거지의 자조

정진호 2021. 1. 15.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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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KB국민은행 여의도지점 스마트딜링룸에서 직원들이 업무를 보고 있다. 이날 코스피는 전일 대비 1.64포인트(0.05%) 오른 3149.93으로 거래를 마쳤다. 뉴스1

3년 차 직장인 이수헌(29)씨는 주식 투자를 시작할지 심각하게 고민 중이다. 부동산이나 주식으로 큰돈을 벌었다는 지인들의 소식이 끊이지 않고 들려와서다. 이씨는 “월급을 착실히 적금했는데 허탈하다”며 “일찍 결혼해 ‘영끌’로 집을 산 친구들은 이제 따라잡을 수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주식이라도 해야 하나’ 매일 안절부절못하는 이유다.


"가만히 있었더니 벼락거지"
아파트·주식·비트코인 등 직장인들이 관심이 큰 재테크 상품들이 연일 ‘최고가’를 갱신하면서, 그런 자산을 가지지 못한 이들은 갑작스럽게 거지가 된 듯 심한 상실감을 느끼고 있다. 이른바 ‘벼락거지 증후군’이다. “나 빼고 다 돈을 벌었다”는 생각에 자신은 더 가난해졌다고 여긴다. 이들 중 일부는 “열심히 살았는데 가난해졌다”며 자조하거나 뒤늦게 ‘투자 러시’에 나서는 패턴을 보이기도 한다.

4년 차 직장인 최모(30)씨는 지난해 12월 주가가 계속 오르자 3000만원을 대출받아 주식에 투자했다. 그는 “주변에서 수천만 원씩 벌었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벼락거지’가 된 억울한 심정에 늦게나마 돈을 빌려 투자했다”고 말했다. 그는 “월급 받아서 전세자금대출을 중도상환 해왔는데, 그 돈으로 투자할 걸 그랬다”고 후회했다.

14일 확인한 직장인 최모(30)씨의 마이너스 통장 계좌. 최씨는 지난해 말 마이너스 통장을 만들고 부동산 투자를 위해 3000만원, 주식 투자를 위해 3000여만원을 대출받았다. [최씨 제공]



박탈감에 암호화폐 투자
전문직 종사자인 이모(38)씨는 지난해 12월부터 이달까지 암호화폐 2000만원 어치를 사들였다. 이씨는 “지인 중 한 명이 비트코인 가격이 4000만 원대까지 오르면서 10억원가량을 벌었다는 얘기를 들었다”며 “비트코인을 사기에는 너무 많이 오른 것 같아서 큰 수익을 내기 위해 다른 암호화폐에 투자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씨가 투자한 암호화폐 가격은 보름 동안 약 40% 하락했다.

8일 서울 강남구 암호화폐 거래소 업비트의 고객센터 전광판에 4천만원을 넘긴 비트코인 가격이 보이고 있다. 14일 오후 5시 기준으로 비트코인 1개당 가격은 4222만원을 기록했다. 신인섭 기자



"일해서 뭐 하나" 2030의 한탄
일부 젊은 직장인들은 근로 의욕 상실을 호소한다. 2년 차 회사원 정모(30)씨는 “부가 부를 축적하는 게 자본주의 사회라지만 뒤처지고 차별받는다는 박탈감이 수시로 든다”면서 “열심히 일하는 게 무슨 소용인가 싶다”고 말했다. 중소기업에 근무하는 3년 차 김모(29)씨는 “스트레스받고 야근해가면서 받는 월급 이상의 돈을 부동산이나 주식으로 하루아침에 버는 모습을 보면 아무것도 손에 안 잡힐 때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카카오톡 단체대화방에서 주식 얘기를 자꾸 하니 기분이 상해서 ‘그만하라’고 짜증 낸 적도 있다”고 덧붙였다.

헤어디자이너 이모(27)씨는 “주식이나 비트코인 투자하는 법을 몰라서 안 하고 있었는데 주변에서는 다 돈을 벌고 있어서 조바심이 생겼다”고 했다. 임명호 단국대 심리학과 교수는 “젊은 세대는 열심히 공부해 취업하고 일을 하더라도 넘을 수 없는 벽에 가로막히는 기분이 들 것”이라며 “돈 있는 사람이 자본을 이용해 부를 축적하는 모습을 목격하면 근로의욕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3년 차 직장인 김모(29)씨가 지난 11일 친구들과 카카오톡 단체대화방에서 나눈 대화. [김씨 제공]



“남 돈 벌었다고 투자는 위험”
경제전문가들은 ‘벼락거지 증후군’에 따른 충동적인 투자는 경계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김태기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부동산은 오르고 일자리는 줄어드니 주식이라도 해야 하는 게 아니냐는 심리에 무작정 주식시장으로 들어오는 사람이 늘고 있다”고 진단했다. 김우찬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는 “자신의 여윳돈과 투자 성향을 고려해서 투자해야 한다. 다른 사람이 돈을 벌었다는 이유만으로 빚내서 투자하는 건 대단히 위험하다”고 지적했다. 김영익 서강대 경제학부 교수는 “현금 비중 늘려 위기에 대비하는 게 필요하다”면서도 “금리가 워낙 낮아 장기적으로는 주식 투자를 하는 건 좋게 본다”고 했다.

정진호·편광현 기자 jeong.jin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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