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욕탕에서 찾은 가족의 의미
[홍기표 기자]
"행복하고 싶어요"라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어떻게"라고 물어보자. 머뭇거리다 로또 당첨이나 원하는 직장을 얻는 것 따위의 아주 일반적인 행복 요건들을 말할 것이다. 또는 심적 평안을 얻거나 해탈의 경지에 이르는 등 사뭇 색다른 것을 언급할 수도 있다.
▲ 영화 <행복 목욕탕> 포스터 |
ⓒ 디스테이션 |
행복하지 않은 행복 목욕탕
카즈히로는 물려받은 작은 동네 목욕탕에 무관심한 채 파칭코를 즐기는 한량이었다. 그의 아내 후타바는 '행복 목욕탕'이라고 이름이 붙은 이곳을 근근이 유지해왔지만 어느 날 파칭코에 잠시 다녀오겠다던 남편이 1년 동안 돌아오지 않자 문을 닫을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빵집에서 일을 하면서 겨우 딸아이 학업을 뒷바라지했다. 그녀는 이 거짓말 같은 운명에 웃으며 긍정적으로 버텼다.
후타바의 딸 아즈미는 학교에서 왕따를 당한다. 친구들은 이유 없이 그녀의 책상을 차거나 체육 시간 후 몰래 교복을 숨겨 놓기도 한다. 한 날은 아즈미가 미술 시간이 끝나고 온 몸이 물감으로 뒤범벅이 되는 사건이 발생한다. 후타바는 학교 연락을 받고 양호실에서 그 모습을 보고 가슴이 찢어졌지만 울지는 않는다. 그리고 조용히 딸과 함께 집으로 돌아간다.
이처럼 행복하지 않은 웃음이 가득한 엄마 후타바는 불행해 보였다. 딸은 딸대로 엄마는 엄마대로 불행을 견디며 사는 이 가족에게 앞으로 어떤 행복이 찾아올까 기대했으나 그들의 불행은 더욱 커져만 갔다.
가족의 의미
어느 날 갑자기 빵집에서 쓰러진 후타바는 자신이 췌장암 말기라는 것을 알게 된다. 약속받은 짧은 삶에서 자신이 반드시 해야겠다고 다짐한 것은 가족을 지키는 일이었다. 딸의 아빠를 찾아 '행복 목욕탕'에 다시 온기를 불어넣고 아즈미가 혼자서 왕따를 이겨내도록 돕는 것이었다. 사립 탐정을 통해 찾은 남편은 혼외 딸 아유코를 혼자서 키우고 있었다. 아유코의 엄마는 카즈히로에게 당신의 딸이라고 맡겨 두고 멀리 떠난 상태였다. 후타바는 남편에게 자신의 상태를 설명하고 그 둘을 집에 들인다. 그렇게 네 가족이 되었다.
어색한 이 가족은 시간이 지날수록 끈끈한 우정과 사랑으로 묶인다. 목욕탕을 다시 열고 손님을 맞이한다. 각자의 역할에 충실하며 잘 운영한다. 그리고 후타바는 아이들과 마지막 여행을 떠난다. 그 여행의 목적지는 바로 딸 아즈미의 친엄마가 있는 곳이다.
후타바는 자신의 엄마로부터 버림 받았다. 그녀는 행복이라는 것이 누군가의 엄마가 되는 것이었고, 또한 아즈미에게 친엄마를 찾게 해주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가족은 함께 있어야 되고 행복은 그곳에서 시작된다고 그녀는 믿는 것 같았다.
몸을 태워 마지막 온기까지 나눠주고 간 사람
감독은 이렇게 말도 안 되는 상황으로 계속해서 우리를 몰아넣으며 질문에 질문을 이어간다. 행복이란 무엇인가. 가족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또 불행이라는 것은 무엇인가. 우리에게 주어진 이 어처구니없는 상황 속에서 무엇으로 살아가야 되는가.
이 영화는 후타바를 통해서 하나의 결론을 내고 있는 것 같았다. 후타바의 불행은 모두에게 용기와 희망으로 돌아왔다. 불행은 단지 내가 그러하다고 생각할 때 찾아오는 것이고 행복 또한 그러하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그래서 우리는 적극적으로 행복이라는 이 알 수는 없지만 아주 선명한 그곳으로 달려가야 된다고 말한다.
몹시 불행해 보이는 그녀로 인해 등장인물들은 '행복의 나라'로 입성한다. 후타바 가족은 자신의 처지를 담담히 받아들이고 헤쳐나갈 수 있는 용기를 얻었으며 어떠한 상황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게 되었다. 그들에게 삶은 무언가를 달성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보다 한 발짝 앞으로 나아가는 문제가 되었다.
그렇게 그녀는 모든 이에게 용기와 웃음을 주고 사라졌다. 마지막 남은 그녀의 몸도 '행복 목욕탕'의 물을 데우던 화로에서 태워진다. 행복 목욕탕 굴뚝에서는 그녀가 좋아하는 색인 '빨강' 연기가 뿜어져 나온다. 그 연기는 바람을 타고 흘러 흘러 저 멀리 모든 이에게 혹시 행복을 꿈꾸고 있다면 그것은 바로 지금 당신 곁에 있다고 알려주려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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