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관계장관회의 헛도는 새.. 학대받는 아이들이 죽어간다

이도경 2021. 1. 12. 0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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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도경의 에듀 서치]


지난해 5월 29일 경남 창녕에서 달군 프라이팬으로 손을 지져대는 고문을 당하던 초등 4학년생이 목숨을 걸고 4층 베란다로 탈출합니다. ‘창녕 9세 소녀 학대 사건’입니다. 이틀 뒤인 6월 1일 천안에선 아홉 살 아이가 여행용 가방에 갇혀 심장이 멎었고 이틀 뒤 병원서 숨을 거둡니다. ‘천안 9세 학대 사망사건’입니다.

천안의 아이는 어린이날 구타로 머리가 찢어져 병원을 찾았죠. 의료진 신고로 경찰·아동보호전문기관이 학대 사실을 파악했지만 가정으로 돌려보냈고 결국 변을 당했습니다. 공분이 일자 문재인 대통령이 사망 닷새 뒤인 6월 8일 “학대 아동을 사전에 찾는 제도를 점검하라”는 지시를 내립니다.

문 대통령이 이런 지시를 내리고 있을 때 경찰·아동보호전문기관은 정인이를 살릴 첫 기회를 날려버립니다. 학대 신고는 5월 25일 병원·어린이집이 합니다. 경찰은 6월 10일 정인이 입양 기관 등에 ‘혐의 없음’을 통보하고 사건을 종결합니다.

문 대통령 지시 나흘 뒤인 6월 12일 사회관계장관회의(이하 사장회의)가 열립니다. 교육부 보건복지부 행정안전부 등은 “학대 정황 발견 즉시 아동을 가정에서 분리하는 ‘즉각 분리제도’ 도입, 경찰·지방자치단체·아동보호전문기관 점검팀 구성해 ‘재학대 발견 특별 수사 기간’ 운영, 최근 3년 학대 신고 점검, 2~5월 학대 신고 전수 모니터링” 등 아동학대 방지대책을 발표했습니다.

정인이 학대 2차 신고는 이런 대책이 시행되던 6월 29일 이뤄집니다. 경찰도 7월 2일 수사에 착수합니다. 이 와중에 7월 29일 사장회의가 또 열립니다. 교육부 법무부 복지부 여성가족부 경찰청이 ‘아동·청소년 학대 방지대책’을 내놨습니다. ‘즉각 분리제도’ 도입이 재차 언급됩니다. 즉각 분리를 위해 국회서 법 개정이 필요하지만 그전에라도 멍·상흔 등 학대 정황이 있거나 의료진 신고가 있을 시 아동을 가정에서 즉시 분리키로 합니다.

정인이의 두 번째 기회는 8월 12일 경찰이 ‘혐의 없음’ 결론을 내리면서 사라집니다. 아동보호전문기관도 8월 21일 ‘학대 아님’ 결론을 내놓죠. 앞선 두 차례 사장회의에서 발표된 ‘즉각 분리제도’ ‘재학대 발견 특별 수사 기간’ ‘최근 3년 학대 신고 점검’ ‘2~5월 학대 신고 전수 모니터링’ 모두 정인이를 구하지 못합니다.

9월 14일 인천에서 ‘라면형제 사건’이 터집니다. 9월 22일 문 대통령은 “학대 신고에도 부모의 뜻을 따르다 비극이 반복된다. 강제 보호조치 강구하고 학대 아동 폭넓게 파악하라”는 지시를 합니다.

문 대통령 지시 이튿날 정인이에게 마지막 기회가 찾아옵니다. 정인이를 본 의료진이 신고를 하죠. 그러나 전날 문 대통령의 지시와 앞선 사장회의의 “의료진 신고 시 즉각 분리”는 이번에도 작동하지 않습니다. 의료진 신고인데도 묵살됩니다. 21일 뒤인 10월 13일 정인이는 짧은 생을 마감합니다. 생후 492일, 입양 254일 만입니다.

정인이 사건은 ‘16개월 입양아 학대 사망사건’이란 명칭으로 공분을 일으킵니다. 문 대통령은 정인이 사망 8일 뒤 경찰의 날 행사에 참석해 “돌봄 사각지대 아동 발굴, 재학대 위기 아동 점검”의 노고를 치하했죠. 행사 몇 시간 뒤 ‘라면형제 사건’의 동생(당시 8세)이 화상 치료를 못 견디고 세상을 뜹니다. 돌봄 사각지대서 방치되다 화마(火魔)에 휩쓸려 동생은 죽고 형은 살아남았습니다.

11월 29일 복지부와 경찰청이 정인이 사건 후속 조치를 발표합니다. 또다시 ‘즉각 분리제도’가 골자였습니다. 멍·상흔 등 학대 정황이 있거나 의료진 신고의 경우 한 해 2회 이상 신고 시 즉각 분리키로 합니다. 해를 넘겨 지난 2일 저녁 ‘SBS 그것이 알고 싶다’의 ‘정인이는 왜 죽었나?’편이 전파를 탑니다.

지난해 아동학대 사건과 정부 대응을 겹쳐보면 ‘무능’이란 키워드가 뽑힙니다. 현재 ‘정인이법’이란 명칭으로 법안이 중구난방 발의되고 있습니다. 효과 있을까요. 전문가들은 오히려 현장과 괴리된 법안들의 역효과를 우려합니다. 그보다 정부 운영 시스템을 손보는 게 필요해 보입니다. 사장회의 말입니다.

사장회의는 부처 칸막이를 낮춰 사회현안에 효과적으로 대응하려고 만들었습니다. 개별 부처로는 복잡다기한 사회현안에 대처키 어렵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했습니다. 예컨대 가정폭력이나 청소년 폭력의 경우 교육부 복지부 행안부 여가부 경찰 등 ‘원팀’이 필요하죠. 원팀으로 각 부처가 국회의 담당 상임위들을 설득하고 다녀야 제때 제도를 손질할 가능성이 커집니다. 그러나 정인이 사건에서 어땠나요. 6월 즉각 분리제도 첫 언급 뒤 정인이 사망까지 넉 달이나 시간이 있었습니다.

사장회의는 유명무실하다는 지적을 받아왔습니다. 영(令)이 서질 않았죠. 회의를 운영하는 실무진 19명으론 협업 과제 발굴조차 쉽지 않았습니다. 기획재정부의 경제관계장관회의 인력의 12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니까요.

곧 새 아동학대 대책이 나오겠죠. 그간의 패턴대로 사장회의 발표 뒤 여론이 잠잠해지고 부처 칸막이가 재가동되면 정인이 이전으로 회귀합니다. ‘예산 조정권’ ‘부처 평가권’같은 권한을 주고 인력·조직을 충원해 사장회의를 진짜 원팀으로 운영해보면 어떨까요. 꼭 교육부 주도일 필요는 없습니다. 시원치 않으면 복지부나 행안부 등으로 넘기면 됩니다. 어디든 제대로 해야 하는 기능입니다. 더도 말고 어렵사리 외부로 알려진 위기 아동을 다시 위험에 빠뜨리지 않을 정도만 이들이 좀 더 유능해졌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이도경 교육전문기자 yid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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