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바닥만 한 화폭에 우주를 담은 '심플한 사람'
평생의 모티프 집·가족·자연
"한국적 조형 가능성 회화로 구현"
“나는 심플하다.”
화가 장욱진(1917~1990)이 생전에 자주 한 말이다. 그의 장녀 장경수 장욱진미술문화재단 이사가 쓴 『나의 아버지 장욱진』(2019, 삼인)에는 “아버지는 그림도, 정신도, 삶도 당신 말씀대로 심플했지만 유품까지도 우리가 섭섭할 정도로 심플했다”는 대목이 나온다. 1990년 부친이 갑자기 돌아가신 뒤 유품을 정리하러 화실을 찾았는데, “낙서 한장 없었다”는 것. 야속하고 섭섭해 쓰레기통까지 다 뒤졌다는 딸은 책에 이렇게 덧붙였다. 아버지는 “언제나 모든 날을 마지막 날인 것처럼 사셨던” 분이라고.
서울 삼청동 현대화랑에서 장욱진 30주기 기념전 ‘집, 가족, 자연 그리고 장욱진’이 13일 개막했다. 매일을 마지막 날처럼 살다간 ‘심플한 사람’ 장욱진이 가장 사랑하고 애틋하게 여겨온 것들의 이야기가 50여 점 작은 화폭에 알알이 박혀 있다. 1951년 작 ‘자화상’부터 작가의 유작으로 기록된 ‘밤과 노인’(1990) 등 모든 작품이 코로나19 시대에 더욱 시려진 가슴을 포근하게 감싼다.
전시장에서 관객들은 여러 면에서 놀란다. 손바닥 크기의 그림이 생각보다 많아서, 그 작은 화면 안에 산과 해, 나무와 새, 집과 여러 명의 가족 등 있을 만한 것들은 다 있어서 놀란다.
1972년 작 ‘가족도’는 세로 7.5㎝, 세로 14.8㎝ 크기다. 그 안에 나무 두 그루, 황토색 집, 네 명의 가족, 지붕 위 날아가는 새 네 마리가 담겼다. 장욱진이 평생 표현한 모티프(집, 자연, 가족)가 다 있는 셈. 1973년 작 ‘가족’도 마찬가지다. 미술평론가 김이순(홍익대 교수)은 이를 “장욱진이 추구한 이상세계”라고 했다.
일제 식민지와 한국전쟁을 겪은 작가에게 집과 가족의 의미는 컸다. 집은 황폐한 환경에서 자신과 가족을 보호하는 안식처, 가족은 작가의 길을 걷도록 도와준 고마운 존재다. 장욱진은 1941년 결혼해 6명의 자녀를 뒀지만 1960년 서울대 미술대학 교수직을 그만두고 전업 작가로 살았다. 대신 그의 아내가 서울 혜화동에서 서점(‘동양서림’)을 운영하며 생계를 꾸렸다. 그가 경기도 덕소에 작업실을 마련하고 혼자 생활한 덕소 시기(1963~75) 작품엔 가족을 향한 사랑과 그리움, 고마움의 감정이 애잔하게 배어 있다.
서울로 돌아와 가족과 지낸 명륜동 시기(75~79)도 있었지만 그는 아내와 둘이 수안보(80~85), 신갈(86~90)로 옮겨 살았다. “나는 천성적으로 서울이 싫다”고 말한 그는 고즈넉하게 자연과 마주할 장소를 찾아다녔다. 그림에 산과 들, 흙길, 나무, 개와 돼지, 소, 닭, 새 등이 반복 등장하는 이유다. 자연은 집과 가족의 보금자리이자 인간과 동물이 공존하는 장소로, 평화와 안정을 상징하는 기호로 읽힌다.
장욱진 그림은 친근한 소재를 간결하게 표현한다는 점에서 ‘쉽고 단순한 그림’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그래서 정영목 서울대 명예교수는 “시각적인 피상성의 함정에 빠질 수 있는 것이 바로 장욱진의 작품”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작은 공간을 자기식으로 쪼개고 꾸미는 화가의 까다로운 기호가 그대로 적용되고 표현돼 있다”고 강조한다. 정 교수는 “장욱진은 문인산수화, 민화 등의 전통적인 도상을 수용하면서 새로운 조형의 가능성을 회화로 구현해낸 작가”라고 덧붙였다. 전시는 2월 28일까지.
이은주 문화선임기자 ju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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