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호정] 전북 사살락 영입 실패의 학습효과는?

서호정 기자 입력 2021. 1. 11. 1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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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식 감독(전북현대). 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풋볼리스트] 서호정 기자 = 지난해 국내 무대에서 더블을 달성한 전북 현대의 겨울 이적시장은 예년에 비해 조용한 편이다. 내부 승격을 통해 지휘봉을 잡은 김상식 감독은 취임 기자회견에서 "전북은 충분히 강한 스쿼드를 갖고 있다. 작은 변화로도 확실히 효과를 볼 수 있다"고 말하며 경쟁력 있는 소수의 영입을 예고했다.


실제 전북은 시즌 종료 후 3개 포지션에 대한 보강 계획을 세웠다. 이동국이 빠지고 조규성이 입대 예정인 최전방의 외국인 스트라이커, 김진수가 시즌 중 떠난 왼쪽 풀백, 그리고 22세 이하 카드로 활용할 수 있는 측면 공격수를 찾았다. 손준호의 이적 여부에 따라 임대를 마치고 복귀한 최영준의 뒤를 받칠 중앙 미드필더 보강까지 최대 4명이 올 것으로 예측됐다.


이적시장에서의 행보와 소득은 절반 정도다. 최전방의 외국인 스트라이커는 지난 시즌 리그 득점 2위였던 포항 스틸러스의 일류첸코 영입이 사실상 확정됐다. 광주FC의 펠리페 영입이 난항으로 향하자 전북은 빠르게 일류첸코로 방향을 돌려 영입에 성공했다. 손준호의 산둥 루넝 이적에 맞물려 대구FC의 만능 미드필더 류재문도 영입됐다. 22세 이하 카드는 우선 영입 대상이었던 포항의 송민규, 광주의 엄원상 모두 소속팀이 이적 불가를 선언하며 무산됐다. 기존의 이성윤과 올 시즌 새롭게 합류하는 신인 선수들이 대신 역할을 해 줘야 한다.


문제는 왼쪽 풀백이다. 당초 김상식 감독은 포항의 강상우를 가장 원했다. 포항이 책정한 이적료를 전북 구단도 수락했고, 선수 역시 팀 간 협상이 마무리된다면 이적을 받아들일 수 있다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김기동 감독이 재계약 협상 과정에서 강상우와 송민규를 지켜 달라고 요청하며 전북의 플랜A는 좌절됐다.


전북의 플랜B는 정우재였다. 정우재는 연맹이 공시한 바에 따르면 2020시즌 종료 후 보상금이 붙는 자유계약 대상자(FA)였다. 그러나 제주 구단에 확인한 결과 계약서에는 구단 의지에 따른 1년 자동 연장 옵션이 있었고, 연맹도 유권 해석에서 이를 인정했다. 아직 정우재 측과 제주 구단은 이 옵션에 대해 이견을 보이며 갈등 중이지만, 제주가 선수를 이적시장에 내놓더라도 시일이 걸리고 보상금을 훌쩍 넘는 거액의 이적료가 발생할 것으로 보인다.


그런 상황에서 전북이 내놓은 플랜C가 흥미로웠다. 태국의 강호 부리람유나이티드 소속의 풀백 사살락 하이쁘라콘이었다. 태국 국가대표인 사살락은 좌우 측면 수비를 모두 보는 선수다. 과거 전북과의 아시아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ACL)에서 로페즈(현 상하이상강)를 꽁꽁 묶는 활약으로 김상식 당시 수석코치와 스카우트팀의 눈을 사로잡았다.


전북은 사살락 영입을 적극적으로 추진했다. 많은 화제를 일으킨 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동남아시아 선수 영입은 상업적인 마케팅용이라는 인식이 강한데, 리그에서 가장 강한 스쿼드를 지닌 전북이 국가대표 이주용과 경쟁할 선수로 태국 선수를 택했기 때문이다. 실제 최근 K리그 무대로 온 베트남 국가대표 쯔엉과 콩푸엉은 전북에 비해 객관적인 전력과 스쿼드가 한, 두수 아래인 인천 유나이티드와 강원FC에서도 경쟁력을 보여주지 못했다.


김상식 감독은 "사살락의 기량에 대해서는 거의 확신하고 있다. 선발 자리를 놓고 이주용과 경쟁할 수 있는 특장점을 지녔다"라고 평가했다. 최근 J리그에서 활약 중인 티라톤 분마탄(요코하마 F.마리노스), 차나팁 송크라신(콘사도레 삿포로)처럼 경기력을 기반으로 상업성까지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 선수였다는 뜻이다.


사살락과 함께 뛰었거나, 그를 상대한 선수들도 좋은 평가를 했다. 부리람과 함께 태국 프리미어리그에서 우승 경쟁을 펼친 치앙라이 유나이티드의 핵심 이용래(11일 대구FC로 이적 확정)는 "기술과 스피드 면에서 K리그1에서 경쟁력을 발휘할 수 있는 선수다. 피지컬 부분은 직접 확인해야 하겠지만 그 부분을 극복할 수 있는 영리함도 지녔다"고 평가했다. 부리람 시절 함께 뛴 대구의 브라질 공격수 에드가는 "이적이 확정되지 않아서 자세히 말할 순 없지만 좋은 재능을 지닌 것은 분명하다"고 말했다.


프로축구연맹이 동남아 시장 공략이라는, 이른바 남방정책을 위해 2020년 1월 신설한 '아세안쿼터'의 첫 활용이라는 점도 화제였다. 스폰서 유치 등이 간절한 시도민구단이나 가성비 중심의 영입을 펼치는 팀들이 활용할 거라 전망했지만 도입 첫 해인 2020년에는 아무도 시도하지 않았다. 오히려 수준 높은 스쿼드를 지닌 전북이 아세안쿼터를 가장 먼저 활용하려 한다는 점에서 한국과 태국 양국 모두 화제였다.


결과적으로 사살락 영입은 좌절됐다. 전북은 이적을 위한 팀 간 조건(이적료)과 선수와의 조건(연봉 등)에서 모두 합의점을 찾았다. 하지만 협상 마무리를 앞둔 시점에 부리람 측에서 조건을 변경했다. 이번 겨울이 아닌 빨라야 3월, 아니면 6월에나 선수를 보내줄 수 있다는 입장이었다.


코로나19로 인해 리그 일정이 미뤄진 태국 프리미어리그는 이번 시즌부터 추춘제로 시스템을 변경하며 현재 시즌이 진행 중이다. 지난 시즌 치앙라이에게 우승을 내 주며 3연패에 실패한 부리람은 올 시즌은 아예 선두권 경쟁에도 끼지 못한 상태다. AFC 챔피언스리그 출전권 획득도 어두워지자 지난해 10월 감독 교체를 단행했다. 반도비치 감독이 물러나 과거 부리람의 영광을 일군 알렉산드레 가마 감독이 돌아왔다. 팀 성적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상황에서 주전 수비수인 사살락을 시즌 중에 보내지 않겠다는 입장이었다.


사살락 하이쁘라콘(부리람유나이티드). 게티이미지코리아

이 과정에서 전북은 아세안쿼터 활용의 참고사항을 몇 가지 경험했다. 향후 K리그의 다른 구단들이 참고하면 좋을 내용들이다.


우선 선수의 몸값이 결코 싸지 않다. 전북이 사살락 영입을 위해 최종적으로 제시한 이적료는 10억 원에 육박한다. 연봉은 높지 않은데 이적료가 웬만한 K리그 상위권 팀의 주전 선수 몸값이다. 최근 2년 동안 K리그에서 이적료 10억 원 이상 기록한 선수는 최영준(경남→전북), 김승대(포항→전북), 김동준(성남→대전), 비욘 존슨(알크마르→울산), 구스타보(코린치안스→전북), 바로우(레딩→전북) 뿐이다.


이는 태국을 비롯한 동남아 구단들의 독특한 사고방식에 기인한다. 사업이나 정치 활동을 통해 부를 쌓은 구단주들의 장악력이 절대적인 태국, 베트남,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등의 팀들은 우수한 선수의 소유를 영구적으로 가져가길 원한다. 타 구단으로 이적시키는 것을 극도로 싫어한다. 적절한 타이밍에 우수한 선수를 이적시켜 이윤을 극대화 해 구단을 지속 운영하는 것이 목표인 상식적인 사고와는 궤가 다르다. 그러다 보니 유럽, 혹은 아시아 상위 리그로 가는 이적도 임대만 허락하거나 거액의 이적료를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 J리그에서 뛰는 태국 선수들의 경우 이적료가 무려 20억 원 이상이었다.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다음 교훈은 오너 리스크가 너무 크다는 것이다. 사살락의 이적 협상을 막판에 뒤집은 인물도 부리람의 구단주인 네윈 치드촙으로 알려졌다. 부리람이 고향인 태국의 거물 정치인 치드촙은 2012년 팀을 인수해 태국의 절대 강호이자, 아시아의 다크로스로 키웠다. 외부로 비쳐진 명성만큼 부작용도 크다. 구단 운영에서의 주요 결정을 쥐락펴락 하고, 감독의 권한을 수시로 침범해 경기 중 선수 교체도 구단주의 마음이다. 동남아 시장 공략의 대의를 품어도 이성적이거나 합리적인 거래를 하기 어려운 상대가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세안쿼터는 K리그가 계속 도전해야 할 과제다. 불발로 끝났지만 사살락의 전북 이적에 대한 태국 현지의 호응은 상당했다. 대표팀에서 분마탄과 경쟁 중인, 차세대 주전 풀백이 K리그 디펜딩 챔피언으로 갈 수 있다는 데 태국 축구 발전의 증거라는 상징성을 부여했다. 사살락의 전북 이적 가능성을 취재하기 위해 개인적으로 접촉해 온 태국의 기자들은 아쉽다는 반응을 보였다.


전북 구단도 이번 시도가 거액의 지원을 하는 모기업에게 축구단이 반대로 뭔가 기여할 수 있는 기회일 수 있음을 인식했다. 현대자동차는 동남아 시장 공략에도 열을 올리고 있는데 일본 자동차 브랜드들의 시장 점유가 유독 높은 태국에서는 고전 중이다. 태국의 라이징 스타인 사살락 영입 시도는 모기업의 인지도 상승에 도움을 줄 수 있었다.


'가성비가 좋을 것'이라는 예상을 벗어난 이적료, 협상 단계에서 종잡을 수 없는 오너 리스크를 뚫기 위한 다리도 놔야 한다. 울산 현대의 경우 홍명보 신임 감독이 국내에서 자가 격리 중인 박항서 베트남 국가대표팀 감독과 최근 연락을 취하며 베트남 선수 영입에 대한 가능성을 짧게 타진했다고 한다. 박항서 감독은 선수 개인의 정보와 경쟁력을 확인시켜주는 동시에 영입 시 필요한 '요령'도 알려줬다.


K리그는 내수 시장 경쟁력을 확실히 다지는 게 우선 과제다. 하지만 글로벌 스포츠인 축구의 강점인 대외적 확장성을 위해 품어야 할 시장으로서 동남아 축구가 가진 잠재력을 계속 주목해야 한다. 전북의 사살락 영입 좌절을 통해 확인한 내용들은 다음의 아세안쿼터 영입 시도를 위한 학습 기회로 삼을 필요가 있다.


사진= 전북현대 제공, 게티이미지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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