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 산책] 집·자연·가족 담은..어린아이처럼 순수한 시선

박병희 2021. 1. 14. 13:03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장욱진 회고전을 관람하고 나오자 이내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현대화랑이 다음달 28일까지 장욱진 화가(1917~1990) 30주기 기념전 '집, 가족, 자연 그리고 장욱진'을 개최한다.

장욱진의 대표작 중 하나인 '자화상(1951)'부터 '가족도(1972)'와 '풍경(1980)', 타계하던 해에 그린 '나무' '닭과 아이' '밤과 노인(이상 1990)' 등 50여점이 전시된다.

장욱진은 '가족도'처럼 옹기종기 모여 앉은 가족들의 모습을 많이 그렸다.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현대화랑 다음달 28일까지 장욱진 30주기 회고전 '집, 가족, 자연 그리고 장욱진'

[아시아경제 박병희 기자] 장욱진 회고전을 관람하고 나오자 이내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그도 좋아했으리라. 평생 어린아이 같은 순수한 마음을 표현했던 화가였으니.

현대화랑이 다음달 28일까지 장욱진 화가(1917~1990) 30주기 기념전 ‘집, 가족, 자연 그리고 장욱진’을 개최한다. 장욱진의 대표작 중 하나인 ‘자화상(1951)’부터 ‘가족도(1972)’와 ‘풍경(1980)’, 타계하던 해에 그린 ‘나무’ ‘닭과 아이’ ‘밤과 노인(이상 1990)’ 등 50여점이 전시된다.

장욱진은 일제 치하, 6·25전쟁, 산업화 시대를 거치며 격동의 시대를 살았다. 하지만 그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은 어린아이처럼 순수했다. 목가적이고 토속적 그림을 그렸다. 주제는 자연과 가족이었다. 나무·집·사람·까치·해·달·소·닭·돼지 등을 반복적으로 그렸다. 단순한 형태와 색으로 표현된 그림에서 따스함을 느낄 수 있다.

장욱진 '자화상', 1951, 종이에 유채, 14.8×10.8㎝ [사진= 현대화랑 제공]

‘자화상’은 황금빛 들판을 배경으로 정장 차림의 신사 한 명이 걸어가고 있는 그림이다. 개가 한 마리 뒤따르고 하늘에는 새 네 마리가 날고 있다.

장욱진은 6·25전쟁이 발발한 뒤 부산으로 피란갔다. 1951년 9월 고향인 충남 연기군으로 올라와 다음해 봄까지 지낸 뒤 다시 부산으로 내려갔다. ‘자화상’은 고향에 머물 때 그린 것이다. 피란 중 그린 그림이라고 생각하기 힘들 정도로 황금빛 배경이 눈부시다. 그림에서 혼돈은 찾아볼 수 없다. 평화로움과 여유만 있을 뿐이다.

정영목 서울대 명예교수는 장욱진의 그림에 대해 "시간을 역행하는, 시간을 정지시켜버린, 시간을 초월한 일상의 공간을 표현한 것들"이라고 평했다.

전쟁 전에 그린 그림들은 거의 남아있지 않다. 유족들은 1953년 휴전 직후 서울 집에 왔더니 그때까지 그린 작품 모두가 소실됐다고 전했다.

장욱진 '가족도', 1972, 캔버스에 유채, 7.5×14.8㎝ [사진= 현대화랑 제공]

장욱진은 자연을 벗 삼아 그렸다. 새벽에 일어나 집과 화실 주변의 자연 속에서 산책하며 하루를 시작했다. "나는 천성적으로 서울이 싫다. 서울로 표상되는 문명이 싫은 것이다. 그래서 12년 전부터 아예 서울을 버리고 이곳 한강이 문턱으로 흐르는 덕소에 화실을 잡았다." 1974년 9월 그가 ‘샘터’에 기고한 글 ‘새벽의 세계’ 중 일부다.

그는 1963년부터 경기도 양주군(현 경기도 남양주시)에 마련한 ‘덕소 화실’에서 그림을 그렸다. 여러 차례 화실을 옮겼다. 1975년 덕소 화실을 버리고 서울 종로구 명륜동 집 뒤편으로 옮겼다. 덕소에 공장과 국도가 들어서면서 한적함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명륜동에서 5년을 지낸 뒤 1980년 충북 수안보에 화실을 마련했다. 수안보에 상업시설이 들어서 시끄러워지자 1986년 다시 경기도 용인군(현 용인시)으로 화실을 옮겼다.

장욱진 '황톳길', 1989, 캔버스에 유채, 46×46㎝.jpg

이번 전시는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이 많은 요즘에 잘 어울린다. 장욱진은 ‘가족도’처럼 옹기종기 모여 앉은 가족들의 모습을 많이 그렸다. 그는 화백, 교수보다 ‘집 가(家)’ 자가 들어 있는 화가로 불리기를 좋아했다.

작가를 닮은 그림은 소탈하고 소박하다. 전시된 작품 모두가 작다. 가장 큰 작품이 1989년 ‘황톳길’인데 46㎝ x 46㎝에 불과하다.

박병희 기자 nut@asiae.co.kr

Copyright © 아시아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