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 덕분에, 저는 '불안하지 않은' 선생님이 됐습니다
<삶을 위한 수업>(인터뷰·글 마르쿠스 베른센, 기획·편역 오연호)을 읽은 독자들이 '행복한 배움', '행복한 우리'를 만들어가는 감동적인 이야기를 차례로 연재합니다. 이 글은 독후감 대회 가작 수상작입니다. <편집자말>
[안재성 기자]
▲ 학창 시절, 생활계획표를 짜고 일일 학습량을 정해 목표를 이룰 때야 비로소 칭찬받을 수 있었다. |
ⓒ pixabay |
파스텔빛 하늘이 청명하다. 마음이 설렌다. 신선한 바람이 코끝에 생기를 전한다. 짙고 옅은 다채로운 단풍에 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건강한 두 발로 걸어 여유롭게 산책할 수 있음에 감사하다. 풍족하지 않아도 풍요로울 수 있음을 이제야 알게 되었다.
학창 시절, 어른들은 나에게 목표를 향해 달리라고 강요했다. 생활계획표를 짜고 일일 학습량을 정해 목표를 이룰 때야 비로소 칭찬받을 수 있었다. 내 존재에 대한 칭찬보다는 달성한 행위에 대한 칭찬이 주를 이뤘다. 칭찬받고 싶어 스스로를 더 다그쳤다.
세상은 그들이 정한 목표를 하나둘 이루어 갈 때야 비로소 멋진 사람이 될 거라고 말했다. 그때의 노트에는 오늘 해야 할 일, 내일 풀어야 할 문제집, 이번 주까지 완성해야 하는 과제 목록이 빼곡했다. 남들이 알아주는 대학에 가는 길이 곧 행복한 삶을 살게 되는 길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에 한 발을 내밀며 어른이 되었다. 이젠 내가 일해서 번 돈으로 먹고, 생활하고, 놀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그 안에서도 보이지 않는 경계는 존재했다. 어떤 브랜드의 옷을 입는지, 무슨 차를 타는지, 어느 아파트에 살고 있는지… 차츰 타인에게 받는 시선과 풍족한 소유가 풍요로운 삶의 조건이라고 믿게 되었다.
부러워하는 시선과 소유를 얻기 위해 경쟁에서 이겨야만 했다. 이기지 못한 자는 낙오되어 불행을 겪을 거라는 두려움도 생겼다. 아등바등 살면서도 여유는 누릴 수 없었다. 이기고 또 이겨야 했으니까.
뒤늦께 깨닫게 된 '행복'의 의미
행복을 얻기 위해 지금까지 걸어왔던 길은 어쩌면 나한테 맞지 않는 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30대 후반, 그동안 걸어온 길을 돌아보며 잘못된 길을 한참이나 돌아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뭐가 문제였지?' '내가 잘못한 건가?' 무수히 고민하고 명상하였다. 수백 번 실패하고 절망하며 조금씩 이치를 깨달아 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깨닫게 된 이치는 너무나 평범하고 단순했다. 행복은 이미 마음 안에 존재하고 있으며, 그 행복을 느끼는 방법은 불완전을 인정하고 그저 지금을 느끼는 것이었다. 완전하게 누리려 했던 것이 탐이었다. 탐은 번뇌가 되어 나를 괴롭혔다. 충분히 누리기 위해 이루어야 했고, 이루기 위해 이겨야만 했다. 이기든 지든 고통은 존재했고 상처는 나와 모두에게 남았다.
억울했다. '내가 다녔던 학교에서는 왜 이걸 가르쳐 주지 못한 거지?' '왜 앞만 보고 달려가라며 등 떠밀고, 왜 지금을 충분히 누리며 궁금해하고 알아가는 기쁨은 알려주지 않은 거지?'
억울한 만큼 내가 가르치는 아이들에게는 그 시절 내가 배우지 못했던 경험과 지혜를 전하고 싶었다. '괜찮아. 천천히 가도 돼' '공부하라니까 하는 공부가 아니라 왜 공부해야 하는지 함께 고민해보자' '잘 노는 것도 잘사는 거야. 너무 자신을 몰아세우지 않았으면 좋겠어' '꼭 진로를 정해야 한다고 자신을 압박하지 않았으면 해. 작은 일에 호기심을 가지고 세상과 나를 탐구하며 그렇게 천천히 지금을 느끼는 삶을 살기를 바라'….
▲ '삶을 위한 수업' 책 표지, 마르쿠스 베른센 (지은이),오연호 (편역) |
ⓒ 오마이북 |
<삶을 위한 수업>이 내게 가르쳐준 것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덮으며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신념은 틀리지 않았다. 어깨에 짊어진 '선생님'이라는 무게로 인해 더 이상 불안해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덴마크의 아이들은 이미 내가 바라던 교육을 누리고 있었다. 그들은 존중받고 있었다. 덴마크의 선생님들은 학생들의 의견을 묻고 반영했다. 이 과정에서 학생들은 주체적인 삶을 느끼며 성장할 수 있었다. 다름을 인정하며 서로의 가치와 생각을 존중할 수 있었다. 선택과 책임의 무게를 체감하고, 늦더라도 스스로 해내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지 배우고 있었다.
덴마크의 선생님들은 아이들을 다그치지 않았다. 뭔가를 꼭 이루어야 한다고 강요하지도 않았다. 더 다양한 것들을 느끼고 경험하면서 천천히 여유 있게 지금을 누리는 삶을 살아가도록 안내하고 있었다.
이 속에서 덴마크의 아이들은 자연스레 일상의 감사함을 느끼게 될 것이다. 경쟁보다 관계의 중요성을 인지하게 될 것이다. 잘하는 것보다 즐겁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걸 꾸준히 배우게 될 것이다. 무엇보다 왜 공부해야 하는지, 왜 진로를 고민해야 하고, 왜 삶에 열정을 담아야 하는지 스스로 깨닫게 될 것이다. 선생님은 그저 아이들이 지금의 삶을 충분히 누릴 수 있도록 다양한 기회를 제공하며 소통의 기반을 넓히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삶을 위한 수업>을 읽으며 내가 가르치는 제자들에게도 꼭 적용하고 싶었던 것은 덴마크 선생님들과 학생들이 충분히 소통하는 모습이었다. 사람은 모두 다르기에 학생 개개인의 성향과 상황을 인지하고 그들의 시선에서 여유 있게 기다려줄 때 비로소 소통의 장은 열린다. 덴마크의 선생님들은 저마다의 신념에 따라 아이들과 소통하고 있었다.
헬레 호우키에르 선생님은 시험 보다 시험에 대한 대화를 강조했다. 안데르스 울랄 선생님은 학생을 알기 위해 많은 시간을 투자하고, 학생이 관심 있어 하는 분야에 대해 함께 공부했다. 킴 륀베크 선생님 또한 학생들의 요구에 귀 기울이며 학생 스스로 '민주주의의 기본은 대화'라는 점을 인지할 수 있도록 방향을 잡아 주었다.
그동안의 나는 어땠을까? 아이들에게 관심을 보이며 최대한 그들과 공감하고 대화하려 했지만, 어쩌다 보면 조언이라는 명목하에 훈계만 늘어놓고 있었다. 아이들의 말을 귀담아들으며 공감해야겠다고 다짐하면서도 어느 순간 나만의 시선에서 그들을 판단하며 옳고 그름을 가르고자 했던 부끄러운 모습이 떠올랐다.
학생들의 말에는 옳고 그름이 없었다. 그들의 행동에는 잘잘못이 있을 수 있겠지만 그들이 나에게 전하는 생각은 모두 존중받아 마땅한 것이었다. 비록 나만의 교육적 신념이 있다고 해도 그것을 일방적으로 강요해서도 안 되었다. 내가 아무리 자유롭게 생각해라, 지금을 충분히 느껴라, 세상의 틀에 얽매이지 말고 주변의 시선과 인정에 너희들의 행복을 맡기지 말라고 말해도 그들 스스로 느끼고 체감하지 못한다면 이 또한 부질없는 잔소리일 뿐이었다.
가르치지 말고 직접 경험할 수 있도록 안내해야 한다. 안내하기 위해 존중하며 그들과 마음 담은 소통을 해야 한다. 제자들의 시선에서 그들의 가치와 상황을 함께 느끼고 공감해야겠다. 나 또한 급하지 않게, 천천히 여유 있게 제자들과 오랜 시간 대화하고 존중하며 다양한 기회와 기반을 만날 수 있도록 힘이 되고 싶다. 아스트리드 엥엘룬 선생님이 그랬던 것처럼 학생들이 관심을 가지는 것에서부터 출발하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나만의 신념이나 가치관이 아니라 학생들의 신념이나 가치관에서부터 소통이 시작되어야 할 것이다.
<삶을 위한 수업>을 통해 만난 덴마크 선생님들과 학생들은 나에게 위안이었고 성찰이었다. 청명한 하늘, 신선한 공기, 건강한 발걸음과 따뜻한 관계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다는 느낌을 제자들과 공유하고 싶었다. 누군가를 짓누르며 이겨내지 않아도, 세상이 요구하는 것들을 다 갖추지 않아도 존재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존중받으며 기뻐할 수 있음을 알려주고 싶었다.
한국식 경쟁에서 벗어나라는 말이 위험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불안하기도 했지만, <삶을 위한 수업> 덕분에 내 교육적 신념이 잘못된 길이 아니었음을 확인하며 위로받게 되었다. 더불어 아무리 내가 좋다고 느끼는 것이 있더라도 이 또한 일방적으로 제자들에게 강요해서는 안 된다는 반성도 하게 되었다. 관심과 소통이 우선이었다.
학생의 시선에서 충분히 이해하고 공감하며 그들 스스로 풍족하지 않아도 풍요로울 수 있다는 지혜를 체감하도록 도와주고 싶다. 미래에 대한 걱정과 두려움을 이겨내며 조금씩 천천히 지금을 느끼고 저마다의 열정으로 성장할 수 있게 힘이 되고 싶다. 나와 제자들 모두의 삶에는 이미 행복이 존재하고 있다. 그것을 바라볼 줄 아는 시선을 배우는 곳이 곧 지금을 누리는 배움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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