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메기 우적우적 씹을 때, 이 와인 하나면 끝납니다
[임승수, 고정미 기자]
맨땅에 헤딩. 내가 인생을 사는 방법이다. 대학교에서 전기공학, 대학원에서 반도체 소자를 전공하고 연구원으로 직장생활을 하다가 마르크스주의 책 쓰는 사회과학 작가로 전직할 때도 맨땅에 헤딩이었다. 우연히 만난 와인에 홀딱 빠져 이것저것 마셔댈 때도 맨땅에 헤딩이요. 턱없이 부족한 지식과 경험으로 <오마이뉴스>에 와인 글을 연재하는 것도 그야말로 맨땅에 헤딩!
수많은 와인 전문가의 글 홍수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어떻게 써야 할까? 그래! 맨땅에 헤딩하며 마셨던 상황을 솔직하게 드러내자. 누구나 처음부터 능수능란하게 마실 수는 없지 않은가. 나 스스로가 전문가의 지도 없이 좌충우돌 와인을 마셨으니, 초보에게 필요한 사항을 뼈저리게 체득하지 않았나. 그런 정보 위주로 가려운 데 긁어주는 글을 쓰면 분명 쓸모와 의미를 지닌 글이 되리라.
연재하는 지난 1년간 국내 와인 소비는 놀라울 정도로 늘어났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이마트의 와인 매출이 전년 대비 43% 상승하고, 롯데마트는 63% 늘었다고 한다. 이게 다 내 <오마이뉴스> 와인 연재글 때문이면 좋겠지만, 와인 업계 관계자로부터 거의 연락이 없는 것을 보니 내 글과는 인과관계나 상관관계가 약한 현상으로 분석된다.
나는 언제든 연락받을 준비가 되어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한 표를 행사한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었을 때에 느끼는 정도의 뿌듯함은 가져도 괜찮지 않을까. 그 정도 기여는 했으니까.
여러모로 부족한 초보 와인 애호가의 글임에도 마음이 넉넉한 출판인과 인연이 닿아 3월에 단행본으로 출간 예정이다. 소중한 공간을 할애해 게재해주신 <오마이뉴스>, 귀중한 시간을 할당해 읽어주신 독자분들의 덕택이다. 앞선 연재에서 다루고 싶었지만 구실이 마땅치 않아 제외됐던 와인 네 병을 추천하는 것으로 연재를 마친다. 그동안 보내주신 성원에 감사드린다!
Pasqua Soave
▲ 파스쿠아 소아베 이탈리아 베네토 지역의 화이트 와인이다. 입맛을 돋우는 상큼한 신맛이 인상적이며 해산물과의 궁합이 훌륭하다. |
ⓒ 임승수 |
이탈리아 베네토 지역의 화이트 와인이다. 파스쿠아(Pasqua)는 제조사, 소아베(Soave)는 포도가 생산된 마을 이름, 사용되는 주 포도 품종은 가르가네가(garganega)이고 트레비아노(trebbiano) 품종을 일부 섞는다. 집 근처 홈플러스에서 9,900원에 구매했는데, 입맛을 돋우는 상큼한 신맛이 인상적이며 해산물과의 궁합이 훌륭하다.
심지어 과메기를 우적우적 씹으면서 마셨는데도 그럴싸하게 어울리더라. 풍미가 강하지 않고 바디감도 상당히 묽은 편인데, 오히려 그래서 음식과 잘 어울린다. 1만 원대나 그 미만의 저가 와인에서는 만족스러운 놈들을 찾기 어려웠는데, 소아베 같은 이탈리아의 화이트 와인이 해당 가격대에서 만족도가 높았다. 내 와인 생활의 경제적 부담을 덜어준 이탈리아 저가 화이트 와인 만세!
Veuve Clicquot Yellow Label Brut
▲ 뵈브 클리코 옐로우 라벨 브뤼 샴페인 중에서 내가 가장 많이 마신 놈이다. 비슷한 가격대의 여타 샴페인들과 비교해 섬세함과 우아함, 상큼함이 돋보인다. |
ⓒ 임승수 |
샴페인 중에서 내가 가장 많이 마신 놈이다. 뵈브 클리코(Veuve Clicquot)는 제조사, 옐로우 라벨(Yellow Label)은 제품명, 브뤼(Brut)는 달지 않은 스파클링 와인이라는 의미다. 앞선 연재 글에서도 언급했지만, 거품이 뽀글뽀글 올라오는 스파클링 와인이라고 다 샴페인은 아니다.
프랑스 상파뉴 지방의 스파클링 와인만을 따로 샴페인이라고 부른다. 와인 내공이 높은 지인들도 뵈브 클리코를 극찬하던데, 나는 내공이 상당히 딸리지만 그런 내 혓바닥에도 진심 맛있더라. 그러니까 누가 마셔도 그냥 맛있다는 얘기다. 비슷한 가격대의 여타 샴페인들과 비교해 섬세함과 우아함, 상큼함이 돋보인다.
보통 마트에서 7만 원대에 판매하는데, 간혹 6만 원대 할인가가 보이면 바로 한 병 구입하자. 혹시나 5만 원대가 눈에 띈다면 박스로 구입이다. 예전에 지인이 나에게 소곱창구이에다가 이 샴페인을 사 준 적이 있는데, 얻어먹는 주제에 소곱창과 샴페인을 너무 빠른 속도로 흡입해 분위기가 어색해졌던 기억이 떠오른다. 인간의 사회적 본성도 무력화시키는 뵈브 클리코의 위력이라니.
Domaine de Rombeau Rivesaltes Vin Doux Naturel 1958
▲ 도멘 드 롬뷰 리브잘트 뱅 뒤 나튀렐 1958 프랑스 랑그독-루시용 지역의 주정강화 스위트 와인이다. 와인 제조 과정에서 브랜디를 첨가해 발효를 정지시켜, 알코올 도수가 높고(19%) 단맛이 난다. |
ⓒ 임승수 |
1958 빈티지이니 내가 마셨던 와인 중 최고령 되시겠다. 프랑스 랑그독-루시용 지역의 와인인데 도멘 드 롬뷰(Domaine de Rombeau)는 제조사, 리브잘트(Rivesaltes)는 포도 재배 마을 이름, 뱅 뒤 나튀렐(Vin Doux Naturel)은 주정강화 스위트 와인이라는 의미다. 와인 제조 과정에서 브랜디를 첨가해 발효를 정지시켜, 알코올 도수가 높고(19%) 단맛이 난다. 집 근처 킴스 클럽에서 12만 원대의 가격으로 구매했다.
평소 마시는 와인보다 가격대가 높았지만, 세월의 흔적으로 호박색을 띤 이 액체로부터 가격 이상의 감동을 받았다. 달달한 디저트와 곁들이는 스위트 와인이라 한 번에 조금씩 여러 날에 걸쳐 마셨다. 첫날엔 알코올 향이 튀어서 다소 부담스러운 느낌이었는데, 며칠 뒤 다시 마시고 깜짝 놀랐다. 완전히 다른 와인이 되어 있는 것 아닌가.
병 속에 들어온 공기와 적당히 반응해 마시기 좋게 변한 것이다. 스위트 와인은 한번에 한 잔 이상 안 마시는 편인데, 이날은 아내와 연속으로 여러 잔 마실 정도로 끝내줬다. 주정강화 와인은 며칠에 걸쳐 변화를 음미하는 게 좋다는 사실을 깨달은 순간이다. 코와 혀를 끊임없이 자극하는 그 우아한 단맛은 여전히 잊을 수 없다.
Domaine de la Vougeraie Vougeot 1er Cru 'Le Clos Blanc de Vougeot' Monopole 2016
▲ 도멘 드 라 부즈레 부조 프리미에 크뤼 ‘르 끌로 블랑 드 부조’ 모노폴 2016 프랑스 부르고뉴 지역의 화이트 와인인데, 2020년에 마신 와인 중에 인상적인 와인을 단 한 병 꼽으라면 이놈이다. |
ⓒ 임승수 |
2020년에 마신 와인 중에 인상적인 와인을 단 한 병 꼽으라면 이놈이다. 프랑스 부르고뉴 지역의 화이트 와인인데, 도멘 드 라 부즈레(Domaine de la Vougeraie)는 제조사, 부조 프리미에 크뤼(Vougeot 1er Cru)는 부조 마을의 1등급 포도밭이라는 의미, 르 끌로 블랑 드 부조(Le Clos Blanc de Vougeot)는 밭 이름, 모노폴(Monopole)은 생산자가 포도밭을 단독으로 소유하고 있다는 뜻이다.
부르고뉴에서는 하나의 포도밭을 여러 생산자가 나누어 소유하는 경우가 많은데, 한 생산자가 단독으로 소유하는 경우에는 라벨에 모노폴이라고 표기한다. 김포 와인 아울렛 떼루아의 할인장터에서 19만 원대로 구입했다. 상당히 비싼 와인이지만 구매 가격의 두 배가 넘는 퍼포먼스를 보여주었다.
부들부들 매끌매끌 균형 잡힌 우아한 질감에다가 맛과 향기가 10분 단위로 끊임없이 변한다. 부드러운 버터향, 은은한 훈제향 등이 코를 휘감싸니 잔에서 코를 뗄 수가 없더라. 조만간 무리해서라도 다시 구매해 마셔볼 계획이다. 그만한 가치가 차고 넘치는 와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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