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돋을새김] 왜 모든 게 쇼처럼 보일까

2021. 1. 12. 0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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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규 주택은 국민이 원하는 분양 아파트 위주로 공급해야 한다."

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이 지난 5일 주택 공급 관계기관 간담회에서 한 발언에 처음에는 긴가민가했다.

주택 공급의 ABC로 불리는 '민간 위주' 방침을 이 정부에서 들은 게 하도 낯설어서다.

정부는 불과 한 달 전 대통령 방문을 맞아 빈집에 막대한 인테리어 비용을 들인 '임대주택 쇼'까지 벌여가며 공공임대 정책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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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세욱 경제부장


“신규 주택은 국민이 원하는 분양 아파트 위주로 공급해야 한다.”

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이 지난 5일 주택 공급 관계기관 간담회에서 한 발언에 처음에는 긴가민가했다. 주택 공급의 ABC로 불리는 ‘민간 위주’ 방침을 이 정부에서 들은 게 하도 낯설어서다. 이어 지난 주말 이후 여당 내에서 그동안 금기시된 다주택자 양도세 완화론마저 흘러나왔다. 퍼뜩 스친 게 있었다. “선거가 다가왔구나.”

지난해 4·15 총선을 앞둔 즈음. 여당 내 험지로 불린 서울 강남 3구와 양천구 후보들은 ‘1가구 1주택자 종합부동산세 감면’ ‘장기 실거주자 종부세 완전 면제’를 공약으로 내걸었다. 고가 주택이 많은 경기도 분당 후보들도 보조를 맞췄다.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당시 1가구 1주택자의 종부세 부담과 실수요자의 대출 규제를 완화할 필요가 있다고 거들었다.

총선 압승 후 어떻게 됐을까. 당정은 언제 그랬냐는 듯 전가의 보도인 ‘규제 강화’ 부동산 정책을 밀어붙였다. 집값은 뛴 데다 공시가격 및 세율 인상으로 1주택자도 종부세 부담은 대폭 커졌다. 1년 전 여당 측 발언을 복기하니 실소만 나올 뿐인데 ‘선거용 재탕’ 시즌2가 펼쳐질 모양이다. 지지율이 급락하자 “어지간히 급했구나”라는 생각만 든다.

정부는 불과 한 달 전 대통령 방문을 맞아 빈집에 막대한 인테리어 비용을 들인 ‘임대주택 쇼’까지 벌여가며 공공임대 정책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평소 시장의 비판에 아랑곳하지 않고 ‘공공’만 내세우다가 표를 위해 돌연 태세 전환하는 것을 보니 과연 정치 술수 면에서 역대급이라는 생각이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 여당이 4월 보궐선거에서 승리할 경우 분양아파트 위주 공급 방침과 세제 혜택 움직임은 전처럼(?) 원위치할 가능성이 크다. 실제 입주는 3~4년 후여서 공급 입장을 바꿔도 큰 부담은 없다. 또다시 규제에 몰두하다 내년 대선을 앞두고 잠시 시장에 추파를 던질 것이다. 안 봐도 훤하다.

그런데 간과한 게 있다. 정치 이슈와 달리 전 국민의 주거와 관련된 주택 정책은 꼼수와 진영논리가 잘 먹히지 않는다. 집값·전셋값 상승이 ‘친문’ 가구만 피해갈까.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해 신년 기자회견에서 “급격한 상승이 있었던 곳은 (취임 전 수준으로) 원상회복돼야 한다”고 말했으나 서울 아파트값은 약 11%가 뛰었다. 서울 전셋값은 지난해 새 임대차법이 시행된 이후 5개월간(8~12월) 가격이 직전 5년 치만큼 올랐다. 지난 8일 재건축 예정 아파트인 서울 서초구 래미안 원베일리 분양가는 사상 처음 3.3㎡(평)당 5000만원을 넘었다. 정부가 집값 잡기의 특효인 양 선전한 분양가상한제를 적용해도 결과가 이렇다.

정부·여당은 자신들의 무능으로 인한 부동산 정책 실패를 좀처럼 인정하지 않는다. 매번 거짓으로 드러나도 “몇 달 후면 좋아질 것”이라고 국민을 미혹한다. 이후 집값 급등은 투기꾼, 영끌한 서민 탓으로 돌리고 선거 때만 잠시 고개를 숙이는 척한다. 미국의 토머스 차모로-프레무지크 교수는 “무능한 사람이 자신만만할 확률이 높으며 이는 자신의 무능을 깨닫는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위험한 자신감’)고 했는데 현 정부에 대한 가장 적절한 묘사 아닌가 싶다.

‘선거 전 사탕발림, 선거 후 본색’ 쇼는 정치세계에선 필요악일지 모른다. 그러나 후대에까지 영향을 주는 부동산 정책까지 쇼에 이용하는 것은 심각한 문제다. 전북대 강준만 교수는 ‘부동산 약탈국가’에서 현 정부를 두고 ‘민생엔 둔재, 정략엔 천재’라 했다. 정부·여당이 최근 행보를 ‘표 구걸용’으로 삼는다면 이를 자인한 셈이다. 태세 전환 말고 사고 전환을 해야 부동산 해법이 나온다.

고세욱 경제부장 swkoh@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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