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는 내어주고 나눠줘야".. 지역사회와 공간을 공유하다

양한주 입력 2021. 1. 12.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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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공동체 살리는 센터 처치' 신용산교회 오원석 목사
오원석 신용산교회 목사가 지난 7일 서울 용산구 교회 지하 1층 예배당 입구 옆에 걸린 그림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사진 촬영을 위해 잠시 마스크를 벗었다. 신석현 인턴기자


서울 용산구 신용산교회(오원석 목사)는 굴곡진 세월을 견뎌 본향으로 돌아왔다. 1948년 옛 교통부 유치원 공간을 빌려 창립 예배를 드린 교회는 6·25전쟁 때 부산으로 내려가 피난교회로 사역했다. 2년 만에 서울로 돌아와 용산에 예배당을 짓고 터를 잡았지만, 2009년 시작된 용산 재개발로 다시 11년간 떠돌아다니며 예배드려야 했다. 당시 담임목사였던 5대 김건식 목사의 대장암 투병까지 겹치면서 성도들은 임시 처소에서 기도하며 어려운 시절을 함께 견뎠다.

오원석(51) 목사가 2014년 3월 부임했을 땐 병환이 깊어진 김 목사가 사임하고 교회 재개발이 완전히 좌초될 위기에 있던 시기였다. 5대째 신앙가정에서 자란 오 목사는 건국대와 총신대 신대원을 졸업하고 부산 풍성한교회와 안산동산교회에서 부목사로 사역했다.

지난 7일 교회 목양실에서 만난 오 목사는 처음 교회에 와서 성도들을 마주했을 때를 떠올리다 눈물을 보였다. 오 목사는 “어려운 교회 상황을 해결해주길 바라는 성도들의 간절한 눈빛을 보며 ‘내가 이분들의 기도 응답이 돼야 하겠구나’ 하는 마음뿐이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부임 직후 예배당을 옮겨야 하는 상황이 되면서 오 목사는 20여곳의 장소를 돌아봤지만 마땅한 곳을 찾지 못했다. 동작구 성남고등학교의 강당을 빌려 주일 예배를 드리기 시작했다. 계속 지연되는 재개발 상황에서 더부살이 생활을 하는 것도 불안했지만, 더 큰 문제는 주일학교 목회였다. 고민하던 중 세월호 참사가 터졌다. 부활주간 특별새벽기도회 때 주일학교 학생들을 포함한 온 성도가 세월호 참사 피해 학생과 다음세대를 위해 기도하면서 교회는 변곡점을 맞았다.

오 목사는 “모든 성도가 눈물로 함께 기도하면서 다음세대를 영적으로 살려야 할 때라는 마음을 공유했다”며 “지금 교회의 맞은편 용산공고 뒤편의 건물을 매입해 리모델링한 후 같은 해 10월 입당예배를 드려 본격적으로 목양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새 교회에서 목회를 시작한 지 두 달 만에 요단강물이 열리듯 모든 상황이 극적으로 좋아졌다. 재개발 논의에 속도가 붙으면서 10여년 만에 다시 지금의 교회 자리에 건물을 지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오 목사는 이 일들이 모두 ‘기도의 축적’ 덕분이라고 했다. 교회는 긴 시간 광야를 떠돌며 예배당을 위해 기도해온 성도들의 기도와 헌신으로 제자리를 찾았다.

교회는 지난해 10월 헌당 예배를 드렸다. 교회 건물에 녹아 있는 ‘지역공동체를 살리는 센터 처치’라는 모토는 ‘진정한 교회, 샬롬 공동체’라는 교회 비전과 일맥상통한다. 오 목사는 “히브리어로 ‘대가를 지급함으로써 얻어지는 것’이라는 의미의 ‘샬롬’을 통해 대가를 내며 지역사회를 섬김으로써 참된 샬롬, 즉 평화를 얻는 공동체가 되자는 소망을 표현했다”고 설명했다. 교회는 3년 전 용산구청과 유휴공간을 공유하는 업무협약(MOU)을 했다. 오 목사는 공간 공유를 논의하는 용산구청 공유촉진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다.

오 목사는 “예수님이 대가를 지불하셔서 우리가 참된 샬롬을 얻었듯이, 우리의 것을 내어주고 나눌 때 지역사회에 꼭 필요한 교회가 되고 영혼 구원도 할 수 있다”며 “재개발 과정에서 지역사회와 끊임없이 소통했고, 성도들도 모든 걸 잃었다가 하나님의 은혜로 교회를 거저 받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교회의 공공성에 관한 공감대가 잘 확보돼 있다”고 말했다.

교회가 지역 주민들에게 개방하는 북카페. 신석현 인턴기자


교회는 각 공간을 지역사회에 활짝 열어 주민들과 나눌 수 있도록 준비했다. 옥상엔 무대와 잔디가 있는 하늘정원을, 5층엔 대규모 행사도 진행할 수 있는 식당을 마련했다. 주일학교 공간이 마련된 3층엔 소모임을 할 수 있는 스터디룸, 오픈 도서관과 독서실을 마련했다. 채플 공간도 세미나나 워크숍 등 필요한 모임을 위해 개방했다. 2층엔 북카페와 함께 미끄럼틀 등 놀이기구가 마련된 실내놀이터가 있어 아이들을 데리고 온 부모가 편안히 쉴 수 있도록 했다. 지하 1층 예배당 옆엔 누구든 와서 기도할 수 있는 개인 기도실과 묵상 기도실이 있다.

교회가 지역 주민들에게 개방하는 독서실 모습. 신석현 인턴기자


공간뿐 아니라 사역 면에서도 지역사회와 끊임없이 호흡하기 위해 노력한다. 오 목사 부임 후 교회는 꾸준히 지역사회를 돕는 사역을 펼쳤다. 교회 차원에서 진행하는 사역보단 구청이나 비영리기구 등 기존 단체에서 하는 일을 돕는 방식의 사역이 많다. 해마다 진행하는 노숙자 섬김도 그중 하나다. 코로나19 대유행 이후엔 지역 상인을 돕기 위해 식당의 쿠폰을 사서 구청을 통해 저소득층에 나눠줬다. 청소년을 위한 장학금도 마련했다.

오 목사는 “이미 잘해온 단체와 동역하면 교회 이름을 드러내긴 어려울 수 있지만, 헌금이나 인력 등이 낭비되는 부분 없이 더 효과적으로 사역을 할 수 있다”며 “구청이나 복지단체와 꾸준히 연락하면서 정말 필요한 게 무엇인지 파악해 실질적 도움을 주려고 노력한다”고 밝혔다.

코로나19로 공간 나눔과 기존 사역의 많은 부분이 막혔지만, 오 목사는 오히려 이 시기가 더 완벽하게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고 했다. 그는 “긴 시간 예배당을 꿈꿔온 성도들이었기에 교회를 더 사랑하고 예배당에 대한 간절한 마음을 품을 수 있었다”며 “코로나19 이후의 모습을 예단할 순 없지만, 품어왔던 소망처럼 교회의 공공성을 회복하고 지역 주민들이 교회 공간을 최대한 활용하며 그 안에서 은혜가 흘러갈 수 있도록 필요한 부분을 잘 준비하겠다”고 말했다.

양한주 기자 1week@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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