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계서 가장 먼저 시작했는데 가장 부진" 신동빈 30분 쓴소리

추인영 2021. 1. 14. 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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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빈 롯데 회장이 지난 13일 화상회의 방식으로 진행된 '2021 상반기 롯데 VCM(Value Creation Meeting)'에 참여하고 있다. 사진 롯데그룹


“업계에서 가장 먼저 시작했음에도 부진한 사업군이 있는 이유는 전략이 아닌 실행의 문제였다고 생각합니다. 디지털 혁신에 대응하기 위한 디지털 전환(DT) 및 연구·개발(R&D) 투자는 반드시 필요하고, 투자가 결실을 보기 위해서는 전략에 맞는 실행이 필수적입니다.”
신동빈 롯데 회장이 올해 첫 사장단회의에서 지난해 부진한 경영지표를 질타했다. 신 회장은 “우리의 잠재력을 시장에서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반증”이라며 “위기 때 혁신하는 기업이 위기 후에도 성장 폭이 큰 것처럼, 올 2분기 이후로 팬데믹이 안정화됐을 때를 철저히 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롯데의 사장단회의는 매년 상ㆍ하반기에 계열사 임원진이 모여 중장기 성장 전략을 공유하는 자리다.


신 회장, “각사 핵심가치 뭔가” 질책
14일 롯데에 따르면, 신 회장의 작심 발언은 4시간 이어진 회의 말미 30분간 이뤄졌다. 신 회장은 13일 열린 사장단회의에서 각 사의 본질적인 경쟁력, 핵심가치는 무엇입니까?”라고 질문을 던진 뒤 “5년 후, 10년 후 회사의 모습을 임직원들에게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는 “각 회사에 맞는 명확한 비전과 차별적 가치가 있어야만 성공할 수 있다”며 “생존에만 급급하거나, 과거의 성공 체험에 집착하는 기업에겐 미래도, 존재 의의도 없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혁신적으로 변하지 못하는 회사들은 과감한 포트폴리오 조정을 검토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후 지속적인 투자와 과감한 실행력을 주문했다고 한다.

주요 커머스 앱 사용자 현황.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신 회장의 발언은 최근 이커머스로 급격히 전환하고 있는 유통업의 부진을 염두에 둔 것이란 분석이다. 롯데에서 유통 부문은 그룹의 모태이면서 전체 사업의 40% 가까이 차지하는 주력 사업이다. 하지만 최근 쿠팡 등 이커머스 업체의 급성장으로 유통 시장이 격변한 가운데 지난해 코로나19까지 겹쳐 실적이 부진했다. 기존 오프라인 점포의 경쟁력은 약해지고 뒤늦게 뛰어든 이커머스 부문에서도 이렇다 할 성과를 내놓지 못했다.

특히 통합온라인몰 롯데온은 지난해 4월 총 3조원을 투자하겠다면서 야심차게 출범했지만 시장 장악력은 아직 크지 않다. 모바일 빅데이터 플랫폼 모바일인덱스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기준 롯데온의 애플리케이션 월 사용자 수는 112만명으로 1위인 쿠팡(2141만명)의 5.2% 수준이다. 롯데온은 출범 직후 5월(96만명)엔 월 사용자가 오히려 감소했고 최근 대규모 할인행사 등에 힘입어 간신히 성장세로 돌아선 상황이다.

롯데의 성적은 오프라인 경쟁사이자 이커머스 후발주자인 신세계와도 비교된다. 신세계의 쓱닷컴은 지난해 12월 매출이 40% 이상 늘었는데 식품군 성장률만 보면 60%가 넘는다. 이마트가 2017년 이후 식품군을 강화해온 성과다. 신세계백화점 역시 코로나19라는 악조건 속에서도 명품과 매장의 대형화를 통해 지난해 성장한 전국 백화점 9곳 중 5곳에 이름을 올렸다. 반면 롯데는 인천터미널점 외에 모든 점포 매출이 줄었다.


유통시장 급변…롯데만의 '강점' 살려야
롯데는 최근 비상 상황을 선포하고 허리띠를 바짝 조이는 중이다. 지난해 2월 오프라인 점포 700개 중 200개를 정리하겠다는 구조조정 방안을 발표한 이후 10개월간 114개 점포를 닫고 직원 1994명을 줄였다. 고정비용이 줄고 생필품 수요가 늘면서 지난해 3분기엔 당기순이익 30억원으로 흑자 전환했다. 예년보다 앞당겨 실시한 연말 인사에선 임원 수를 100여명 줄였고, 50대 임원을 전진 배치했다. 다만 지난해 실적은 전년도를 넘어서긴 힘든 상황이다.

롯데의 유통부문은 경쟁력 회복이 급선무로 꼽힌다. 박희진 신한금융투자 애널리스트는 “롯데백화점이나 마트가 각각 추구하는 정체성을 확립할 필요가 있다”며 “2000만이 넘는 롯데멤버십과 전국 유통망을 기반으로 소비자 접점을 활용해 롯데만의 강점을 찾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추인영 기자 chu.in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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