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시평] 기이한 정치쇼와 좌우 분별

2021. 1. 12. 0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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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우파의 좌우 대립 정치쇼
기득권 세력의 '적대적 공생 체제'
좌우 분별의 새로운 상식으로
피해자에서 정치의 주인으로
김규항 작가·『고래가 그랬어』 발행인

2016년 10월 박근혜 최순실 게이트로 촉발한 대규모 촛불집회가 시작된다. 이듬해 3월 헌정사상 처음으로 대통령이 파면 구속되고, 5월 문재인 정부가 출발한다. 사람들은 일련의 과정을 ‘상식의 회복’이라 말했다. 2019년 8월 조국 사태가 일어나고 정략적 검찰개혁을 비롯한 연이은 실정으로 문재인 정권에 대한 여론이 악화한다. 2020년 12월 정경심씨가 유죄 판결을 받고 윤석열씨가 업무 복귀한다. 사람들은 또 한 번 ‘상식의 회복’을 말했다.

상식은 ‘일반적인 사람이 다 가지고 있거나 가지고 있어야 할 지식이나 판단력’을 이른다. 상식은 하나가 아니다. 한 사람에게 상식인 게 다른 사람에겐 상식에 못 미치는 것일 수 있다. 한 사회에서 상식인 게 다른 사회에선 아직 상식이 아닌, 특별한 것일 수도 있다. 사회가 더 나아진다는 건, 상식이 아니던 것들이 상식이 되어가는 일이기도 하다.

한국 사회가 그 외형이나 교육 수준 등에 비해 특별히 빠진 상식이 하나 있다. ‘좌우 분별’이다. 한국은 자유민주주의 사회, 즉 자본주의를 기반으로 한 민주주의 사회다. 이런 사회에서 정치는 자본주의를 수용하는 경향의 우파와 극복하려는 경향의 좌파로 나뉜다. 우파와 좌파엔 여러 갈래가 있고 또 변화하지만, 크게는 그렇다. 흔히 새의 양 날개로 비유되기도 한다. 우파 정치와 좌파 정치가 잘 펼쳐져 작동할 때, 사회는 건강하게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우파 일변도 혹은 좌파 일변도의 사회는 물질대사가 막히고 결국 썩게 된다.

한국 정치는 우파 일변도의 상태에 있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격렬한 ‘좌우대립’ 상태에 있다. 우파인 우파와 좌파 행세하는 우파의 대립이다. 후자가 청년 시절 잠시 어설프게나마 좌파였던 건 사실이나, 민주화 이후 주류 사회에 진입하고는 늘 우파였다. 그들은 자본주의를 수용할 뿐 아니라 신봉한다. 그들은 기존의 우파를 넘어서는 기득권 세력이 되고도, 여전히 좌파 행세를 한다. 재미있는 건 기존 우파가 그런 좌파 행세를 폭로하거나 비판하긴커녕 매우 열심히 돕는다는 사실이다.

두 우파의 격렬한 좌우 대립. 이 기이한 정치쇼가 한국 정치의 본질이다. 두 세력은 이 정치쇼에 대부분의 사회 성원을 포박하고, 기득권과 자산을 빨아들인다. 정치쇼는 ‘적대적 공생 체제’로 유지된다. 두 세력은 기득권과 자산을 두고 적대적 경쟁을 벌인다. 그러나 기득권과 자산의 생산자인 다수 인민에 대해선 철저히 연대한다. 두 세력은 원수처럼 갈등하다가도 노동 관련 입법이나 정책에선 예외 없이 완전한 일치를 이룬다.

이 정치쇼 하에서 ‘상식의 회복’ ‘좌우가 아니라 상식과 몰상식’ 같은 외침은 허망한 일이 된다. 상식의 회복을 외친 사람들이 상식의 파괴자로 재등장하는 악순환을 피할 수 없다. ‘중도’의 노력도 싱거운 일이 된다. 좌우 대립의 폐해를 지양하는 현실적 노선은 가짜 좌우 대립 상태에선 성립할 수 없다. 상식의 회복을 넘어 새로운 상식, 좌우 분별의 상식이 필요하다. 좌우 분별이 모든 문제를 해결하진 않는다. 그러나 좌우 분별조차 없다면 다수에겐 아무 희망이 없다. 좌우 분별은 정치의 출발점이다.

지난 20여 년 동안 한국 정치는 두 우파 정치 세력 중 한쪽에 대한 실망이 다른 쪽에 대한 기대로 전환하는 방식으로 반복해 왔다. 노무현 정권에 대한 실망은 이명박 정권에 대한 기대로, 박근혜 정권에 대한 실망은 노무현 정권 재평가와 문재인 정권에 대한 기대로 이어지는 식이다. 그 인과관계가 합리적이었던 건 아니다. 기대는 대개 현재의 실망이 과거의 실망을 삭제하고 낭만화한 것에 불과했다. 3년여 시차를 두고, 두 세력 모두 상식 이하의 집단임을 스스로 증명했으니 이젠 그런 반복도 어렵게 된 셈이다.

20여 년이면, 관점을 바꿔 생각할 때도 되었다. 많은 우파 시민은 현 정권을 좌파라, 사회주의자들이라 부른다. 반대하고 비판하는 의도에서지만, 그 세력의 좌파 행세와 정치쇼에 놀아나고 있다. 옛 극우 파시즘을 잇는 우파 세력을 유일한 악의 근원으로 두고 스스로 박제가 되어버린 현 정권의 열성 지지자들은 그 거울 쌍이다. 둘의 몰상식을 개탄하는 사람들이라고 낫진 않다. 좌파 행세하는 우파 정치 세력에 매번 턱없는 좌파적 기대를 걸고는 실망과 배신감을 토로하길 20여 년 반복하는 사람들 말이다. 가장 이성적임을 자부하는 그들 역시 정치쇼에 놀아나고 있다.

주인이 되려면 주인으로 행동해야 한다. 봉건제나 군사 파시즘 하의 신민이 아닌 민주주의 정치의 주권자라면, 이 기이한 정치쇼를 거부해야 한다. 피해자 노릇도 그만해야 한다. 정치에 대한 실망과 배신감만 토로할 게 아니라, 애초 내 기대가 오류였음을 성찰해야 한다. 정치의 주인으로서 나는 어떤 사회를 전망하는지, 그 도정에서 내 삶은 어떠할지 사유해야 한다. 좌우 분별의 상식을 가진 시민에 의해 정치가 시작된다. 우파 시민과 좌파 시민은 비로소 혐오와 조롱을 거두고 서로의 차이를 존중하며 사회적 토론을 벌여갈 수 있다.

김규항 작가·『고래가 그랬어』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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