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룽의 선경은 인간의 마음에도 신선을 내린다

김대오 입력 2021. 1. 13.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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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촨여행 ②] 눈 속에 만난 황룽의 아우라

이 글은 지난 2020년 1월 5일~10일(5박 6일) 중국 쓰촨 여행을 다녀온 기록입니다. <기자말>

[김대오 기자]

청두에서 황룽(黃龍)까지 370km, 버스로 5시간 정도 달려야 한다. 거리보다 신경이 쓰이는 것은 해발 고도다. 청두 시내 고도는 평균 500m인데 황룽은 3553m다. 고산병 약을 챙기긴 했지만 몸이 잘 견뎌줄지 장담할 수 없다.

새벽녘 청두를 벗어난 버스는 북쪽으로 향한다. 꽃은 사라지고 양옆으로 험준한 산줄기가 이어진다. 치수에 성공해 하나라를 세웠다는 대우(大禹)의 동상이 창밖으로 지나간다. 우(禹)는 도마뱀, 용의 상형자인데 13년간 치수에 힘쓰느라 집 앞을 세 번 지나면서도 들어가지 않고 치수에만 전념했다고 한다. 그런데 왜 이곳에 대우의 동상이 있는 걸까.
 
▲ 대우(大禹) 동상 황룽 가는 길목에 왜 대우의 동상이 있을까?
ⓒ 김대오
 
대우의 아버지 곤(鯀)이 치수에 실패하자 요임금이 책임을 물어 그를 산에 가둬 죽게 했는데 그곳이 바로 황룽풍경구라는 거다. 곤은 산에서 득도하여 황룡진인(黃龍眞人)이 되었으며 이후 거대한 황룡으로 변해 민강을 거슬러 오르며 아들의 치수를 돕고, 마지막으로 황룽풍경구를 통해 승천했다는 전설이 있다고 한다.

창밖으로 차마고도(茶馬古道)가 한참을 우리 일행의 버스를 따른다. 가이드는 쓰촨 차마고도가 막 개발되어 관광객을 맞이할 즈음인 2008년, 쓰촨 대지진으로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되었다며 안타까워한다.

잠시 정차한 휴게소에는 흰 야크 두 마리가 관광객을 등 위에 태우며 영업 중이다. 옥수수, 사과, 견과류를 팔고 있는 아주머니에게 '촉서(蜀黍)'라는 말을 아느냐고 물었더니 자기는 모른다고 한다. '촉나라의 기장'이라는 뜻의 촉서의 중국어 발음 '수수(shǔshǔ)'가 전해져서 우리말의 수수와 옥수수가 되는데 확인할 길이 없어 아쉽다. 
▲ 야크와 함께 해발 고도가 높아지면서 일행의 절반은 고산병 증세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 김대오
 
버스가 쑹판고성(宋板古城)을 지나자 당 태종의 후궁이던 문성공주가 토번, 지금의 티베트로 시집가서 한족의 문명을 전해주었다는 가이드의 이야기가 이어진다. 차창 밖 거대한 광고판은 이에 맞장구라도 치듯이 "티베트족, 강족, 회족, 한족은 한 가족이다(藏羌回漢一家親)"고 적혀 있다. 저런 거창한 구호가 필요 없어져야 정말 친한 가족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창밖으로 또 대장정(1934.10~1935.10)을 기념하는 깃발과 탑이 지난다. 국민당군의 총공세에 오지와 첩첩산중으로 숨을 수밖에 없었던 홍군 제1방면군이 제4방면군과 합류를 시도하다가 저지당하며 많은 희생을 치렀던 곳이다.

버스는 식당으로 향한다. 점심을 먹고 최근에 개통했다는 8km에 달하는 긴 터널을 통과하자 드디어 황룽풍경구에 이른다. 100위안(1만7000원 정도)에 구입한 액체 산소를 들고 등반을 시작하려는데 일행의 절반 정도는 벌써 고산병 증세가 심해 산행을 포기하고 근처 찻집으로 향한다.

조금만 걸어도 금방 숨이 가빠 온다. 고목이 우거진 산길을 오르자 5588m 설보산의 눈이 녹아 계곡의 석회지형과 만나면서 길이 3.6km, 폭 30~70m 계곡에 3700여 개의 용의 비늘 같은 비취빛 연못을 이루고 있는, 터키의 파묵칼레와 쌍벽을 이루는 세계 최대의 카르스트 연못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그러나 지금까지 사진에서 봤던 모습이 아닌 모두 눈과 얼음에 덮인 설경이다. 아쉽지만 이 또한 황룽의 소중한 일면이리라. 얼어 있는 얼음에서 푸른빛이 나는 것으로 원래의 물빛을 짐작한다. 
 
▲ 황룽 분경지 분경지(盆景池)의 맑은 물과 숲의 대화도 두꺼운 얼음 속에 겨울잠을 자고 있다.
ⓒ 김대오
 
손님을 맞이한다는 영빈지(迎賓池)의 폭포는 빙벽을 이뤘고, 분재처럼 나무를 업고 선 호수라는 분경지(盆景池)의 맑은 물과 숲의 대화도 두꺼운 얼음 속에 겨울잠을 자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분경지를 지나자 굵은 눈송이가 거센 바람과 함께 휘몰아치기 시작한다. 더 올라가야 하나, 돌아가야 하나 잠시 망설여진다.
일단 가보자 마음먹고 앞이 보이지 않는 눈길을 헤쳐 나가니 중사(中寺)라는 사원이 나온다. 바로 우왕의 아버지 황룡진인을 모신 사당이다. 좀 더 오르자 드디어 비췻빛 물색이 살아 있는 오채지(五彩池) 연못이 엄동의 한파에도 얼지 않고 영롱한 모습을 드러낸다.
 
▲ 오채지 비취빛 물색이 살아 있는 오채지(五彩池) 연못이 엄동의 한파에도 얼지 않고 영롱한 모습을 드러낸다.
ⓒ 김대오
▲ 오채지의 풍경 봄이 오면 모든 생명은 다시 소생할 것이고, 물은 다시 원래의 빛으로 깨어나 생명의 윤회를 완성하리라.
ⓒ 김대오
 
석회질이 응고된 빛깔이 누런빛이고 구불구불 계곡의 물줄기가 용처럼 생겨 얻은 이름 황룡, 오채지는 바로 그 황룡의 눈이다. 화룡점정의 그 눈은 에메랄드빛으로 지금까지의 숨 가쁨, 눈보라와의 힘든 여정을 일거에 날려버리고도 남을 아우라를 지녔다.

아름다움은 쉽게 그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가장 높고 험한 곳에 서식하며, 가장 궂은날에도 흔들림 없는 절경의 자태를 유유히 드러낸다. 저 맑은 물에 무엇을 비춰야 하나. 마음의 한 자락을 깊게 담가 저 비취빛이 삼투되도록 할 수만 있다면. 자연이 이룬 선경은 인간의 마음에도 신선을 내린다.

내리막길에 다시 결빙과 고요 아래 잠든 무수한 생명들을 마주한다. 햇살에 투명한 물빛을 뽐내는 대신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눈 속에, 얼음 속에 빛을 감추고 있는 도광양회(韜光養晦)의 모습을 묵도한다. 봄이 오면 모든 생명은 다시 소생할 것이고, 물은 다시 원래의 빛으로 깨어나 생명의 윤회를 완성하리라. 눈이 그치고 우뚝 솟은 산에 석양이 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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