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한강 결빙
늦겨울 한강에 얼음이 꽁꽁 얼자(季冬江漢氷始壯)/많은 이들 강가에 나오네(千人萬人出江上)/쩡쩡 도끼질로 얼음 찍어내니(丁丁斧斤亂相斲)/울리는 소리가 용궁까지 가 닿겠네(隱隱下侵馮夷國)//(…)//왁자지껄 양반들 더위를 모르고 사는데(滿堂歡樂不知暑)/얼음 캐는 이 고생을 그 누가 말해줄까(誰言鑿氷此勞苦)/그대는 못 봤는가(君不見)/더위에 죽어가던 길가의 백성을(道傍暍死民)/많은 이가 바로 강에서 얼음 캐던 사람이네(多是江中鑿氷人).
조선 숙종 때 학자 농암 김창협(1651~ 1708)이 지은 한시 ‘착빙행(鑿氷行, 얼음 캐는 노래)’이다. 시 앞부분에 얼어붙은 한강에서 얼음 캐는 백성의 모습을 그렸다. 뒷부분에는 여름철 그 얼음을 즐기는 양반과 정작 얼음을 제 손으로 캐고도 더위에 죽어가는 백성을 대비시켰다. 한겨울 얼음을 캐고 옮기는 ‘장빙역(藏氷役)’은 부역 중 최악이었다. 얼마나 힘들었던지 이를 피해 도망치는 이가 속출해 ‘장빙과부’라는 말까지 생겼다.
조선 시대, 현재 동호대교 부근인 두모포(한강과 중랑천이 만나는 지점)에 동빙고 1개 동, 용산 둔지산(이태원 일대 구릉) 기슭에 서빙고 8개 동이 있었다. 한겨울 한강에서 캔 얼음을 이곳에 보관했다가, 여름에 왕실 등에서 사용했다. 동빙고는 연산군 때 서빙고 남쪽으로 자리를 옮겼다. 예조가 관리했던 동·서빙고는 대한제국 때인 1898년 폐지됐다. 그래도 1950년대까지 한강 얼음 채취는 계속됐고, 53년 서울시가 위생 문제로 금지했다.
얼어붙은 한강의 쓸모는 얼음 확보만이 아니었다. ‘한강 상류는 수일 내 한랭으로 결빙을 보게 되야 철교 밋까지 살어름이 잡혔는데, 인도교 상류 편에는 빙상도보로 통행을 하게 되었다는데, 몃날 못 되야 스케잇팅 하기에 안전한 결빙도 보게 되리라는 바, 경찰 측의 검빙 전까지는 너무 깁흔 데 들어가지 안토록 주의함이 필요하겟더라’. 1927년 12월 27일자 한 신문의 한강 결빙 예보다. 얼어붙은 한강은 스케이트장이었고, 강남·북을 오가는 통행로였다.
북극에서 몰려온 강력한 한파로 한강이 2년 만에 얼어붙었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사람 사이 온기를 느끼기 힘든 시절, 마음도 시리다. 얼음에 가려 보이지 않아도 그 아래로 강물은 흐른다. 날이 풀리고 강물이 모습을 드러낼 봄날도 꼭 온다.
장혜수 스포츠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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