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승에 목마른 손흥민과 토트넘, 천운도 따르나
[이준목 기자]
손흥민의 토트넘이 2020-21 잉글랜드 축구협회컵(FA컵) 4라운드(32강)에서 2부리그 위컴 원더러스와 만나게 됐다. 잉글랜드축구협회는 12일 FA컵 4라운드 대진 편성을 발표했다. 맨유-리버풀, 맨체스터 시티-챌튼엄 타운 FC, 첼시-루튼 다운 등이 맞대결을 펼치게 됐다. 모든 일정은 오는 1월 23일-25일 사이에 진행되며 토트넘은 위컴을 꺾고 16강에 오를 경우, 에버턴과 셰필드 웬즈데이 중 승자와 맞붙게 된다.
전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축구대회로 꼽히는 잉글랜드 FA컵은 최상위 리그인 프리미어 리그에서부터 아마추어 레벨인 10부 리그까지 참여가 가능하다. 잉글랜드 축구는 1~4부가 프로, 5~6부가 세미프로, 7부 이하는 아마추어로 분류된다. 토트넘은 지난 11일 첫 경기였던 FA컵 3라운드(64강)에서 8부리그 소속의 마린 AFC을 만나 5-0으로 대파한 바 있다. 토트넘은 FA컵에서 통산 8번이나 우승을 차지했지만, 마지막으로 정상에 오른 것은 프리미어리그가 출범하기 이전인 1991년으로 까마득한 과거에 가깝다.
토트넘은 오랫동안 우승에 굶주린 팀이다. 1부리그 우승은 1960-61시즌으로 무려 반세기 전이고, 유럽클럽대항전인 유로파리그 우승이 1983-84시즌, 가장 최근에 메이저대회 우승을 차지한 것은 2007-08시즌 리그컵(현 카라바오컵)으로 12년 전이다.
토트넘은 마우리시오 포체티노 감독(현 PSG)이 이끌었던 2010년대 중반 이후 EPL의 신흥강호로 자리매김했으나 자국리그와 유럽챔피언스리그에서 모두 준우승에 그치며 끝내 트로피는 단 한 개도 들어 올리지 못했다. 토트넘의 레전드이자 한국축구의 자랑인 손흥민 역시 프로 데뷔 이후 클럽무대에서는 우승경력이 아직 전무하다는게 옥의 티로 남아있다.
주제 무리뉴 감독 2년차를 맞이한 토트넘은 올시즌 여러 대회에서 당당히 우승에 도전하고 있다. 가장 먼저 카라바오컵에서 결승에 올라 오는 4월 25일 웸블리에서 맨시티와 우승컵을 놓고 한판 승부를 벌이게 됐다. 유로파리그에서도 조별리그를 통과하고 32강 토너먼트에 올랐으며 FA컵 32강, EPL에서는 4위(8승5무3패)로 현재까지 올시즌 출전한 모든 대회에서 우승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다. 무리뉴 감독은 레알, 인테르, 첼시 등 유럽의 여러 명문클럽을 거치며 2년차 시즌에 반드시 우승을 차지한다는 징크스를 가지고 있는 '우승청부사'이기도 하다.
우승은 실력도 중요하지만 여러 가지 시기와 운도 맞아떨어져 한다. 토트넘처럼 한 시즌에 여러 대회를 병행하는 팀들은 선택과 집중의 갈림길에 서는 경우가 많다. 주로 정규리그나 유럽클럽대항전에 우선순위를 두지만, 컵대회도 마냥 소홀히 할 수 있다. 빡빡한 리그 일정 중간에 치러지는 컵대회에서 초반부터 강팀을 만나기라도 하면 골치아픈 상황이 발생한다.
그런 면에서 올시즌의 토트넘은 기이할만큼 대진운도 따르고 있다. FA컵 첫 경기부터 8부리그 아마추어팀을 만났고, 32강에서 만나는 위컴 역시 2부리그(챔피언십)에서도 최하위권에 머물고 있는 약체팀이다. 지난 시즌 잉글랜드 3부리그(리그1)에 있다가 올 시즌 챔피언십에 승격한 위컴은 현재까지 2부에서도 3승6무14패(승점15)에 그치며 부진하다.
강력한 우승후보로 꼽히는 라이벌 리버풀과 맨유가 일찌감치 4라운드에서 만난 것과 대조된다. 토트넘이 위컴을 이길 경우 다음 라운드에서는 1부리그팀인 에버턴을 만날 가능성이 높지만 그래도 맨시티나 아스널 등 다른 우승후보들에 비하면 해볼만한 상대다.
올시즌 토트넘의 신들린 대진운은 다른 대회에서도 나타난다. 3라운드부터 참가한 카라바오컵에서는 첫 경기에서 4부리그인 레이튼 오리엔트와 맞붙을 예정이었지만 코로나19의 영향으로 경기가 취소돼 부전승으로 다음 라운드에 진출하는 행운이 따랐다.
4라운드에서 첼시를 만난 것이 가장 어려운 대진이었지만 1.5군급 로테이션을 가동하고도 1-1로 비긴 끝에 승부차기에서 6-5로 승리하며 한 고비를 넘겼다. 8강전(스토크시티 3-1)과 4강전(브렌트포드 2-0)에서는 모두 하부리그 팀을 만나는 행운을 누리며 순조롭게 결승에 올랐다. 결승에 올라온 맨시티가 아스널과 맨유를 상대해야했던 것을 비교하면 토트넘은 유리한 대진운도 한 경기를 덜 치르고 무난하게 순항했다.
리그컵 4연패와 최다우승 기록에 도전하는 맨시티는 확실히 어려운 상대지만 토트넘은 과거 여러 차례 맨시티의 발목을 잡은 바 있다. 손흥민은 맨시티전에서만 통산 6골을 넣으며 천적으로 자리잡았고, 무리뉴 감독은 토트넘 사령탑 부임 이후 과르디올라 감독이 이끄는 맨시티와 두 번의 맞대결을 모두 승리한 바 있어서 자신감을 가질 만하다.
또한 유로파리그에서도 32강까지 오를 동안 이렇다 할 강팀을 한 번도 만나지 않았다. 유로파리그가 유럽 챔피언스리그보다는 한 수 아래의 대회로 꼽히기는 하지만, 올시즌에는 맨유-아스널-나폴리-AC밀란-레알 소시에아드-로마 등 챔피언스리그 수준에 내놔도 손색없는 강자들이 즐비하다.
2차예선부터 시작한 토트넘은 단판승부에서 로코모티브 플로브디프-슈켄디야-마카비 하이파를 차례로 꺾었고, 조별리그에서는 루도고레츠-앤트워프-린츠 등 무난한 팀들과 한 조가 되어 여유있게 조 1위를 차지했다. 32강 토너먼트에서도 강자들을 피해 오스트리아 분데스리가 7위팀인 볼프스베르거(2월 18,25일)를 만나게 되는 행운을 누렸다. 참고로 많은 프리미어리그의 아스널은 벤피카(포르투갈)와 맨유는 레알 소시에다드(스페인)같은 만만치않은 상대를 만나게 되어 16강진출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아직 남은 경기가 많기는 하지만 현재까지는 올시즌의 토트넘은 이보다 더 좋은 '꿀대진'을 기대하기 어려울 정도다. 3~4일 단위로 경기가 이어지는 빡빡한 일정에 백업멤버들의 부진으로 대회 운용에 고민이 많았던 토트넘으로서는 만일 대진운까지 받쳐주지 않았더라면 훨씬 험난한 일정이 되었을 것이다.
우승은 기회가 왔을 때 잡아야 한다. 운도 실력이 받쳐줘야 기회로 만들 수 있다. 올해도 우승하지 못한다면 토트넘으로서는 더 이상 변명의 여지가 없다. 올시즌 그야말로 물오른 활약을 펼치고 있는 손흥민도 본인이 팀의 주역으로서 당당히 우승을 이끌며 개인 커리어와 토트넘의 역사에 큰 이정표를 만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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