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대통령 "비대면이라도 만나자"..북한은 방역 협력 비판
"방역 협력은 비본질적인 문제"
문 대통령 신년사서 "마지막 노력"
임기 5년차 맞은 조급함 표출
“김정은의 적대적인 발언에 문 대통령은 ‘언제, 어디서든 만나자’며 올리브 가지를 내미는 것으로 응답했다.”
미국의 대북 전문매체 NK뉴스가 11일 문재인 대통령의 신년사를 다룬 기사 제목이다. 실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지난 9일 공개된 8차 노동당 대회 사업총화 보고에서 남북관계 악화의 책임을 한국에 돌리며 핵무력 강화를 선언했지만, 문 대통령의 메시지는 여전히 ‘대화와 상생 협력’에 맞춰져 있었다.
문 대통령은 신년사에서 “남북 협력만으로 이룰 수 있는 일이 많다”며 “코로나 대응 과정에서 상생과 평화의 물꼬가 트이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또 “‘동북아 방역·보건 협력체’ ‘한-아세안 포괄적 보건의료 협력’을 비롯한 역내 대화에 남북이 함께할 수 있기를 바란다”며 ‘코로나 협력’을 촉구했다.
불과 이틀 전 김 위원장이 “현재 남조선 당국은 방역 협력, 인도주의적 협력, 개별관광 같은 비본질적인 문제들을 꺼내 들고 북남관계 개선에 관심이 있는 듯한 인상을 주고 있다”며 정부 제안을 깎아내렸는데, 문 대통령은 김 위원장이 콕 짚어 거부한 방역 협력을 또 제안한 것이다. 특히 김 위원장이 “첨단 군사자산 획득 노력을 가속화해야 한다느니 하던 집권자가 직접 한 발언들부터 설명하라”고 문 대통령을 직접 공격했는데도 말이다.
이번 신년사에는 임기 5년 차를 맞은 조급함과 답답함도 묻어났다. 문 대통령은 “언제든, 어디서든 만나고 비대면 방식으로도 대화할 수 있다는 우리 의지는 변함없다”고 말했다. 북한이 방역을 이유로 국경을 걸어잠그자 비대면 회담까지 언급한 것이다.
하지만 북한이 한국을 직접 위협하는 전술무기를 쥐고 흔든 상황에서 이를 비판하거나 최소한 유감을 표하기는커녕 여전히 대화와 협력만 강조한 것은 안일한 안보의식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김 위원장은 보고에서 국방력 강화 의지를 밝히며 초대형 방사포, 신형 전술로켓, 중장거리 순항미사일 등 신형 무기 개발 성과도 열거했다.
김동엽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이제는 평화경제나 교류협력, 지원을 이야기하는 게 한계가 있는 만큼 남북 간 합의 이행 문제 등 근본적인 것을 건드리는 게 더 바람직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신년사에는 바이든 행정부를 의식한 듯한 언급도 곳곳에 있었다. 문 대통령은 “정부는 바이든 행정부의 출범에 발맞춰 한·미 동맹을 강화하는 한편 멈춰 있는 북·미 대화와 남북대화에서 대전환을 이룰 수 있도록 마지막 노력을 다하겠다”고도 했다.
‘마지막 노력’이란 표현에서는 내년 5월 임기 종료 전 남북 관계 개선의 실마리를 찾으려면 조 바이든 당선인이 임기 첫해부터 북한 문제를 외교 우선순위에 올리도록 설득하는 게 관건이라는 정부 인식이 드러났다.
이와 관련해 NK뉴스는 “문 대통령은 지난해보다는 다소 덜 노골적이었다”고 보도했다. 실제 지난해 신년사에서 문 대통령은 북·미 대화 교착상태가 남북관계 후퇴로 이어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며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 재개를 언급했다.
올해 신년사에서 이런 구체적인 제안을 하거나 대북 제재와 충돌 소지가 있는 내용을 포함하지 않은 것은 취임 후 본격적인 한·미 협의를 앞두고 바이든 행정부가 ‘한국이 동맹보다 남북관계 개선을 중시한다’고 오해할 소지를 사전에 차단하려는 의도로 읽힌다.
유지혜·박현주 기자 wisep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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