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환매 중단에 청산 지연..KB증권 판 무역금융펀드 DLS, 손실 커지나

염지현 2021. 1. 11.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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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증권 직원들이 지난해말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금융감독원에서 열린 라임자산운용 펀드 판매 징계수위 논의 제3 제재심의위원회에 출석하고 있다. 뉴스1.

KB증권이 판매한 1000억원 규모의 무역금융펀드 파생결합증권(DLS)의 청산 작업이 지연되면서 투자자 손실 우려가 커지고 있다. 200명이 넘는 투자자는 지난해 4월 환매가 중단된 뒤 9개월째 수익은커녕 원금도 찾지 못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에 잠 못 드는 날을 보내고 있다.

11일 KB증권에 따르면 회사가 판매한 'KB able DLS 신탁(TA인슈어드 무역금융)' 상품 1000억원 규모가 지난 4월 만기 상환에 실패한 뒤 6월 15일 청산절차에 들어갔다.

무역금융펀드DLS.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해당 상품은 홍콩운용사 트랜스아시아(TA)가 수출입기업의 매출채권에 투자하는 무역금융펀드를 기초자산으로 만든 DLS 상품이다. NH투자증권이 발행하고, KB증권에서 2019년 신탁으로 판매했다. 무역거래가 정상적으로 이뤄지면 무역대금 원금과 무역금융 제공에 따른 이자를 지급해 연 4%대 수익률을 기대할 수 있었던 상품이다.

하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세계 유행)으로 세계 무역이 침체하며 자금 회수에 제동이 걸렸다. 대출해준 기업(차주)들이 유동성 위기에서 벗어나지 못하자 운용사는 결국 펀드 청산을 결정했다.

청산은 홍콩계 회계법인인 베이커틀리의 실사를 통해 자산가치를 평가한 뒤, 편입 자산을 매각해 펀드를 정리하는 것이다. 실사 결과가 나와야 자산 회수 여부와 투자 손실을 확정할 수 있다. 중앙일보가 KB증권 고객에게 입수한 ‘청산절차 일정’을 보면 TA는 지난해 9월 초까지 자산실사를 끝낸 뒤 법률 서류 검토를 거쳐 지난해 10월 12일 청산 절차를 끝내기로 약속했지만 아직 펀드는 청산되지 않았다.

KB증권이 고객에게 무역금융펀드 DLS 청산을 알리는 편지 일부. 취재원 제공

환매가 중단되고 청산 작업도 지연되면서 상품의 허점이 하나둘씩 모습을 드러냈다.

판매사는 해당 상품이 국제신용등급이 ‘A-’ 이상인 글로벌 보험사가 원금을 보장한 자산에 대해서만 투자(대출)하는 상품임을 강점으로 내세웠다. 하지만 정작 코로나19 사태가 터지니 보험 기능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보험사들이 코로나19가 ‘천재지변’이란 이유로 보험금 지급을 꺼린 탓이다. 결국 보험금 지급을 두고 법적 다툼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판매사는 물론 발행사도 펀드의 보험사 가입 내역을 정확하게 확인하지 못해 생긴 결과다.

익명을 요구한 금융사 PB는 “사모펀드 특성상 투자한 대상(업체)은 물론, 제대로 보험에 가입돼 있는지조차 공개하지 않아 전적으로 운용사만 믿어야 한다”며 “결국 투자리스크가 큰 상품을 철저한 검증없이 소비자에게 판매한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투자 위험이 큰 상품임에도 가입자의 절반가량은 안정적인 투자 성향의 은행 고객인 것으로 알려졌다. 은행과 증권사가 한 지붕을 쓰는 KB금융그룹의 WM(자산관리) 복합점포를 통해 가입한 것이다.

KB증권 관계자는 “이 상품(무역금융펀드 DLS)은 안전하게 4%대 수익을 낼 수 있는 상품으로 소문이 나면서 초반에는 유치 경쟁이 치열했다”며 “특히 복합점포에서 은행 프라이빗뱅커(PB) 소개로 같은 점포 내 증권사 직원을 통해 가입한 고객이 전체 투자자의 절반은 차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은행 직원이 은행 고객을 복합점포의 증권사 직원에게 소개해 상품 가입을 유도한 데는 복합점포간 경쟁 압박이 작용했던 것으로 풀이된다. KB금융은 2015년 14개에 불과했던 복합점포를 지난해 3분기 말 81개까지 늘리며 은행과 증권사 간 윈윈(win-win) 전략을 강화했다. 특히 계열사 간 고객 소개를 통한 상품을 판매해야 시너지 점수가 올라가기 때문이다.

상품에 대한 철저한 검증 없이 업무 성과를 내기 위해 고객에게 위험한 제품의 가입을 유도한 피해는 판매사만 믿고 가입한 소비자에게 돌아갔다. 이 상품에 2019년 3억원을 투자한 K씨(65세)는 “1년만 맡겨도 4%대 수익을 안전하게 얻을 수 있다고 해서 가입했다”며 “아내 몰래 투자한 은퇴 자금인데 하루하루 속이 바짝바짝 타들어 간다. 이제 하루빨리 원금만이라도 돌려받고 싶다”고 토로했다.

발행사와 판매사는 미온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해당 펀드를 발행한 NH증권 관계자는 “청산절차가 계획대로 진행되지 않아 소송검토 등 다양한 처리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KB증권 측은 "무역금융 경기가 좋을 때는 상환이 잘되는 펀드였고, 좋은 상품이라 판단해서 은행 고객에게도 공급됐다"며 "합리적인 수준의 유동성 지원을 포함한 고객 보호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염지현 기자 yjh@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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