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의 "다음에"는 언제 오는가
[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 <편집자말>
[박소희 기자]
▲ 고 김용균씨의 어머니 김미숙 김용균재단 이사장이 8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법사위 전체회의 참관 중 후퇴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에 대해 발언하려다 제지당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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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신 여러분이 분노하신 만큼 4.13 총선에서 야당에게 표를 주십시오. 야당이 이겨야 평화롭고 행복한 대한민국을 만들 수 있습니다. 더불어민주당에 힘을 주시고 야당을 키워 주셔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대한민국은 영원히, 내 아들 딸이 기를 못 펴는 나라가 됩니다. 기득권 권력에 복종하는 자의 나라가 됩니다. 그런 대한민국에 무슨 미래가 있습니까."
그로부터 5년 가까이 흘렀다. 그 사이 다수당의 얼굴이 달라지고, 촛불을 거쳐 정권교체가 이뤄졌다. 다수당이 되면 가장 먼저 폐지하겠다고 했던 테러방지법 이야기를 꺼내는 이는 몇 년째 찾기 힘들다. 오히려 코로나19처럼 위중한 감염병이 돌 때 검사를 거부하는 행위 등을 테러로 간주, 테러방지법 적용 대상을 넓히는 개정안(이병훈 의원 발의)이 민주당에서 나왔다.
장담한다. 지금이라도 '테러방지법은 어떻게 할 겁니까?'라고 물어보면 민주당 사람들은 이렇게 말하리라.
"다음에."
▲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대표(왼쪽)와 김태년 원내대표가 11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논의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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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은 줄곧 '우리가 집권을 하면' '우리가 다수당이 되면'이라고 말해왔다. 이 모든 것이 실현된 2021년 1월, 민주당은 압도적 지지를 받고 절대적 실망을 안겨준 여당이 됐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처리 과정이 그 면모를 낱낱이 보여줬다. 부동산 관련법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법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민주당 지도부가 여러 번 강조했던 "책임 정치"는 중대재해법 앞에서 멈췄다.
당 대표가 지난해 9월 7일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콕' 집어 얘기한 법안이었다. 하지만 민주당은 줄곧 침묵했고, 오히려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이 더 현실적'이라는 주장이 솔솔 피어나왔다. 그 무렵 이낙연 대표도 갑자기 언론 인터뷰에서 "중대재해법을 뒀을 때 기존의 산안법과 중복 처벌 우려가 있다(10월 27일자 <한겨레>)"고 했다.
▲ 국민의힘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과 주호영 원내대표가 11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비상대책위원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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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수 여당은 '조연'을 자처했다. 지난해 크리스마스 이브날 농성장을 찾은 김태년 원내대표는 법 제정을 촉구하며 14일째 단식 농성 중이던 '김용균 어머니'와 '이한빛 아버지'에게 "야당이 법안 심의를 거부하는 상태라 여러 악조건이 있다"고 했다. 김미숙 김용균재단 이사장은 "여태까지 여당이 많은 법을 다 통과시켰는데, 왜 이 법은 꼭 야당이 있어야 하냐"고 되물었다. 민주당은 별다른 답변을 내놓지 못했다.
지난 8일 오전 법사위 전체회의에서는 최강욱 열린민주당 의원이 5인 미만 사업장을 배제한 여야 합의안을 그대로 처리하려는 윤호중 법사위원장에게 이의를 제기했다. 윤 위원장은 "양 간사들이 노력을 많이 했는데 동의가 안 됐다"며 국민의힘 간사 김도읍 의원에게 "수용 가능하냐"고 물었다. 김 의원은 기가 차다는 듯 "민주당이 밀어붙여서 날치기하든가, 지금까지 했던 대로 하세요"라고 답했다.
결정권이 소수인 보수야당에 있는 듯한 장면이 연출됐다. 발의된 법안들이 공통적으로 갖고 있던 '기업'이란 두 글자는 쏙 빠지고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이 법안명이 됐다. 항의하던 김미숙 이사장 등은 회의장 밖으로 쫓겨났다.
▲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안이 통과된 후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8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본관 앞 중대재해기업처벌법제정운동본부 해단식에 들러 고(故) 이한빛 PD의 아버지 이용관씨와 고(故) 김용균씨의 어머니 김미숙 김용균재단 이사장, 강은미 정의당 원내대표와 대화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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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안 심사를 주도한 백혜련 민주당 의원은 본회의에서 "한 술에 배부를 순 없다"면서도 "이 법이 우리 사회를 안전사회로 한 단계 나아가게 하리라는 믿음이 있다"고 말했다. 송기헌 의원도 법안 통과 후 입장문을 내고 "비록 미흡할지라도 이 법으로 우리 사회는 보다 안전한 사회로 분명히 한 발 나아갈 것"이라고 밝혔다.
맞다. 때로는 한 발짝을 내딛는 일조차 어렵다. 첫 걸음에 담긴 선의와 노고를 의심하진 않는다. 문제는 두 번째 걸음을 향한 의지다. 법 시행 자체가 1년 뒤이고, 50인 미만 사업장 유예기간은 3년이다. 이즈음이면 21대 국회 임기가 끝나는데, 중대재해법의 "다음에"는 그 안에 올까? 많은 사람들은 테러방지법의 선례를 보며 기대조차 하지 않는다.
그 사이에 또 노동자가 일하다 죽는다. 10일 오후 8시 4분께 전남 여수시의 한 공장에서 석탄운송장비 입구의 잔탄을 제거하던 30대 노동자가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세상을 떠났다. 그에게 "다음에"는 없다.
이미 너무 많은 사람들의 "다음에"는 사라졌고, 사라질 것이다. 그런데도 민주당의 "다음에"는 도대체 언제 오는가. 오긴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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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안(대안)이 가결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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