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인이 계기 '아동학대' 전수조사 나선 서울시..숫자만 넘긴 이유는
서울시가 ‘정인이 사건’을 계기로 아동학대에 대한 긴급 전수조사에 나섰지만 초기부터 실효성 논란에 휩싸였다. 전문가들은 “서울시의 철저한 사전 실태조사와 각 구청의 전문인력 확충이 선행돼야만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한다.
서울시는 13일 “아동학대 고위험 아동 3만5000명에 대한 전수조사를 오는 3월까지 실시한다”고 밝혔다. 조사 대상은 최근 3년간 두 차례 이상 학대 의심이 신고된 아동 658명과 보호 아동 위기발굴을 위해 만든 'e아동행복시스템'을 통해 방임됐을 가능성이 높은 아동 3만4607명이다. 학교에 갈 나이가 됐는데도 학교에 가지 않거나, 필수 예방접종을 하지 않은 아이 등의 정보가 e아동행복시스템에 담겨있다.
2018년에 만들어진 e아동행복시스템은 경기도 평택에 살던 '원영이' 사건이 계기가 됐다. “대소변을 못 가린다”는 이유로 부모로부터 학대를 받다가 2016년 2월 만 7세였던 원영이가 숨진 사건이다. 정부는 당시 원영이 사건에 국민적인 공분이 일자 새로운 시스템을 만들었다. 약 19억7000만원을 들여 구축된 e아동행복시스템의 출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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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수조사 '촘촘하게 한다'는데
서울시 관계자는 “정인이 사건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높은 데다, 혹시 있을 아동학대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촘촘하게 살펴보겠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지난해 10월에도 경찰과 구청이 함께 112에 신고된 아동 94명을 대상으로 조사했지만, 아동학대가 적발되지는 않았다”고 했다.
이 때문에 서울시가 밝힌 '촘촘한 3년 치 전수조사'가 의욕만큼이나 얼마나 실효성이 있을지는 미지수라는 반응이 나온다. 이번에 서울시가 각 구청에 내려보낸 명단 역시 사회보장정보원이 e아동행복시스템에서 추출한 아동의 숫자만 넘겨받아 전달한 수준이어서다. 전문가들은 “실제 3만5000명 중 위험도가 높은 사례나 규모 등을 서울시가 먼저 파악을 했어야 했다”라고 지적한다.
이에 대해 서울시 측은 “e아동행복시스템을 통해 서울시가 전달받은 것은 전체 숫자로, 자치구로 정보가 내려가면 세부 내용이 가는지 모른다. 정보를 직접 볼 권한이 없다”고 말했다. 위험도에 따라 먼저 조사할 아이들을 분류하고 각 구청으로 내려보내는 것이 아니라 전체 숫자만 전달받아 그대로 구청으로 내려보냈다는 의미다.
나아가 이는 “전수조사” 의지를 밝힌 서울시가 정작 전체 아동에 대한 실태는 파악하지 못한 채 각 구청에 모든 조사 업무를 맡긴 격이됐다는 뜻도 된다. 서울시 관계자는 “이달 중으로 계획을 세워 구청에 조사할 아이들 명단을 내려보낼 예정”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또 있다. 서울시 설명대로라면 두 차례 이상 아동학대 의심신고가 들어온 아동 658명에 대한 조사는 고스란히 각 구청의 아동학대 전담공무원의 몫이 된다는 점이다. 조사 기간도 오는 3월까지로 촉박하지만 현재 서울 25개 구에 배치된 아동학대 전담공무원은 62명 수준이다. 이에 대해 서울시는 “상반기 중으로 10명을 늘려 2인 1조 조사 체계가 가능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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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간 '한명이 전담'…'아동학대대응팀' 만든다
서울시는 내부적으로 아동학대대응팀도 만들기로 했다. 그동안 한 명이 담당하던 서울시 업무를 아동학대 대책 수립, 쉼터 관리 등을 담당할 팀으로 새로 만든다는 게 골자다. 아울러 서울시는 민간 위탁해왔던 7개 아동보호전문기관을 단계적으로 직영 전환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법무부에서 여성아동인권과장을 지낸 김영주 변호사(법무법인 지향)는 “전수조사를 통해 한명의 아이라도 구해낸다면 좋겠지만 정작 필요한 것은 e아동행복시스템 등이 어떻게 기능하는지를 분석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김 변호사는 또 “정보상으로만 봤을 때 정인이 사건이 이 시스템을 통해 걸러졌을까 의심스럽다”며 “아동학대 전담 공무원을 현장에 투입할 때 누구를 우선적으로 살펴볼지 무엇이 필요한지 등을 짚어줄 진짜 시스템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김현예 기자 hy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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