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장' 김희진이 살아야 기업은행이 산다

양형석 2021. 1. 13. 0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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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배구] 12일 현대건설전 블로킹 4개 포함 17득점 활약, 기업은행 3위 사수

[양형석 기자]

기업은행이 현대건설과의 천적관계를 유지하며 3위 자리를 지켰다.

김우재 감독이 이끄는 IBK기업은행 알토스는 12일 수원체육관에서 열린 도드람 2020-2021 V리그 여자부 4라운드 현대건설 힐스테이트와의 원정경기에서 세트스코어 3-2(17-25,25-20,24-26,25-18,25-10)로 승리했다. 이번 시즌 현대건설과 4차례 맞대결에서 단 한 번의 패배도 허락하지 않은 기업은행은 이날도 풀세트 승리로 승점 2점을 보태며 4위 KGC인삼공사와의 승점 차이를 3점으로 벌렸다(승점 26점).

기업은행은 외국인 선수 안나 라자레바가 46.47%의 공격점유율을 책임지며 34득점을 올렸고 무릎이 좋지 않아 결장한 표승주 대신 리시브를 책임진 김주향도 41.3%의 리시브 효율과 함께 11득점을 기록했다. 하지만 기업은행이 좋은 경기를 펼치기 위해서는 역시 이 선수의 득점력이 살아나야 한다. 이날 블로킹 4개와 함께 50%의 공격 성공률로 17득점을 기록하며 이름값을 톡톡히 한 기업은행의 간판선수이자 주장 김희진이 그 주인공이다.

센터와 라이트를 수시로 오간 김희진의 이중생활(?)
 
 국가대표 주전 라이트 김희진은 기업은행에서는 주로 센터로 활약한다.
ⓒ 한국배구연맹
 
물론 문정원(한국도로공사 하이패스) 같은 독특한 케이스도 있지만 배구 경기에서 아포짓 스파이커(오른쪽 공격수)는 서브리시브를 면제 받고 공격에만 전념하는 경우가 많다. V리그 여자부를 대표하는 '기록제조기'이자 온갖 공격 관련 기록을 가지고 있는 '꽃사슴' 황연주(현대건설)가 국내 오른쪽 공격수를 대표하는 선수다. 이번 시즌 헬렌 루소(현대건설)를 제외한 각 구단에서 활약하고 있는 모든 외국인 선수들도 마찬가지.

중앙여고 시절부터 여자배구의 미래를 이끌어갈 유망주로 주목 받았던 김희진은 2010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신생구단 기업은행의 지명을 받았다. 하지만 당시 기업은행을 이끌었던 이정철 감독(SBS 스포츠 해설위원)이 김희진에게 맡긴 포지션은 오른쪽 공격수가 아닌 센터였다. 기업은행의 오른쪽에는 공격력이 좋은 외국인 선수를 둘 수 있었기 때문에 신장(185cm)이 좋은 김희진에게 중앙을 맡기면서 팀 전력을 극대화한 것이다.

그 때부터 김희진의 외로운 이중생활(?)이 시작됐다. V리그에서 루키 시즌을 보낸 김희진은 뛰어난 기량을 인정 받아 대표팀에 선발돼 런던 올림픽에 출전했다. 그리고 런던 올림픽에서 여자배구 대표팀을 이끈 김형실 감독은 김희진을 센터가 아닌 오른쪽 공격수로 활용했다. 대표팀에서는 양효진(현대건설)과 정대영(도로공사)이 버틴 센터 포지션보다는 177cm의 황연주가 지키는 오른쪽의 신장이 상대적으로 떨어졌기 때문이다.

배유나(도로공사)가 중앙공격수로 자리 잡은 것처럼 멀티 포지션을 소화하던 선수도 연차가 쌓이면 적성에 맞는 포지션에 정착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김희진은 중견선수가 될 때까지 소속팀과 대표팀을 오가며 두 집 살림(?)을 소화하고 있다. 센터로 활약한 소속팀에서는 3번의 우승과 함께 기업은행을 6연속 챔프전으로 이끌었고 라이트로 활약한 대표팀에서도 런던올림픽 4강, 리우올림픽 8강, 인천아시안게임 금메달의 주역으로 활약했다.

물론 김희진에게도 포지션 정착의 기회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2016-2017시즌과 2017-2018 시즌 기업은행의 외국인 선수로 윙스파이커 메디슨 리셀이 활약하게 되면서 김희진도 방황(?)을 끝내고 풀타임 라이트로 활약할 기회가 생겼다. 하지만 이정철 감독은 센터진의 무게감이 약해지는 선택 대신 오른쪽에 서브와 파이팅이 좋은 김미연(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을 배치하는 결정을 내렸다.

김희진이 살아나면 동료들도 덩달아 활약
 
 리그에서 가장 힘이 좋은 토종 선수인 김희진이 살아나면 기업은행의 동료들도 덩달아 힘을 낼 수 있다.
ⓒ 한국배구연맹
 
만약 김희진이 센터 포지션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했다면 이정철 감독은 진작에 김희진의 포지션 변화를 모색했을 것이다. 김희진 역시 오른쪽 공격수에 대한 애정이 더욱 강했다면 FA자격을 얻을 때마다 타 팀 이적을 심각하게 고려했을 것이다. 하지만 김희진은 센터로 활약하며 매 시즌 속공과 블로킹, 그리고 서브 부문에서 상위권에 오르며 기업은행을 6시즌 연속 챔프전으로 이끌었다.

기업은행은 박정아(도로공사) 이적 후 공격력이 크게 떨어졌지만 김희진이 2017-2018 시즌 425득점, 2018-2019 시즌 440득점을 올리며 박정아의 공백을 최소화했다. 이 기간 동안 김희진은 팀의 공격력 약화를 최소화하기 위해 센터는 물론 라이트 포지션도 소화하며 고군분투했다. 기업은행 팬들이 팀을 위한 희생을 마다하지 않은 김희진에 대한 애정이 남다를 수밖에 없는 이유다.

2019-2020 시즌 종아리 부상으로 9경기에 결장한 김희진은 18경기에서 203득점을 올리는데 그치며 부진한 시즌을 보냈다. 하지만 기업은행은 김희진이 가진 상징성을 잊지 않았고 FA자격을 얻은 김희진과 연봉 5억 원에 계약을 체결했다. 하지만 김희진은 12일 현대건설과의 경기 전까지 이번 시즌 경기당 평균 7득점을 올리는데 그쳤다. 아무리 발목이 좋지 않다고 하지만 간판스타의 부진은 기업은행의 전력약화로 이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부진을 이어가던 김희진은 12일 현대건설전에서 오랜만에 리그 최고의 '파워형 센터'다운 면모를 뽐냈다. 김희진은 단 15.29%의 공격점유율을 기록하고도 50%의 높은 성공률로 17득점을 올렸다. 장기인 이동공격은 두 차례 시도해 한 번도 성공을 못했지만 오픈공격(58.33%)과 속공(50%), 퀵오픈(66.7%) 등 다양한 유형의 공격으로 득점을 올렸다. 무엇보다 잃었던 자신감을 회복해 김희진 특유의 파워를 선보인 게 가장 고무적이었다.

옵션 5000만 원을 포함해 이번 시즌 연봉 총액이 5억 원에 달하는 김희진은 리그 전체에서 양효진과 이재영, 박정아 다음으로 많은 연봉을 받는다. 물론 지금도 썩 좋지 않은 몸 상태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팀의 주장이자 고액연봉 선수로서 더욱 적극적이고 많은 활약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주장 김희진이 살아나야 기업은행의 나머지 선수들도 함께 살아난다는 사실은 현대건설전을 통해 충분히 증명됐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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