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전멸이여 전멸" 노량진시장 상인들의 벼랑끝 현장

윤성호,권현구 2021. 1. 12. 11:24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임대료 인하 요구 상인들 "월세만 2000만원..", 사측 "방역비 때문에.."
11일 서울 동작구 노량진수산시장 식당가가 점심시간임에도 손님이 없어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노량진수산시장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한 자영업자는 "임대료가 40평 기준 월 평균 이천만원이다"라며 "코로나 이후 70% 매출이 급감해서 감당이 안된다"고 했다.

서울 동작구 노량진수산시장에서 30여년 생선 소매업을 한 자영업자 A씨는 최근 노량진수산시장주식회사(이하 노량진수산시장) 측에서 보내온 공문에 실망했다. 최근 시장 상인들은 코로나 장기화로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하자 단체로 임대료 인하를 요구했다. 공기업인 수협의 자회사가 관리하는 시장이니 정부의 착한 임대료 사업에 동참할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상인들은 “인하를 해주고 싶어도 방역하는데 돈을 다 써서 인하해 줄 수 없다”는 공문을 받았다.

노량진수산시장은 소매 판매시설 648개, 사무실 300개 등 상가 수만 1000여개에 달하는 명실상부 국내 최대의 어시장이다. 식당가를 비롯한 상가의 임대료는 자영업자 입찰 방식으로 정한다. 이곳의 임대료는 평당 40만~50만원 수준이다. 24개 식당가의 평균 크기인 40평 기준으로 계산하면 월 2000만원에 이른다. A씨는 “자회사인 노량진수산시장에서 매년 수협 측에 150억원을 지급하는 것으로 아는데 방역비 때문에 임대료 인하가 어렵다는 게 말이 되느냐”며 분개했다. 이런 점을 노량진수산시장 측에 묻자 한 관계자는 “(공문과 관련해)우리 부서는 모르는 일이다. 월 방역비는 알려줄 수 없다”고 답했다.

한산한 노량진시장.

코로나 사태가 길어지면서 시장 상인들의 어려움은 더 무거워지고 있다. 코로나19 1년 동안 정부 방역수칙을 준수하며 장사를 했지만, 남은 건 임대료 부담 뿐이다. 노량진수산시장 관계자는 착한 임대료 사업에 동참할 계획이 있느냐는 질문에 “지난해 1월과 2월에 임대료 중 20%, 3~7월 40%를 감면해줬다”며 “올해 계획은 정해지지 않았지만 검토 중에 있다”고 밝혔다. 이런 노량진수산시장 측 얘기를 두고 상인회는 “감면이 아닌 유예다. 지난해 1월과 2월 월세 중 20%를 3월과 4월에 내고, 3월부터 8월까지의 월세 40%를 10월부터 올해 1월까지 내라고 했다. 코로나19 3차 대유행으로 장사가 안된 11월과 12월의 월세 100%는 4월 20일까지 내라고 한다”며 “노량진수산시장 측 발언은 사실이 아니다”고 맞섰다.

상인회 입장에서 계산해보면 식당가의 월세 2000만원 기준으로 가게 한 곳 당 1년 간 지급할 월세는 2억4000만원. 매월 수협 측에서 인정해준 유예금만 합쳐서 계산했을 때 5600만원이다.

지난 11일 노량진시장 식당가가 한산하다.

지난 11일 코로나19 확산으로 피해를 본 소상공인에게 최대 300만원을 지급하는 ‘버팀목자금’(3차 재난지원금) 지원이 시작됐지만 노량진시장의 상인들이 겪는 고통은 커지고만 있다. 방문 판매 비율이 급격하게 줄었기 때문이다. 손님으로 북적이던 식당가는 예전 활기를 잃었다.

지난달 21일 서울 노량진시장 식당가에서 한 상인이 한산한 복도를 바라보고 있다.

지난달 21일 오후 12시 노량진수산시장 식당가는 점심식사 시간인데도 한산했다. 식당 주인 B씨는 한숨을 내쉬며 “전멸이여 전멸. 이 정도면 정말 전멸이라고 봐야제”라고 했다.

4년 간 이곳에서 식당을 운영 중인 C씨는 코로나 이후 손님이 끊겨 월 매출이 70% 떨어졌다고 한다. 코로나 이전엔 겨울 장사를 통해 비수기를 버텼는데 이제는 매월 버티는 것조차 버겁다. 하루 매출이 50만원으로 내려앉으면서 월 매출은 1500만원 수준으로 폭락했다. 주방 1명, 홀 서빙 2명의 인건비가 하루 35만원으로 매월 인건비만 1000만원이 나간다. 여기에 임대료를 더하면 적자의 늪에서 빠져나올 수 없다.

C씨는 임대료를 내기 위해 결혼한 딸의 신용을 담보로 대출 8000만원을 받았다. 처음 장사를 시작할 때도 보증금 2억 원을 마련하려고 대출을 받았는데, 이제는 이자 내는 것조차 힘겹다. 그는 “이달을 버티면 다음 달, 그 다음 달을 또 어떻게 버텨야 할지 정말로 막막하다”며 말끝을 흐렸다.

20만 명 이상의 동의를 얻은 자영자들의 대출 원리금과 임대료 납부 중지를 요구하는 청와대 국민청원.

지난달 청와대 국민 청원 게시판에는 자영업자들의 대출 원리금과 임대료 납부를 중지해 달라는 글이 올라왔다. 지난 6일 마감된 이 청원에는 20만 6790명이 동의했다. 청와대 관계자의 답변을 기다리고 있다. 청원자는 “올 한해 (정부의) 코로나 규제 방향을 보고 있으면 90% 이상 자영업자만 희생 시키고 있다. 대출 원리금, 임대료, 전기세 등 사용한 만큼 지불하는 게 당연하지만 코로나로 인한 규제 때문에 사용하지 못한 부분에 대해 그 책임을 다 지고 납부해야 하는 상황은 이해가 안 간다”고 호소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피해를 본 소상공인에게 최대 300만 원의 '버팀목자금'(3차 재난지원금) 지급이 시작된 11일 서울 남대문시장에 '코로나19 우리 함께 이겨 냅시다'라고 쓰인 현수막이 걸려 있다.

소상공인의 피해가 점점 커지면서 점포 임대료를 인하 또는 동결하는 ‘착한 임대인 운동’은 곳곳에서 번지고 있다. 어려움과 고통을 함께 나누는 ‘상생’이라는 항체가 널리 퍼지고 있는 것이다. 국내 최대 재래 시장인 남대문시장은 착한 임대인 운동이 가장 활발한 곳 중 하나다. 남대문시장 관계자는 “소유주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고 있다”면서 “코로나 최초 발생 당시 20%정도였는데, 3차 확산 이후 30%로 늘려 인하해주는 소유주들이 늘고 있다”고 전했다. 정치권 또한 자영업자의 임대료 부담을 덜어주는 ‘공정 임대료’ 뿐 아니라 9조 3000억 원 규모의 재난 지원금 대책을 발표하는 등 소상공인 아픔을 덜어주기 위한 대책을 강구하고 있다.

윤성호 기자, 권현구 기자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Copyright © 국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