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제철 334억 벌었는데 충당금 무려 1000억..

김경민 2021. 1. 11.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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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소배출권 가격 급등..전통 제조업 초비상

탄소배출권 가격이 급등하면서 새해 벽두부터 기업들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철강, 정유, 석유화학 등 탄소 배출량이 많은 기업들은 어렵게 벌어들인 이익을 고스란히 탄소배출권 비용으로 내야 할 처지에 놓였다.

탄소배출권 거래 제도 개념부터 살펴보자. 한마디로 온실가스 배출 권리를 사고팔 수 있도록 한 제도다. 정부가 기업에 온실가스 배출권을 할당하면 기업마다 실제 배출한 온실가스량에 따라 한국거래소에서 배출권을 사고팔 수 있다. 일례로 A기업이 1000t의 탄소배출권을 할당받고 한 해 방출한 온실가스가 700t이라면 300t의 여유분이 생기는데 이를 시장에 팔 수 있다. 반대로 1200t의 온실가스를 방출한 B기업은 거꾸로 200t의 배출권을 시장에서 구입해야 한다.

탄소배출권 가격이 급등하면서 철강, 정유, 화학 등 탄소 배출이 많은 기업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사진은 포스코 제철소. <매경DB>
▶심상찮은 탄소배출권 가격

▷1t당 가격 3만원 육박

최근 탄소배출권 가격이 치솟으면서 기업 부담이 커지는 분위기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2020년 12월 28일 종가 기준 1t당 탄소배출권 거래 시장 평균가격은 2만7000원이다. 그해 최저가였던 1만7800원(8월 19일 기준)과 비교하면 불과 4개월여 만에 50% 넘게 뛰었다. 국내 탄소배출권 시장이 처음으로 개장한 2015년 1월 12일 당시 가격이 t당 8640원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3배 이상 급등한 셈이다. 새해 들어서도 탄소배출권 가격 상승세가 지속될 것이라는 전망이 대세다.

탄소배출권 거래 가격이 뛰는 것은 공급 대비 수요가 많기 때문이다. 정부가 탄소 배출 규제를 강화하자 서둘러 탄소배출권을 확보하려는 기업이 늘면서 가격이 급등하는 양상이다.

실제로 정부는 탄소배출권 규제 강도를 점차 높이는 모습이다. 2015년 탄소배출권 거래 제도를 도입해 3년 단위로 1차(2015~2017년), 2차(2018~2020년) 계획을 끝냈고, 새해부터 2025년까지 5년간 3차 계획에 들어간다.

3차 계획은 기존보다 훨씬 강력하다. 탄소배출권 거래제 적용 대상이 62개 업종, 589개 업체에서 69개 업종, 685개 업체로 대폭 늘어난다. 덩달아 유상할당 비중도 높아졌다. 정부는 1차 계획 기간에 탄소배출권을 100% 무상 할당했지만 2차 기간부터 3%를 유상 할당하기 시작했다.

새해부터는 이 비율을 10%로 3배 이상 높인다. 즉 기업마다 부여된 할당량 중 10%는 반드시 구매해야 한다는 의미다. 2020년 기준 국내 기업의 유상 할당 총량은 825만t이었지만 10%로 확대되면 총 2750만t으로 급증한다. 새해 탄소배출권 가격이 t당 3만원으로 치솟을 경우 비용만 8250억원에 달할 전망이다.

당장 기업들은 비상이 걸렸다. 24시간 고로를 가동해야 하는 철강업체 부담이 특히 크다. 쇳물을 생산할 때 쓰이는 철광석을 고로에서 뜨거운 바람으로 녹일 때 이산화탄소가 다량 배출되기 때문이다. 현대제철의 경우 2018년 이후 3년간 약 600만t 배출권이 부족했다. 이 때문에 2020년 3분기까지 탄소배출권 거래 관련 부채 충당금으로 654억원을 잡아놨다. 4분기 가격이 급등한 점을 감안하면 탄소배출권 거래 충당금은 1000억원을 넘어설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2020년 3분기 벌어들인 영업이익(334억원)의 3배에 달한다. 철강업계 관계자는 “새해 탄소배출권 가격이 더 오를 경우 온실가스 배출이 많은 고로를 운영하는 철강사 입장에서는 부담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정유, 석유화학업체도 답답하기는 마찬가지다. 코로나19 직격탄을 맞은 정유업계는 공장 가동률을 줄이면서 정해진 할당량 내에서 탄소배출권 제도를 운영해왔다. 하지만 경기 회복으로 공장 가동률이 높아지면 탄소배출권 부담이 커질 것으로 우려된다. 정유사마다 탄소 감축을 위해 탈황시설을 설치해야 하지만 코로나19 여파로 대규모 영업적자에 시달리면서 투자가 여의치 않은 상황이다. 유재선 하나금융투자 애널리스트는 “우리나라 제조업 특성상 탄소를 많이 배출하는 업종 비중이 높고 정부가 목표로 하는 탄소 중립에 이르기까지 오랜 시간이 소요될 것이다. 이 과정에서 비용 부담이 늘어나고 주요 제품의 글로벌 가격 경쟁력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내다봤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새해부터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친환경 정책이 속도를 낼 경우 탄소 감축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 바이든 당선인은 ‘2035년 전력부문 탄소배출 제로’를 목표로 내거는 등 규제 강도를 높일 것으로 예상된다.

이 때문에 기업마다 탄소배출권 구매 부담뿐 아니라 탄소 감축 설비 투자까지 병행해야 하는 실정이다. 향후 EU(유럽연합), 미국 등이 탄소국경세를 도입할 경우 탄소 감축 설비를 갖추지 않으면 무역장벽에 가로막힐 우려가 크다. 탄소국경세는 자국 수출기업이 탄소 배출을 줄이기 위해 발생한 비용은 보조금으로 지원해주고, 탄소 배출량이 많은 다른 나라 수입기업에는 추가로 부담금을 물리는 제도다. EU가 2023년 탄소국경세 도입을 준비해온 가운데 바이든 당선인도 탄소 배출이 많은 국가나 기업 제품에 추가 관세를 물리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산업연구원은 국내 철강, 정유·화학, 시멘트 등 3개 업종이 2050년까지 탄소 중립 비용으로 써야 하는 금액만 400조원에 달할 것으로 우려했다. 코로나19 여파로 글로벌 생존 경쟁이 치열해진 상황에서 기업들이 감당하기 어려운 액수다.

▶해법은 없나

▷정부 탄소 감축 기술, 설비 지원 나서야

재계 안팎에서는 정부가 나서서 탄소배출권 가격을 안정시켜 기업 부담을 줄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줄줄이 터져 나온다. 탄소배출권이 많이 필요한 기업 입장에서는 여유분을 시장에 내놓기 어려워 공급 부족, 가격 상승을 부채질했기 때문이다. 대한상공회의소가 2020년 10월 말 탄소배출권 거래제 참여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기업 애로사항으로 ‘탄소배출권 가격 급등락’이 1순위로 꼽혔다.

기업에 무작정 탄소 감축 설비를 마련하라고 압박해서는 곤란하다는 의견도 뒤따른다. 연구개발(R&D)로 관련 기술, 설비를 갖출 경우 인센티브를 주는 방식이 정부의 기술, 제도적 지원으로 뒷받침돼야 한다는 얘기다. 김녹영 대한상공회의소 지속가능경영센터장은 “탄소 중립은 중장기적으로 가야 할 방향이지만 제조업 비중이 높은 국내 현실을 고려해야 한다. 탄소 감축 기술 개발에 대한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한 때”라고 말했다.

[김경민 기자 kmkim@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092호 (2021.01.13~2021.01.19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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