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금치값 조금이라도 깎고 싶은데 말이 안 나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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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3시를 조금 넘겨서 해(日)도 안 빠진 시간인데, 주인으로 보이는 아저씨는 좌판을 걷고 있다.
"조금이라도 깎고 싶은데, 추위에 벌벌 떨고 계신 걸 보니 목구멍에서 말이 안 나오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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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희 기자]
▲ 날이 풀렸는데도 볕이 잘 들지 않는 시장 골목길에는 긴 칼날 같은 고드름이 무섭게 매달려 있다. |
ⓒ 박진희 |
대한을 얼게 한다던 소한 추위가 사나흘 기승을 부렸다. 코로나19로 집에서 할 일을 찾아가며 생활하는 건 도가 텄다 싶었건만, 폭설까지 더해져 옴짝달싹을 못 하고 갇혀 지내자니 좀이 쑤셔댔다.
▲ 한파로 눈이 쌓였다가 푹해진 날씨에 녹으면서 시장 바닥은 질퍽여 보행에 지장이 많았다. |
ⓒ 박진희 |
지난 11일 주말보다는 날이 풀린 데다 '더는 갑갑해서 못 살겠다' 아우성을 치다 외출을 감행했다. 큰맘 먹고 나선 곳은 충남 공주시 오일장이 서는 장터. 에너지 충전소라도 되는 양 우울할 때나 기분이 처칠 때 장에만 갔다 오면 이상하게 만병통치약을 처방받은 듯 활력이 샘솟는다.
▲ 수분이 많은 채소는 날씨가 냉해지면 얼기 때문에 상인들은 비닐로 덮어 피해를 줄이고자 한다. |
ⓒ 박진희 |
▲ 좌판의 깐 마늘, 알밤 등도 날이 추울 때는 비닐을 덮어 피해를 최소화해야 한다. |
ⓒ 박진희 |
군데군데 낯익은 상인들이 안 보였다. 궁금하여 물어보니,
"날이 푹해졌다고는 해도 과일하고 채소는 이 추위에 금세 얼어버리니 안 나오쥬."
▲ 소분한 나물을 파는 상인은 이동식 난로를 개조해 고구마도 굽고, 따뜻한 차 한 잔을 끓을 수 있게 주전자도 올려 추위를 피하고 있었다. |
ⓒ 박진희 |
시원하게 답을 해준 나물 장수 아주머니는 차디찬 손을 비벼가며 난롯불을 다시 쬐기 시작한다. 사방이 트여 칼바람이 흩날리는 장 바닥에 굽 낮은 플라스틱 의자 하나 놓고 앉아 언 몸을 녹인다.
깡통을 뒤집어 얹힌 난로 위에서 미끈하게 잘생긴 고구마가 익어간다. 이웃 상인들과 나눠 마실 노란 주전자 속 커피물도 끓어 간다. 시장에선 어느 때보다 불조심이 강조되는 시기지만, 이마저도 못 쓰게 한다면 너무도 가혹한 처사가 아닐까 싶다.
▲ 일찌감치 가스난로를 끈 상인은 해가 기울기도 전에 파장 준비를 마쳤다. |
ⓒ 박진희 |
자리를 이동해 얼마를 걸어가니 나물 장수 아주머니네 난로와 얼추 비슷한 게 보인다. 오후 3시를 조금 넘겨서 해(日)도 안 빠진 시간인데, 주인으로 보이는 아저씨는 좌판을 걷고 있다. 꺼진 난로 덕에 확신이 들자,
"벌써 가시게요?"
물으니, 갖고 온 건 다 팔았단다.
"뭐 파셨는데요?"
"귤유."
▲ 바닥을 드러낸 빈 콩나물통을 보니 추위에도 장에 나온 할머님이 밑지는 장사를 하지 않은 듯하여 맘이 놓였다. |
ⓒ 박진희 |
늘상 마지막으로 들르는 골목에 들어섰다. 이곳도 이번 장날은 거르는 상인들이 족히 절반은 돼 보였다. 큰 이문이야 남겠냐마는 동장군 맹위에도 굴하지 않고 좌판을 벌인 분들은 들고 온 장사 보따리는 한결 줄여서 집으로 돌아갈테니 참! 다행이다.
상인들 이런저런 사정 헤아리기는 추위에 장 보러 나온 다른 손님들도 매한가지였다.
"조금이라도 깎고 싶은데, 추위에 벌벌 떨고 계신 걸 보니 목구멍에서 말이 안 나오네요."
시금치 몇 줌을 검은 봉지에 담고 계산을 하며, 젊은 손님이 농담 반 진담 반 우스갯소리를 던지더니 자리를 뜬다.
신년을 맞아 처음으로 장 구경을 하고 왔다. 춥다고 이불 속에만 웅크리고 있었더라면 천금을 주고도 얻지 못할 삶의 지혜와 용기를 덤처럼 품에다 꾹꾹 담아 왔다. 한 며칠은 펄펄 날아다닐 수 있는 나만의 비밀 처방전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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