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외 출산은 죄악"..아일랜드서 소리없이 숨진 9000명의 사생아들
76년간 어린이 9000여명 시설서 사망
학대와 방치 속 강제 입양, 백신 시험도
마틴 총리, 공식 사과와 배상 약속
2014년 아일랜드 서부 골웨이주 투암의 한 미혼모 시설 터에서 어린이 800여명이 묘비도 관도 없이 집단 매장돼 있었던 사실이 세상에 드러났다. 이 지역 역사학자 캐서린 콜린스가 보호소 아동 796명의 사망진단서를 확인한 뒤 사건을 추적하던 중 발견한 것이다.
충격적인 사건을 계기로 아일랜드 정부는 진상조사위원회를 꾸렸고, 그 결과가 6년 만에 약 3000페이지 분량의 보고서로 공개됐다.
12일(현지시간) BBC, CNN 등의 보도에 따르면 조사 결과 1922년~1998년 사이 아일랜드의 미혼모 시설 18곳에서 학대와 방치 속에 9000여명의 어린이와 영아가 목숨을 잃은 것으로 나타났다. 시설을 거쳐 간 어린이 7명 중 1명꼴이다.
당시 아일랜드 사회는 혼외 임신을 한 12세 소녀부터 40대 여성을 가톨릭 교회가 운영하는 18개의 시설에서 수용했다. 미혼 임신을 죄악시하는 보수적인 가톨릭 문화에 따른 것이다.
사회와 단절된 채 약 5만7000명의 아기가 시설에서 태어났다. CNN에 따르면 1960년 이전에는 이들 시설의 위생이 열악하고 영양 공급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출산아들의 생존률 자체도 희박했다고 한다. 미혼모 사망 원인의 절반 이상도 출산으로 인한 것이었다고 보고서는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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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지었으니 고통받아야" 정서적 학대도
산모의 뜻에 반한 강제 입양도 빈번히 이뤄졌다. 1638명의 사생아가 보호 장치 없이 미국 등지로 해외 입양된 것으로 파악됐다.
아일랜드의 강제 입양 실태를 다룬 영화 『필로미나의 기적』(2014년 개봉)의 실존 인물인 필로미나 리는 성명을 내고 "저와 제 사랑하는 아들 앤서니와 같은 수만 명의 어머니와 아이들은 강제로 찢겨졌다"며 "아이들이 태어난 순간에 우리가 미혼이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과거 미혼모 시설에 있었던 한 여성은 수녀들에게 당한 정서적 학대도 고발했다. 아기를 낳을 당시 진통이 심해 의료진을 찾았는데 수녀들은 "죄를 지었으니 고통을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필로미나도 "시설에서 힘든 노동을 하는 동안 수녀들에게 조롱당했고, 그런 고통은 난잡함에 대한 처벌로 간주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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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생아에 홍역 등 백신 시험" 진상규명 촉구
생존자들에게도 깊은 상처가 남았다. 진상 조사를 촉발한 투암 시설에서 1949년 태어나 다섯살 때 입양된 위니플레드 캐멀 라킨은 "독일에 홀로코스트가 있었듯, 미혼모 시설은 우리에게 홀로코스트였다"고 회고했다. 그는 "엄마의 사진을 본 적도, 엄마가 어디에 묻혔는지도 모른다"면서 "인간이 아기와 엄마를 그런 식으로 다룰 수 있다는 사실은 매우 충격적이었다"고 했다.
생존자들은 사생아에게 이뤄진 홍역, 소아마비, 풍진 등 백신 시험 사건에 대한 진상 규명도 촉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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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일랜드 총리 "사회 모두가 연루됐다"
아일랜드 정부는 "숨 막히고 억압적이고 잔인한 여성혐오적 문화가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며 책임을 인정했다. 정부 차원의 사과와 함께 학대를 겪은 생존자에 대한 보상, 유골 발굴도 추진하기로 했다.
미하일 마틴 총리는 "모든 사회가 연루된 사건"이라며 "우리 사회는 성에 대해 뒤틀린 태도를 가졌고 비뚤어진 종교적 도덕성으로 여성과 아이들을 해롭게 통제했다"고 말했다. 마틴 총리는 13일 정부 차원의 공식 사과를 할 예정이다.
아일랜드 가톨릭 교회도 반성의 메시지를 냈다. 가톨릭 대주교 이몬 마틴은 "사람을 낙인찍고 평가하고 배제하는 문화가 교회 안에 있었다"며 "피해자들이 입은 상처와 감정적 고통에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정은혜 기자 jeong.eunhye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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