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터의 험난한 셀프 인테리어 체험기

2021. 1. 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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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생처음 집을 사고 고치며 뼈저리게 느낀 것들. 집을 고치는 모험을 앞둔 모두를 응원하며.

집을 샀다. 1999년에 준공된 아파트다. 매물은 ‘특올수리’라는 스펙으로 광고 중이었다. 말없이 곳곳을 살피던 나에게 공인중개사는 말했다. “그냥 들어와 살기만 하면 되겠네요.” 현관 벽엔 벽돌 무늬 시트지가 붙어 있었다. 벽돌 무늬 시트지라니. 그러니까, 집은 참 멀쩡해 보였고 취향에 맞는 구석이라고는 하나도 없었다. 남편은 말했다. “깨끗해 보여도... 벽지는 새로 해야겠지?” 나는 덧붙였다. “화장실 공사는 무조건 해야겠는데.” 속이 어떨지도 궁금했다. 확장한 방은 단열 공사를 잘 했을까? 벽지 밑으로 곰팡이가 생기진 않았을까? 발코니 타일의 줄눈에 누수의 흔적이 있는 것 같은데 괜찮을까? 리모델링 공사를 해야 할 이유는 차고 넘쳤다.

“집 리모델링해? 에디터들은 시안으로 거의 책 한 권을 만들어 미팅한다던데.” 소식을 들은 한 선배는 이렇게 물었다. 또 다른 지인은 주택담보 대출을 받아 집을 사고 인테리어 공사에 가진 돈을 탈탈 털어 쓴 뒤, 가구 살 돈이 없어 뜻밖에 ‘미니멀리즘’을 지향하며 살고 있음을 고백하기도 했다. 태어나 처음 가진 집, 처음 하는 리모델링 공사이지만 나는 최소한의 꿈을 꾸기로 마음먹었다. 책 한 권은 커녕 내 시안은 15쪽에 불과했다. 아름답고 멋진 집에 대한 소망을 작게 접고 또 접어 납작하게 만들기 위해 얼마나 고심했던가! 그러고는 곧 일을 맡길 인테리어 디자인 업체를 찾아 나섰다. 인테리어 공사에는 크게 두 가지 방식이 있다. 하나는 도배사와 목수, 타일러, 페인터 등 필요한 전문 작업자를 섭외하고 자신이 관리자로 나서는 반 셀프 인테리어. 다른 하나는 디자인 업체를 끼고 진행하는 ‘턴키(Turn-key)’다. 집 열쇠를 인테리어 업체에 맡긴다는 단어 뜻 그대로 업체가 공사 책임자로 나서서 각 공정을 담당할 전문가로 팀을 꾸리고 공사 전반을 관리, 감독하는 시스템이다. 아이가 있는 맞벌이 회사원 부부인 우리의 선택은 당연히 턴키. 총 5개의 업체를 고르고 상담을 시도했다. 인기 좋은 인테리어 디자이너 중 한 명은 이메일을 읽고도 피드백이 없었다. 다른 한 명은 이미 일정이 꽉 차 진행할 수 없다고 했다. 공사 희망일로부터 서너 달 남은 시점이었다. 정신이 번쩍 났다. 인기 많은 업체에 인테리어 리모델링을 맡기고 싶은 사람이라면 최소 여섯 달 전에 넌지시 미팅 요청이라도 해두는 게 좋을 것이다.

나머지 업체와의 미팅에서 이야기 나눈 내용은 거의 비슷했다. 원하는 공사 범위와 방식, 자재를 이야기하고 창호 교체와 에어컨 배관, 조명 등의 설비, 주방 싱크대를 비롯한 가구 제작에 관한 옵션을 조율했다. 상담 중 마지막으로 받은 질문은 모두 같았다. “예산이 어느 정도 되나요?” 인테리어 공사에 드는 돈의 기본적인 수준을 모르는 내게는 당황스러운 질문이었다. 이미 구체적인 이야기를 나눴음에도 예산을 묻는 건 결국 클라이언트가 원하는 공사의 내용이 아니라 금액에 견적을 맞추겠다는 걸까? 훗날 한 업체와 미팅하면서 알게 된 사실이지만, 꽤 고급스럽게 완성한 인테리어 포트폴리오를 자랑하는 업체들의 공사는 그 견적이 ‘억’대급인 경우도 많다고. 마음에 드는 인테리어 리모델링은 내 집 마련에 버금가는, 일생일대 버킷리스트의 영역인 것이다. 며칠이 지나자, 작고 소중한 우리 집의 견적서가 하나둘 날아들었고 예상 비용을 보며 ‘현타’를 맞기도 했지만 훗날 겪은 시련에 비하면 그 무렵은 아주 행복한 시기에 속했다.

내가 계약한 업체는 건축사무소를 함께 운영하고, 실내건축공사업 면허를 가진 공간 디자이너의 스튜디오였다. 오래된 아파트라는 점이 마음에 걸려 건축적 관점에서 최대한 보수적으로 리모델링하면서 설비 등의 문제를 꼼꼼히 점검할 수 있을 거란 기대가 있었다. 주방 레이아웃을 다시 짜는 것 정도를 제외하면 추가 확장도, 창호 교체도, 으리으리한 목공 작업도 하지 않기로 했고, 공사 내용이 단순해서 별 문제없이 진행될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하지만 ‘특올수리’ 스펙을 자랑하던 집에서는 철거하던 날부터 문제가 발견됐다. 디자이너는 사무실에 있는 내게 집 상태를 사진으로 계속 보내왔다. “욕실 천장을 제거하니 누수가 있어요.” “확장된 방의 벽면을 뜯어보니 단열재가 스티로폼과 은박 필름뿐이네요. 단열 다시 할게요. 대신 거실 벽 목공은 안 합니다.” “천장은 생각보다 괜찮아서 안 뜯고 둘게요.” 견적서에 있던 모든 공사 내용이 바뀌었다. 디자이너는 재량껏 계획했던 작업을 보류 혹은 패스하거나 추가로 진행했다. 이래서 ‘턴키’구나. 계약을 마친 최종 견적서의 금액을 크게 초과하지 않고, 예정된 일정에 일을 마치려면 어쩔 수 없었던 걸까. 하지만 6차례의 미팅과 현장 답사 끝에 정한, 공사 내용이 철거하는 이틀 동안 후르륵 바뀌니 혼란스러웠다. 나는 디자이너에게 적당한 경각심과 신뢰감을 보이며 공사를 성공적으로 마무리 하고 싶었지만 믿음이 무너지는 순간은 번번이 생겼다. 어느 날은 수십 개의 샘플 중에서 숙고해서 고른 욕실 타일이, 샘플과 다른 색으로 도착한 것을 현장에서 발견했다. 욕조가 삐딱하게 들어가 다시 넣어달라고 했더니 벽 자체가 비스듬해 어쩔 수 없다는 답변이 돌아오기도 했다. 공사가 진행될수록 스트레스가 치덕치덕 쌓였다.

처음 인테리어 업체 선정에 골몰하며 추천을 부탁하던 내게 어떤 선배가 그랬다. “그런데 있잖아. 누구랑 하든 네 마음에 들지 않을 거라는 사실을 명심하고 시작해야 해.” 그게 문제다. 자신에게는 수많은 프로젝트 중 하나일지 몰라도 클라이언트에게는 평생 한두 번 있을까 말까 한 일이고, 삶의 터전에 손대는 일이라는 사실을 알아줄 사람을 찾는 게 과연 가능하긴 한 걸까. 공사를 마친 시점에서 내린 결론은 취향이나 미감보다 일하는 스타일과 완성도에 대한 기준점이 맞는 곳을 찾는 일이 더 중요한 것 같다는 사실이다. 집 공사가 한창일 때 발견한 유튜브 채널이 있다. ‘거실 등을 라인 조명으로 바꿔야 하는 이유’ ‘일반 싱크대 가격으로 키친 바흐 같은 프리미엄 주방 만들기’ 등등. 실제로 인테리어 디자인 업체를 운영하는 대표가 기술적인 트렌드와 구시대적이지 않은 시공 방식, 자재의 종류, 심지어 대략적인 공사 단가까지 알려주는 훌륭한 채널이다. 시안보다 먼저 시공 방식에 대해 자세히 공부해야 했다는 후회가 밀려왔다. 이 유튜버의 콘텐츠를 ‘정주행’하다가 ‘뼈 때리는’ 말을 들었다. “너희들 입맛에 딱 맞는 인테리어 회사는 어디에도 없어. 기준이 저렴한 가격, 높은 퀄리티, 빠른 A/S잖아. 근데 가격이 저렴하면 이윤이 적으니까 일을 많이 해야겠지? 그럼 높은 퀄리티와 빠른 A/S가 불가능하겠지? 빠른 A/S가 되려면 직원들이 많아야 할 텐데 그럼 가격이 저렴할 수가 없는 거야.”

한국에서 인테리어 업체는 사실상 디자인과 시공을 모두 맡는다. 디자이너와 엔지니어의 DNA와 역량을 다 갖춰야 한다는 말이다. 아름답고 품질까지 좋아 만족스러웠다는 인테리어 후기를 쉽게 들을 수 없는 이유는 여기에도 있는 것 같았다. 주말을 제외하고 20여 일에 걸쳤던 공사 기간 동안 몸무게는 3kg이나 줄었다. 공사가 끝났지만 A/S 기간으로 주어진 1년 동안 해야 할 일들은 계속 생기고 있다. 지난 달에는 마루 일부를 뜯어내고 다시 시공했고, 이 달에는 주방 싱크대 하부장을 재공사한다. 원치 않았던 애프터서비스의 홍수 속에서 내게 남은 건 ‘다음 집 공사는 정말 잘 해봐야지’ 하는 생각과 ‘다시는 집 공사를 하고 싶지 않다’는 양가적 마음을 견디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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