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정인이의 보호자는 누구인가 - 죽음에 이르는 과정 분석

김아영 2021. 1. 12. 1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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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은 샘병원 미션원장, 전 대통령직속 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장

16개월 된 어린 한 아이의 죽음이 전 국민을 분노케 하고 있다. 언론은 연일 뉴스를 쏟아내고 SNS에서는 시민들의 분노에 찬 글들이 줄을 잇는다. 국회는 이제야 법을 만들겠다고 여야를 막론해 벌써 수십 개의 법안이 올라와 있다. 하지만 정인이가 죽음의 여정을 홀로 걸어갈 때 우리는 모두 방관자였으며 끝내 지켜주지 못했기에 가해자이기도 한 셈이다.

갓난아기는 스스로 자신을 지켜낼 능력이 없다. 그래서 부모에게 보호자의 자격을 부여하고 혹 부모가 가해자가 될 경우를 대비해 다양한 법적·사회적 제도를 둔다. 어린 정인이를 둘러싸고 있는 보호막은 겹겹이 싸여있어 죽음에 이르기까지 결코 쉽지 않지만, 열 겹의 방호막이 다 무너져 내리고 결국 정인이는 차디찬 주검이 되어 안데르센공원묘원에 묻혔다.

정인이를 가장 가까이 둘러싼 첫 번째 보호막은 양부모였다. 입양의 동기조차 모호한 첫 번째 보호막은 정인이의 생명권보다 양부모의 행복추구권이 앞섰기에 여지없이 무너졌다. 다음 정인이를 둘러싼 울타리는 가정이다. 양가의 할아버지, 할머니를 포함한 일가친척은 양부모를 훈계해서라도 지켜야 하는 보호막이었다.

이마저 다 큰 자녀들의 눈치를 보느라 뚫리고 나니 이를 막아내는 또 다른 공동체적인 방어막이 작동했어야 했다. 양부모와 자주 어울린 친구들,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친 교회 공동체, 그리고 함께 입양해 더욱 친밀해진 입양 부부 모임이 있었지만, 이들은 의심은 했을지언정 정인이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지 못했다.

가장 실제적인 안전망 지킴이는 아동학대 신고의무를 가지는 어린이집 선생님이고 정인이를 진찰한 소아과 의사일 것이지만 이들의 신고에도 불구하고 후속 조치가 이뤄지지 않으면서 이마저 무너져 내렸다.

여기까지 뚫리면 곧바로 작동해야 하는 사회적 시스템이 각 지방자치단체가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하는 공적 안전망이다. 서울 양천구청 산하의 강서아동보호전문기관, 양천경찰서, 입양 후에도 계속 관리 할 책임이 있는 홀트아동복지회가 바로 그것이다. 여러 차례 어린이집과 소아과 의사, 양부모 지인 등의 신고가 이어졌음에도 이들은 정인이에 집중하기보다 양부모 편에서 그들의 입장만을 경청했다.

우리는 국민의 생명을 지켜달라고 수많은 명목의 세금을 꼬박꼬박 내건 만 행정부인 대통령과 정부, 입법부인 국회, 사법부인 법원은 온통 검찰개혁을 둘러싼 조국 사태와 윤-추 갈등에 몰입하느라 어린 정인이의 생명을 지켜내지 못했다. 누구도 정인이 편에서 어린아이의 생명을 지켜내는 역할을 끝까지 감당해 내지 못했다. 이제 우리는 어린 영정 사진 앞에서 그저 통곡할 뿐이다.

아무리 부모라 할지라도 아이를 보호할 의지가 없는 부모에게서 과감히 보호자의 자격을 박탈해야 할 것이다. 대표적인 사건이 SBS ‘그것이 알고 싶다’의 신애 사건이다. 당시 12세였던 초등학생이 윌름즈종양을 앓고 있었는데 수술하면 나을 수 있었음에도 사이비종교에 심취한 부모는 치료받고 싶다고 절규하는 아이를 집안에 가두고 묶어서 내버려 뒀다.

뒤늦게 신고받은 경찰이 부모로부터 보호자의 자격을 빼앗아 치료를 받게 하였는데 결국 3년 뒤 사망한 사건이다. 아무리 부모라 할지라도 아이에게 최선의 선택을 하지 않는 부모에게는 부모의 자격을 주지 않고 그 마을의 성직자에게 보호자의 자격을 대신 부여해 치료받게 하였고 이로 인해 국회에서 아동보호법이 제정된 것이다.

정인이의 진정한 보호자는 정인이가 의식이 명료하다면 어떤 것을 원할지 정인이에게 최선의 결정을 내리는 자여야 한다.

우리는 부모라 하더라도 자식의 생명을 지키려 하지 않는 세상을 살고 있다. 최근 유행처럼 번지는 가족동반 자살도 알고 보면 전혀 죽고 싶지 않은 자녀를 끔찍하게 살해하고 자신은 극단적 선택을 하는 살인극이나 다름없다. 부모를 대신해 태아를 포함한 갓난아기들의 생명을 지켜줄 다각도의 법과 촘촘한 사회 제도적 안전망이 긴급히 요청된다.

김아영 기자 singforyou@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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