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호의 시시각각] 좁은 인재풀에 갇힌 대통령

김동호 입력 2021. 1. 13. 00:37 수정 2021. 1. 13. 0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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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의 대변자' 김광두마저 떠나자
대통령 주변에는 내부자들만 남아
실패한 참모부터 바꿔야 실책 만회
김동호 논설위원

문재인 대통령의 철벽 지지율 추락은 시간문제였다. 최저임금부터 부동산·탈원전·검찰·외교·북핵까지 손대는 일마다 파열음을 냈다. 민심은 등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그 패착의 핵심을 하나만 꼽자면 인사 실패다. 우리 편이 아니면 다 적폐로 몰아 인재를 고루 등용하지 못한 대가다. 인사가 왜 중요한지는 세상을 살아 보면 누구나 상식적으로 그 이치를 알 수 있다. 특히 무한경쟁이 펼쳐지는 민간기업은 어떤가. 능력과 수완이 검증된 사람이 중책에 기용되고, 성과가 없으면 바로 자리를 내놓아야 한다. 그래야 회사가 살고 그 구성원이 생존할 수 있다.

이런 점에 비춰 보면 문 대통령의 용인술은 민간기업에선 있을 수 없다. 문 대통령은 4년 가까이 극소수 인재풀을 활용해 회전문 인사를 했다. 세상을 좁게 보고 집단사고에 빠질 수밖에 없다. 야당의 동의 없이 강행한 장관급 임명이 26차례에 달한다. 이런 정부에선 다양한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다. 김광두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이 ‘악마의 대변자’ 역할을 했지만, 투명인간 취급을 당하자 문 대통령 곁을 떠났다. 그 뒤로 어떻게 됐나. 빈부격차가 커지고 부동산이 아수라장이 되고 실업자가 쏟아져도 “우리 경제가 선방하고 있다” “집값이 안정세를 보인다” “최저임금 인상의 긍정적 효과가 90%”라는 식의 ‘지록위마(指鹿爲馬) 정부’가 되고 말았다.

내부자들만 남은 조직은 퇴화를 피할 수 없다. 피터의 법칙처럼 한 사람이 모든 것을 계속 잘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위·촉의 세력 확장에 시달렸던 오나라 손권이 어린 나이에도 나라를 지킨 비결은 뭔가. 뛰어난 용인술이다. 전쟁마다 양상이 다른 만큼 그 상황에 가장 적합한 장수를 내세웠다. 인재 걱정은 하지 않았다. 이 세상에는 참으로 인재가 차고 넘치기 때문이다. 왜 이백이 장진주(將進酒)에서 “천생아재필유용(天生我材必有用)”이라면서 재주는 있어도 때를 못 만나 나아갈 자리가 없음을 한탄했겠나. 예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다.

김현미 다음에 변창흠 쓰고, 조국·추미애 거쳐 박범계로 돌려막아서는 난국을 헤쳐나갈 수 없다. 집단사고에 갇히다 보니 K방역은 아예 ‘국뽕’이 되고 말았다. 전문가들이 겨울 대유행에 대비해 병상·인력·백신 확보를 간청했지만 외면당했다. 전문가 의견을 뭉개고 의사·간호사를 이간질하고 현장 의료진이 기진맥진하는데도 의대생 국가고시를 쥐고 길들이기에 나섰다. 그러는 사이 교도소·요양병원은 세월호가 되고 말았다. 외교 분야조차 특정 대학 출신이 인맥 카르텔을 형성했다. 한국 외교가 전례 없이 불안한 배경의 하나다.

이렇게 인사풀이 좁았던 정권이 있었던가. 서슬 퍼런 전두환·노태우 정부조차 경제는 전문가에게 맡겼다. 미국도 정권 교체마다 정치권이 통째로 바뀌지만 정무직에서 멈춘다. 테크노크라트는 확고히 자리를 지킨다. 막스 베버가 ‘직업으로서의 정치’에서 공무원은 영혼이 없어도 된다는 식으로 본 이유는 뭔가. 정치가 최소한의 합리성과 상식을 가졌다는 전제 때문이다.

탕평책을 외면하면 결국 벌거벗은 임금이 되고 만다. 나라의 미래보다 출세에 급급한 폴리페서와 삼류 정치인들이 세상 모든 게 다 잘 돌아간다고 대통령의 눈과 귀를 가리기 때문이다. 그럴수록 대통령은 정권에 부담스러운 이슈나 실패한 정책에는 침묵한 채 온갖 생색내는 자리에는 다 나온다. 그 결과가 30%대로 추락한 지지율이다. 국민은 참담하다. 빈곤층이 급증하고 부동산은 난장판이 됐다. 이 모두 좁은 인재풀에 갇혀 다양한 목소리를 외면한 탓이 크다.

올해 신년사에서도 청와대 정책실장을 비롯해 성과가 없는 정책 책임자 교체에 대한 언급이 없었다. ‘국정 운영 기조를 그대로 끌고 가겠다’는 뜻이다. 그렇게 되면 부동산 사과는 말로만 그치고 청년실업부터 북핵 문제까지 출구를 찾기 어렵다. 실패한 참모는 바꿔야 실책을 만회할 수 있다. 잔여 임기를 고려하면 지금이 마지막 기회다.

김동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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