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이영표 대표의 '고백'.."전 이기적으로 살았습니다"
"저는 이기적으로 살았습니다."
이영표(44) 강원 FC 신임 대표이사의 말이다. 누구보다 한국 축구를 사랑한 그가 이렇게 말한 이유가 있다.
이영표는 PSV 에인트호번(네덜란드), 토트넘(잉글랜드), 도르트문트(독일) 등 유럽에서 인정받으며 한국 축구의 위상을 높였다. 2002 한·일 월드컵 4강과 2010 남아공월드컵 사상 첫 원정 16강을 이끈 국가대표팀의 얼굴이기도 하다.
대부분의 선수처럼 이영표도 은퇴를 앞두고 뒤를 돌아봤다. 한국 축구를 위해 한 일이 단 하나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는 자책했다. 반드시 한국 축구에 도움을 주는 일을 하겠다고 다짐했다.
이영표는 팬들로부터 받은 사랑을 어떤 방식으로든 되돌려줘야 한다는 책임감을 가슴 깊이 새겼다. 선수 은퇴 후 행정가가 되겠다고 방향을 잡았다. 차분히 준비했고, 드디어 때가 왔다.
K리그 구단 역대 최연소 대표이사가 탄생했다. 일간스포츠가 지난 1일 업무를 시작해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이영표 대표와 인터뷰했다.
-어떻게 지내고 있나. "정신없이 바쁘다. 선수 영입이 마무리 단계에 있다. 업무 보고를 받고, 조직개편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또 해야 할 사업도 정리하고 있다."
-대표이사 부임이 지도자를 하지 않겠다는 선언인 듯하다. "그렇게 볼 수 있겠다. 지도자 자격증도 없다(웃음). 지도자는 매력적인 직업이다. 무엇보다 잔디 위에 있을 수 있다. 그라운드에서 선수들과 공을 찰 수 있다는 게 너무 매력적이다. 그렇지만 내게는 더 하고 싶은 게 있었다. 행정이었다. 그 일을 선택해서 좋다."
-대표이사 제의를 흔쾌히 수락했나. "사실 전부터 몇몇 클럽으로부터 대표 제의를 받았다. 그때는 고사했다. 30대 후반 나이에 대표를 하는 게 너무 이른 거 같았다. 이미 몇 번 대표 제의를 받아 강원의 제의에 놀라지는 않았다. 그러나 한 번에 대답하지 못했다. 강원이 세 번 요청했을 때 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수락했다."
-왜 강원이었나. "고향이 강원도 홍천이기도 하지만, 타이밍이 좋았다. 과거 다른 클럽의 제의를 받았을 때는 내 배움이 부족했다. 축구가 아닌 경영을 더 경험하고 공부해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다. 지금은 다르다. 4년 전부터 스타트업 기업을 경영했다. 작은 조직이지만 회사를 경영하면서 마케팅·운영·물류·자금관리·세무 등을 경험했다. 이게 강원 대표직을 수락하는 데 상당히 큰 역할을 했다. 회사를 경영해보면서 자신감이 쌓였다."
-강원은 어떤 방향으로 가는가. "명문 구단이 될 수 있는 밑거름을 만들고 있다. 명문 클럽의 조건은 세 가지다. 첫째, 축구를 잘해야 한다. 둘째, 팬들로부터 사랑받는 매력적인 팀이어야 한다. 마지막은 비즈니스다. 재정적으로 안정돼야 흔들리지 않는다."
-경영 철학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게 있다. 정직하게 일하겠다는 것이다. 당연한 건데 지금 세상은 정직이 파격이라고 생각할 정도가 됐다. 축구 선진화를 위해 스포츠의 본질인 '공정하고 깨끗한 행정'이 뒷받침돼야 한다. 모든 사람에게 모든 걸 보여줄 수 있는 행정을 할 것이다. 당당히 오픈하겠다. 정직하다면 문제될 게 없다."
-대표가 경기력에 관여하는 경우가 있다. "내가 경기력을 위해 할 일은 단 한 가지다. 감독이 원하는 선수를 영입하는 것이다. 감독이 원하지 않는 선수는 데려올 이유가 없다. 이 외에 내가 할 일은 없다. 유럽 생활을 오래 해서 역할을 정확히 구분한다. 대표가 해야 할 일, 절대 하지 말아야 할 일을 구분할 수 있다. 대표·감독의 권한과 책임은 겹치지 않는다. 감독의 권한을 조금이라도 침범할 생각은 없다."
-유럽과 미국, 어떤 모델을 강원에 접목할 것인가. "유럽은 삶 자체가 축구다. 미국은 팬이 즐거울 수 있다면 축구의 본질조차 바꿀 수 있다는 마인드다. 문화와 관점의 차이다. 영국에서 먹혔던 마케팅이 미국에서 통하지 않을 수 있다. 또 미국에서 통한 이벤트가 한국에서 성공하지도 않는다. 서로 다른 문화와 인식을 캐치해야 한다. 강원 경기를 볼 이유를 만들 것이다. 그러기 위해 팬들과 접촉하고 소통해야 한다. 팬덤이 튼튼한 팀들이 가장 부럽다."
-강원의 변화는 언제부터 경험할 수 있나.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다. 만약 올 시즌 성적이 좋거나, 팬이 많이 늘어나거나, 큰돈을 번다면 우연이다. 진짜 우리 것이 아니다. 쉽게 얻는 건 쉽게 잃는다. 지금 시스템을 올바르게 만들면 10년, 15년 후 진짜 명문 구단이 될 수 있다. 지속적으로 강팀이 될 방법을 찾을 것이다. 축구전용구장도 만들어야 한다. 현재도 중요하다. 지금 가장 중요한 건 축구를 잘하는 것이다."
-많은 사람이 이영표에게 기대한다. "보드진(경영진)에 따라 정책이 달라지고 팀이 바뀐다. 잘 나가던 구단이 무너지기도 하고, 무너진 구단이 잘 되기도 한다. 그렇지만 한 명 바뀐다고 되겠나? 다같이 힘을 합쳐서 바꿔야 한다. 앞으로 강원이 바뀌지 않는다면 내 잘못이다. 강원이 성장한다면 모든 구성원이 만들어낸 것이다."
-행정가 시작부터 큰 직책을 맡았다는 시선도 있다. "맞는 말이다. 더 책임감을 가지고 있다. 많은 분이 날 주목하고 있다. 경기인 출신이 행정을 했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지켜볼 것이다. 팀이 좋은 방향으로 간다면, 내 뒤에 더 많은 경기인 출신 행정가가 나올 수 있다. 반대로 내가 못 한다면 경기인 출신은 한계가 있다는 이미지를 줄 수 있다. 더 열심히 할 것이다."
-이제 '증명해야 하는' 자리에 왔다. "욕을 무지하게 먹을 수도 있다. 그래도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건 축구단의 존재 이유에 대해 확실히 알려주겠다는 것이다. 스포츠는 일상에 지친 사람들이 즐거움을 찾으면서 탄생했다. 지치고 힘든 강원도민과 축구 팬들에게 강원이 기쁨을 줘야 한다. 경기도 잘하고, 돈도 많이 벌어서 더 많은 팬이 기쁨을 느낄 수 있도록 하겠다. 이를 위한 방법을 반드시 찾을 것이다."
-실패한 적 없는 축구인이다. 실패가 두렵지 않은가. "난 축구를 하면서 많은 실패를 했다. 한국에서도, 유럽에서도, 미국에서도 실패를 경험했다. 거기서 느낀 게 많다. 클럽에서 일하게 되면 어떻게 할지 생각했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보다 내가 강원을 발전시킬 수 있다는 기대감이 더 크다. 나의 항해는 더 많이 웃는 강원 팬들을 향한다."
-2002 월드컵 4강의 주역이 느끼는 책임감과 부담감이 있을 텐데. "은퇴할 즈음 하루하루 남은 날짜를 세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마지막 훈련이구나', '마지막 식사구나', '마지막 홈경기구나' 하면서 축구 선수의 삶을 되돌아봤다. 난 정말 많은 사랑을 받았다. 그런데 한국 축구를 위해 한 일이 아무것도 없었다. '많은 사랑을 받았으면서 도대체 한국 축구를 위해서 무엇을 했나'라고 자책했다. 어렸을 때 돈을 많이 벌고, 유명해지기 위해 축구를 열심히 했던 모습만 떠올랐다. 정말 이기적으로 살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많은 생각 끝에 한국 축구를 위해 꼭 할 일을 찾아야겠다고 다짐했다. 행정가가 그 길이었다."
최용재 기자 choi.yongja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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