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성식의 레츠고 9988] 초고령화 쓰나미 서울 덮치다..강북구 노인 비율 20% 첫 진입
강북구 정형외과 노인 환자 많아
노인비율 가장 낮은 데는 강남구
도시 노인 고용·주거 대책 절실
고령사회위, 연금·돌봄 대책 공개
지난 4일 낮 서울 강북구 지하철 4호선 수유역 주변의 풍경 셋.
① 지하철역
낮 12시 30분 지하 1층 의자에 5명의 노인이 앉아있다. 모두 70세가 넘어 보인다. 할머니들은 바퀴 달린 장바구니를 갖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거리두기에 신경 쓰느라 띄엄띄엄 앉았다.
“점심시간 맞춰 시장 나왔다가 빵 좀 사다가 앉아서 먹었어. 커피집도, 햄버거집도 문 닫아서 먹을 데가 없어. 역 안에는 바람은 안 들어 와서 앉았다. 조금만 있다가 다시 갈 거다. 집에 혼자 있으니까 그냥 잘 안 차리게 된다. 지금 뭐 3인 이상 5인 이상 만나지 말라고 했으니까. (사람들을) 잘 못 본다.” 박정애(76) 할머니는 앉아서 쉴 데가 지하철역밖에 없어 자주 나온다고 한다.
② 노점상
낮 12시 수유역 앞에는 좌판이 깔렸다. 어떤 가판대는 노인용 속옷 3장에 5000원, 바지 한장에 1만원에 판다. 가방 같은 잡화류 좌판, 깨·기름 좌판이 있다. 이들의 주 고객은 노인층. 가방 장수 김모(81)씨는 “여기서 20년 장사했는데, 요샌 코로나 때문에 하루 1개도 못 팔아. 주 고객이 60대 이상이야. 요새 젊은 사람이 길거리에서 가방 사나, 다 백화점 가지”라고 말한다.
③ 정형외과
오전 11시 30분 한 정형외과에 3명의 70대 노인이 대기하고 있다. 이 병원 환자 상당수가 60대 이상이란다. 정모(73)씨는 주 2~3회 온다. 이날은 무릎 물리치료를 받으러 왔다. 정씨는 “하루는 어깨, 하루는 무릎 물리치료를 받는다. 요새 보험(건강보험) 처리되니까 (부담이 적다). 코로나 전에는 시장에서 친구를 만나곤 했는데, 요새는 거기 잘 안 가고 병원에 온다. 물리치료 받고 약국 가서 비타민 하나 먹으면서 1시간 때운다”고 말했다. 인근 약국에 7명의 대기 손님 중 4명이 노인 환자다. 약사는 “이 시간대는 60세 넘은 환자가 절반 이상”이라고 말한다.
서울 강북구는 서울 25개 구 중 유일하게 65세 이상 노인 비율이 20% 넘는다. 지난해 12월 주민등록인구 기준 20.6%이다. 20% 넘으면 초고령사회라고 하는데, 고령화 쓰나미가 서울마저 삼키기 시작했다. 군→시→광역시 순으로 고령화가 진행되다 서울로 진격한다. 매달 고령화율이 0.1~0.2% 포인트 올라가는 점을 고려하면 서울 중구(19.3%), 도봉구(19.1%), 종로구(19%)도 곧 ‘20% 클럽’에 가입할 것으로 보인다.
강북구가 왜 가장 먼저 진행할까. 박겸수 강북구청장은 “1960, 70년대 개발붐이 일 때 정착한 사람이 그대로 살고, 자녀들은 다른 데로 나갔기 때문”이라며 “우리 구 면적의 60%가 북한산 국립공원, 북서울 꿈의숲 등 숲이라서 은퇴자가 많다”고 말했다. 최병호 서울시립대 도시보건대학원장은 “젊은 인구가 빠져나가고 새로 진입하지는 않는다. 그게 강북구에서 유난히 두드러질 뿐, 서울도 비슷하게 고령화가 진행된다고 봐야 한다”고 분석한다. 2019년 강북구의 합계 출산율은 0.62명으로 25개 구 중 세 번째로 낮다.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에 따르면 한국의 중위연령(인구를 일렬로 세울 때 정중앙 값)은 2020년 43.7세이다. 점점 올라가 2056년 60세가 된다. 40년 후에 환갑이 주류 연령이 된다는 뜻이다. 2065년 62.2세이다. 세계 연령(38.2세)에 비하면 한국이 얼마나 심한지 알 수 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이윤경 인구정책연구실장은 “강북구 노인 비율이 20% 넘은 건 농촌 고령화와 다르게 봐야 한다. 농촌은 농업 중심이기 때문에 자발적인 고용이 가능하지만 도시 노인은 3D 업종이나 소위 좋지 않은 일자리에 종사하는 경우가 많다”며 “도시 고령화 대책에는 고용과 주거가 특히 중요하기 때문에 이런 점을 고려해서 국가와 지자체가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병호 원장은 “지역에 일자리가 있어야 하고, 젊은 세대가 들어올 수 있는 교육·문화 여건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는 지난달 15일 공개한 제4차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에서 유족연금의 중복지급률을 30%에서 40%로 올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노후에 본인의 국민연금과 유족연금(배우자 사망 후)이 중복 발생해 본인 연금을 선택할 경우 유족연금 지급률을 이렇게 올리겠다는 것이다. 이혼하면서 연금을 즉시 나누고, 최저혼인기간 요건을 5년에서 1년으로 단축하는 방안도 추진한다.
올해 6월부터 주택연금 가입자가 소유권을 주택금융공사에 이전할 수 있게 된다(지금은 저당권 설정). 이렇게 해서 주택소유자가 숨지면 자녀 동의 없이 배우자가 연금을 자동으로 승계한다. 주택금융공사가 주택의 일부를 청년·신혼부부에게 임대해 가입자에게 임대수입이 생기게 한다. 고혈압·당뇨병 등의 만성질환자가 건강프로그램을 이수하거나 일정량의 걷기를 실천하고 교육상담에 참여하면 연간 일정액의 포인트를 지급해서 의료비 등에 보태는 건강인센티브제를 도입하기로 했다.
신성식 복지전문기자
※이태윤 기자가 기사를 도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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