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력 잃은 남자에게 거짓말 한 소녀의 진심
[김준모 기자]
▲ <블라인드> 스틸컷 |
ⓒ (주)컨텐츠썬 |
2008년, 국내에 처음 소개된 후 무려 13년 만에 정식으로 개봉하게 된 영화가 있다. 제10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를 통해 상영된 네덜란드 영화 <블라인드>는 당시 어둠의 경로로 퍼지면서 '숨겨진 로맨스 명작'으로 평가받았다. 빈티지의 매력이 느껴지는 동화 같은 화면과 새하얀 눈으로 덮인 배경이 인상적인 이 작품은 이번 극장 상영을 통해 작품이 지닌 진가를 보여줄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 <블라인드> 스틸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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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념한 캐서린 앞에 마리아가 나타난다. 21살의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얼굴에 상처가 가득한 흉측한 생김새를 한 마리아는 한 번도 피어본 적 없는 꽃과 같은 느낌이다. 마리아는 난동을 부리는 루벤을 힘으로 제압한다. 루벤은 마리아도 자신에게 지쳐 포기할 것이라 여기고 계속 난동을 부린다. 그때마다 마리아는 그를 제압하고 낭독을 시작한다. 마리아의 목소리에 집중하게 된 루벤은 그 기품과 아름다움에 관심을 지닌다.
루벤은 마리아가 아름다운 외형을 지닌 사람이라 생각하고 그녀에게 사랑을 구애한다. 루벤의 적극적인 애정공세에 처음에는 마음을 거부하고자 했던 마리아도 감정을 받아들인다. 세상이 자신을 버렸다고 생각한 소년과 세상을 등진 소녀는 그렇게 하나가 된다. 영원할 것만 같았던 이 감정은 위기에 처한다. 루벤이 눈수술을 받게 된 것이다. 마리아를 볼 생각에 들뜬 루벤과 달리 마리아는 두려움에 빠진다.
▲ <블라인드> 스틸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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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은 모습을 비추는 역할을 한다. 눈이 보이지 않는 루벤은 볼 수 없다. 이는 루벤의 마음에는 거울조각이 박히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루벤은 따뜻한 마음으로 마리아를 받아들인다. 마리아의 새하얀 머리카락은 그녀의 이미지를 눈의 여왕과 흡사하게 묘사한다. 눈의 여왕은 인간과 동떨어진 세상에서 혼자 살아간다. 이 동화의 주된 스토리는 게르다란 소녀가 눈의 여왕의 성에 간 카이란 소년을 구하는 이야기다.
카이의 가슴에 거울조각이 박히기 전 게르다와 카이가 함께 키우던 꽃이 장미다. 작품은 이 두 가지 색채를 대비시킨다. 루벤은 마리아에게 머리색깔이 무엇인지 묻고, 게르다는 새하얀 자신의 머리색을 붉은색이라 말한다. 붉은색은 장미의 색이자 생명력을 지니고 있다. 외로운 눈의 여왕이 되기 싫었던 마리아는 루벤에게만큼은 붉은 머리카락을 지닌 여인이 되고 싶어 했음을 보여준다.
▲ <블라인드> 스틸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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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에서 눈의 여왕이 성을 비운 뒤 카이에게 얼음 조각으로 맞추게 하는 글자가 '영원'이다. 카이는 그 글자를 맞추면 이 세상 전부를 얻을 수 있다는 여왕의 말을 듣는다. 동화 속 영원은 변하지 않는 가치인 사랑을 의미한다. 동화처럼 순수하고 아름다운 사랑을 보여주지만, 동시에 눈처럼 시리고 차가운 느낌을 이 영화가 지닌 이유는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 영원한 사랑을 찾기 힘들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동화에 기반을 둔 작품은 섬세한 표현으로 감정적인 격화를 더한다. 상황에 어울리는 클래식 음악을 활용하며 품위 있게 분위기를 이끈다. 시대를 명확히 알 수 없는 중세의 분위기는 고풍스런 빈티지 감성으로 동화의 느낌을 살린다. 새하얀 눈이 돋보이는 배경은 아름답고도 아픈 두 사람의 사랑을 담아낸다. 겨울을 닮은 이 작품은 <러브 스토리>와 <러브 레터>를 잇는 겨울하면 떠오르는 가슴 아픈 시린 로맨스 영화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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