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사초롱] 전례의 나라

2021. 1. 13. 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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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유승 (단국대 연구교수·동양학연구원)


선조 임금이 말했다. “우리나라는 전례를 인용하기 좋아하는 나라다.” 영조와 정조도 말했다. “우리나라는 전례의 나라다.” 나랏일을 전례에 따라 결정하는 관습을 지적한 말이다. 신하가 재가를 요청하면 국왕의 대답은 늘 이렇다. “전례대로 하라.”

의사결정 과정에서 반드시 전례를 참고하므로 전례를 조사하는 일은 관원의 중요한 업무였다. 조선이 기록물을 중시한 이유가 이것이다. 먼저 관청별로 모아놓은 문서철 ‘등록(謄錄)’을 확인한다. 여기에 없으면 지금의 대통령기록물에 해당하는 ‘승정원일기’를 찾아본다. 여기도 없으면 실록을 찾아본다. 실록은 아무나 볼 수 없으니 반드시 사관을 보내야 한다. 번거롭기 짝이 없다. 그래도 없으면 중국의 전례를 참고한다. 중국은 땅이 넓고 사람이 많아 별의별 일이 있으니 어지간하면 참고할 만한 전례를 찾을 수 있다. 딱 맞는 전례가 없으면 비슷한 전례라도 찾아야 한다.

왜 이렇게 전례를 고집했는가. 조선의 국가 운영은 기본적으로 법에 의존했다. 하지만 추상적이고 단순한 법으로 현실의 복잡다단한 문제를 전부 해결하는 건 불가능하다. 방대하고 상세한 법 체계를 갖춘 오늘날의 법치국가에서조차 전례를 중시하는 이유다. 판결의 전례인 판례는 말할 것도 없고, 사회적 관습도 무시할 수 없다. 부조리한 행위라도 관행으로 굳어지면 함부로 처벌하지 못한다. 오늘날도 이 모양인데 조선시대에 전례를 중시한 건 당연하다.

전례를 따르는 이점은 분명 존재한다. 난처한 사안도 전례가 있으면 결정하기 쉽다. 불필요한 논쟁도 피할 수 있다. 외교 현장에서는 그럴듯한 변명거리가 되기도 했다. 중국과 일본의 무리한 요구를 ‘전례가 없다’는 핑계로 거부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문제는 전례가 없거나, 있어도 따를 수 없는 상황이 반드시 생긴다는 점이다. 전례를 따를 수 없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결정을 내리지 못한다. 일단 전례를 벗어난 결정을 내리면 그것이 또 전례가 돼 두고두고 폐단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이번 한 번만 시행하고 전례로 삼지는 말라”는 기묘한 명령을 내리곤 했다. 하지만 그것이 또 전례가 돼 ‘이번 한 번만’을 남발한다. 전례를 벗어난 결정을 내리기가 어려울 수밖에.

유몽인은 말했다. “나라의 풍속이 전례를 고수하고 법관도 옛법을 그대로 따르니 입에서 말을 꺼내자마자 저지당하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고, 중론을 거스르며 단독으로 결정할 방법이 없다.” 전례를 중시하는 사회에서는 새로운 것을 시도하기 어렵다. 독창적인 아이디어가 사장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전례를 고집하는 사회는 변화에 취약하다.

21세기 대한민국 역시 전례의 나라다. 공무원과 일을 하다보면 절실히 깨닫는다. 뭔가 새로운 제안을 가져가면 전례가 없다며 난처해한다. 제안의 타당성과는 무관하다. 그 제안이 옳다는 건 나도 알고 그도 안다. 그래도 결정하지 못하고 우물쭈물한다. 이런저런 이유로 안 된다고 하면 그래도 수긍이 간다. 하지만 전례가 없어 안 된다니! 만에 하나 잘못되면 책임을 물을까봐 겁이 나는 모양이다. 이해한다. 공무원을 탓할 일이 아니다. 정부부터가 ‘전례가 없다’는 변명을 자주 써먹지 않는가. 합리적 이유가 없어도 거부할 수 있는 마법의 주문이다.

변화가 느린 사회에서는 전례를 고집하는 것도 나름 타당하다. 그것이 안전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하루가 다르게 바뀌는 세상이다. 앞으로는 지금보다 더한 전례 없는 위기도 맞닥뜨릴 것이고, 그에 대응해 전례 없는 신기술도 등장할 것이다. 전례 없는 상황은 갈수록 잦아지는데, 전례를 고집하는 관습은 좀처럼 바뀔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안 하던 짓을 하면 가족조차 말리기에 바쁘다. 우리는 여전히 전례의 나라에서 살고 있다.

장유승 (단국대 연구교수·동양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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