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고 100억 지원했더니 의대로..이걸 방송서 띄운 '유퀴즈'
예능 프로그램에 의과대학 여러 곳에 합격한 과학고 졸업생이 등장해 논란이 일고 있다. 의대 진학을 위한 코스 중 하나로 전락한 과학고·영재학교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다시 힘을 얻고 있다.
12일 사교육걱정없는세상(사걱세) 등 4개 시민단체와 강득구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기자회견을 열고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영재학교인 경기과학고를 졸업한 학생이 6곳의 의대에 합격한 이야기를 다루었다"며 "혈세 낭비와 다른 학생의 교육 기회 박탈을 막기 위해 의약학계열 지원 제한을 의무화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앞서 6일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은 서울대 의대 재학생 A씨를 출연시켰다. 경기과학고를 졸업한 A씨는 방송에서 서울대와 함께 고려대·연세대·성균관대·한양대·경희대 의대에 합격했다고 밝혔다.
경기과학고는 영재교육진흥법에 따라 설립된 과학영재학교(영재학교)다. 전국 8곳인 영재학교는 일반 고교와 달리 무학년 학점제로 운영되고 교과 편성이 자유롭다. 많게는 100억 원대의 지원을 받는 곳도 있고 박사급 이상의 전문가를 교원으로 채용할 수 있다.
방송 후 '이공계 인재 양성'이라는 영재학교 설립 취지에 어긋나는 사례를 소개했다는 시청자 비판이 이어지자 제작진은 “무지함으로 시청자분들께 큰 실망을 드렸다"며 사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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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공계 인재 양성' 목표인데…졸업생 5명 중 1명 의대
영재학교는 매년 많은 의대 신입생을 배출하고 있다. 지난해 한국교육개발원(KEDI)이 펴낸 '영재학교 졸업생의 대학 진학과 그 후' 보고서에 따르면 조사 대상 영재학교 졸업생 337명 가운데 19.3%(65명)가 의학계열에 진학했다. 졸업생 5명 중 1명꼴이다.
예산과 우수 교사 배치 등 혜택을 받는 영재학교에 대한 비판은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현재 영재학교에 지원하는 교육비는 학생 1명당 연간 약 500만원 수준이다. 일반 고등학생의 연간 교육비 총액 158만2000원의 3배가 넘는 셈이다. 특히 전국 8개 영재학교 신입생의 68.5%가 서울과 경기 지역 출신이라 쏠림이 심각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의대 진학에 대한 비판이 이어지면서 영재학교도 대책을 내놨다. 2019년 서울과학고는 재학생이 의학계열 대학에 지원하면 3년 동안 지원한 교육비를 환수한다고 밝혔다. 의대 진학을 원하는 학생에게는 일반고 전학을 권고하고 있다.
서울과학고는 이에 앞서 학생들에게 의대에 가지 않겠다는 서약서를 받고, 의대에 진학하면 장학금을 회수해왔다. 대학에 지원할 때 낼 교사 추천서를 써주지 않기도 했지만, 이후에도 의대 진학률은 낮아지지 않았다. 다른 과학고도 입학 전형 유의사항에 '의약학 계열 대학으로 진학을 희망하는 학생은 본교 지원에 적합하지 않다'는 문구가 들어가 있지만 실질적인 제재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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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비 환수 두려워 의대 안가겠나" 대책 실효성 없어
입시 업계에서는 영재학교가 내놓은 대책의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분석이 나온다. 학생부종합전형(학종)에 추천서를 반영하는 대학이 줄어든데다 2022년부터는 아예 반영할 수 없기 때문이다. 또 영재학교 졸업생이 의대 진학시 주로 지원하는 전형이 과학·수학 특기자이기 때문에 추천서의 영향력은 미미하다.
익명을 요구한 입시 업계 관계자는 "소위 '영재학교-의대' 코스를 태운 부모가 교육비를 환수당할까 봐 의대를 안 보내겠냐"면서 "그나마도 졸업하고 재수해서 의대를 가면 토해낼 필요도 없어 큰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기초의학 연구에 기여할 수 있기 때문에 영재학교 졸업생의 의대 진학을 제한하면 안 된다는 반론도 있다. 하지만 2013년 이진석 서울대 의대 교수팀 연구에 따르면 전국 의대·의학전문대학원 재학생 1만2709명 가운데 병리과·예방의학·기초의학 등을 선택한 학생은 약 2%에 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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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대 입시제도 바꿔야"…특기자 전형 축소 주장도
과학고 졸업생의 의대 진학을 줄이려면 대학에 제한을 가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사걱세는 "영재학교 출신 신입생 비율이 높은 의대에 예산지원을 줄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특기자 전형 축소도 대책으로 꼽힌다. 명문대 진학 코스였던 외국어고는 대입에서 영어 특기자 전형이 대거 폐지 되면서 인기가 떨어졌다. 같은 방식으로 의대의 특기자 선발 전형도 줄여야 한다는 지적이다.
교육부는 2019년 '대입 공정성 개선방안'을 발표하면서 각 대학의 특기자 전형 축소·폐지를 유도 하겠다고 밝혔다. 이만기 유웨이 교육평가연구소장은 "영재학교 출신을 무조건 못 뽑게 하면 법적 근거가 없어 문제가 있다"며 "특기자 정원을 줄이면 영재학교의 높은 의대 진학률을 자연스럽게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남궁민 기자 namgung.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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