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새 대표 3번 바꾼 쿠팡, '관리의 쿠팡'으로 변신하나

노승욱 2021. 1. 11.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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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몰 규제 막아라..이젠 '관리의 쿠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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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년 8개월간 쿠팡의 대표이사 숫자 변화다. 김범석 쿠팡 창업주 단독대표 체제에서 2019년 4월 고명주, 정보람 대표를 영입해 3인 체제로, 지난해 10월 강한승 대표를 영입해 4인 체제로 바꾸더니 불과 두 달 만에 다시 2인 체제로 변경됐다. 김범석 대표는 이사회 의장으로서 회사의 전략적 방향을 세우는 데 전념하고, 박대준 각자대표는 신사업을, 강한승 각자대표는 쿠팡 운영과 인사 노무 관리를 총괄한다는 것이 쿠팡 측 설명이다. 고명주 대표는 개인 사유로 사임한다. 쿠팡은 사내레터를 통해 “보다 세분화되고 전문화된 역할 분담을 통해 쿠팡의 사업을 더욱 발전시키기 위한 결정”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쿠팡의 잦은 선수 교체를 두고 업계에서는 다양한 해석이 제기된다. 먼저 쿠팡이 지난 2년간 3배 가까운 급성장을 한 만큼, ‘상황 변화에 대한 기민한 대응’이라는 긍정적 해석도 있다. 다른 한쪽에서는, 쿠팡의 인사 배경에 대한 설명이 납득하기 어렵다는 이의도 제기된다. 4인 체제에서 2인 체제로 각자대표 수를 줄인 것은 ‘세분화, 전문화된 역할 분담’에 오히려 역행하는 데다, 지난해 10월 강한승 경영관리총괄 대표를 영입하며 경영 전반을 위임, 김범석 대표가 이미 사실상 이사회 의장과 같은 역할을 해왔다는 분석에 기반한다. 특히 4인 체제로 바꾼 지 불과 두 달 만에 재교체라는 점도 이례적이다. 이에 업계 일각에서는 ‘고명주 대표 사임을 가리기 위한 연막 작전’ 아니냐는 해석도 제기된다.

쿠팡은 왜 또다시 경영진 구성을 바꾼 것일까.

▶성장기 넘어 성숙기 접어든 쿠팡

▷인프라 투자 정점 지나며 관리에 집중

쿠팡 경영진 교체 배경을 이해하려면 먼저 쿠팡의 인사권을 쥔 사람이 누구인지부터 명확히 해야 한다. 김범석 의장이 쿠팡의 창업주 겸 경영진 대표이기는 하지만, 투자 유치 과정에서 지분이 많이 희석된 만큼 ‘실질적 오너’는 아니라는 것이 업계 중론이다. 특히 조 단위 적자를 내고 있는 쿠팡에 있어 아킬레스건은 자금 조달이다. 따라서 비전펀드, 블랙록, 세콰이어 등 투자사 영향력이 절대적인 상황. 그중에서도 지금까지 가장 많은 투자를 한 비전펀드의 실질적 운영자인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이 쿠팡의 최종 인사권자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지난 1년 8개월간 세 번이나 경영진이 바뀐 것도 손 회장을 비롯한 투자사들의 입김이 작용했을 것이라는 추정이다. 이는 쿠팡의 성장 과정에 따른 일종의 ‘인사 컨설팅’일 수 있다. 업계 관계자는 “투자자들은 스타트업에 투자하며 경영 컨설팅도 해준다. 그간 수많은 스타트업에 투자하며 직간접적으로 경영에 참여, 노하우가 쌓였기 때문이다. 창업주도 투자자가 ‘물주’니 이를 거부하기 어려운 데다, 실제 이들 조언이 도움 되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손정의 회장은 왜 지난 1년 8개월간 쿠팡 경영진을 세 번이나 바꿨을까. 결론부터 얘기하면 쿠팡의 성장 단계에 따른 ‘맞춤형 인사’라는 것이 업계 중론이다. 물류센터, 쿠팡맨 등 인프라 투자와 매출이 급증하던 성장기(2018~2020년)에는 김범석 단독대표 체제에서 3명, 4명까지 경영진을 ‘확장’했다, 나스닥 상장과 규제 리스크 대응이 중요해진 성숙기(2021년~)에는 다시 축소해 ‘관리’에 집중하려 한다는 설명이다.

실제 2019년 4월 고명주, 정보람 각자대표를 영입, 각각 인사와 핀테크 업무를 맡기자 업계에서는 김범석 대표의 경영 역량 한계론이 제기된 바 있다. ‘쿠팡맨 확충, 로켓페이 활성화 등 당면한 전략적 과제를 김 대표가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있는 데 따른 문책성 인사’ 아니냐는 해석이었다. 지난해 초 박대준 각자대표를 영입, 쿠팡이츠 등 신사업을 맡기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반면 강한승 각자대표 등판은 손 회장이 ‘쿠팡이 성장기를 지나 성숙기에 접어들었다’고 판단한 대목으로 여겨진다. 강 대표가 ‘경영관리총괄’이라는 직책을 부여받은 데다, 정관계 로비에 특화된 그의 남다른 경력 때문이다. 강한승 각자대표는 쿠팡 합류 전 청와대 법무비서관과 서울고등법원 판사, 국회 파견 판사, 주미대사관 사법협력관·UN국제상거래법위원회(UNCITRAL) 정부대표, 헤이그 국제사법회의 정부대표 등을 역임하면서 국내외 법률 현장에서 폭넓은 경험을 쌓았다. 강신옥 전 국회의원 아들로 정관계 네트워크가 탄탄하다는 평가다. 지난 2013년부터는 김앤장 변호사로 근무하면서 쿠팡을 포함한 다양한 기술혁신 기업에 대해 법률 자문, ICT산업에 대한 이해도도 넓은 것으로 알려졌다.

“쿠팡은 코로나19 사태를 거치며 이커머스 선두주자를 넘어 국민 기업 반열에 올라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제 남은 과제는 나스닥 상장과 정부의 정책 리스크다. 물류센터 노동자와 쿠팡맨 수만 명을 거느린 쿠팡은 각종 노동, 상생 이슈에 휘말릴 우려가 커졌다. 네이버가 창업 10년 차쯤 성숙기에 접어들며 판사, LG 법무팀 부사장을 역임한 김상헌 전 대표를 기용, 규제 리스크에 잘 대응해 대기업 반열에 안착한 것도 참고가 됐을 것이다.”

ICT업계 고위 관계자의 전언이다.

▶강한승 총괄대표 등판 의미는

▷온라인 플랫폼 규제 등 대관 전쟁 총대

최근 쿠팡 행보에서 눈에 띄는 또 다른 특징은 ‘대관 인력 강화’다. 쿠팡은 강한승 대표 외에도 지난해 7월 추경민 전 서울시 정무수석을 부사장으로 영입하는 등 대관 인력만 30여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정책 리스크 대응과 함께 올해부터 본격화될 오프라인 유통업계의 총공세에 대비하기 위한 포석으로 해석된다.

업계 관계자는 “지난해까지 유통 관련 규제는 오프라인 쇼핑몰에 대한 것밖에 없었다. 그러나 대형마트가 적자를 기록하고 쿠팡이 부상하며 규제 화살이 온라인업계로 향하는 분위기다. 공정위도 조만간 국회 발의를 목표로 온라인 플랫폼 법안 제정을 추진 중이다. 오프라인 유통 대기업들의 전방위 로비에 맞서기 위해 쿠팡도 전열을 정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지난해 여름부터 김범석 대표가 국정감사에 출석할지가 업계 초미의 관심사였다. 물류센터 코로나19 감염 사태, 쿠팡맨 근로조건 문제 등으로 떠들썩해서 당연히 불려나올 줄 알았는데 끝내 피해 가는 것을 보고 매우 놀랐다. 강한승 대표를 비롯한 쿠팡의 대관 인력만 30여명에 달한다는데 과연 로비력이 대단하구나 싶었다”며 혀를 내둘렀다.

이제 스포트라이트는 강한승 대표로 모아진다. 강 대표는 김앤장 변호사 시절 쿠팡 경영·법률 자문을 하며 김범석 대표와 투자사들의 두터운 신임을 받은 것으로 전해진다. 누구보다 쿠팡의 내밀한 사정을 잘 아는 그가 ‘은막의 조력자’에서 경영총괄 대표로 직접 총대를 멘 것은 의미심장하다.

업계 관계자는 “구글,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등 미국 ICT 기업들도 일정 수준 성장한 이후에는 전문 경영인 체제로 전환했다는 점에서 쿠팡의 이번 인사는 자연스러운 흐름으로 보인다. 취임 후 두 달 만에 고명주 대표가 사임하며 강 대표에게 더욱 힘이 실린 것은 폭넓은 정관계 인맥과 전문성을 인정받았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강 대표가 향후 쿠팡의 중추 인물이 될 수 있을지 지켜볼 만하다”고 말했다.

[노승욱 기자 inyeon@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092호 (2021.01.13~2021.01.19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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